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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ul 03. 2023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 여인 프리다

영화 '프리다' 리뷰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성 화가라는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안 것은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통해서였다.

그 책 속에 묘사된 프리다 칼로의 삶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평생 기구한 운명 속에서 살다 간 여인이다. 그녀는 여섯 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로 인해 꼼짝 못 하고 방안에만 갇혀 지내다가 9개월 만에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다리는 이미 뒤틀리고 바싹 야위었기에 평생 긴치마만 있었던 여인, 열여덟 살 때는 그녀가 탄 버스와 전차가 충돌해 온몸이 부러지고 짓이겨져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는 사고로 인해 20년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었던 여인. 스물두 살에 멕시코의 영웅인 디에고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그의 천성적인 바람기로 인해 평생 고통을 당했던 여인. 그녀 스스로 “버스의 충돌사고보다 당신과 만난 것이 훨씬 더 나빴다 “며 자신의 사랑을 저주했던 프리다 칼로였지만 한편으론  ’ 내 마음속의 디에고‘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얼굴에 디에고를 그려 넣을 정도로 그를 사랑했던 그녀의 삶은 기구한 인연과  기구한 신세라는 말로 정리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이렇게 비관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에게 험악한 운명을 그림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 그림은 저주에 가까운 나의 운명에서 유일한 축복이었다.‘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날아든 고통의 화살들을 초인적인 힘으로 그려낸 그림으로 극복했기에 프리다 칼로의 삶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영화 ‘프리다’는 그녀에 관한 관심 때문에 우연히 검색된 영화였는데 놀랍게도 셀마 헤이엑이 프리다 역을 맡아서 더욱 반가웠다. 그 밖에도 쟁쟁한 애슐리 쥬드, 에드워드 노튼,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프리 러시 등이 출연했지만 포스터와는 달리 거의 카메오 수준이다. (완전 낚시용^^)

영화는 마치 관을 운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프리다의 침대로부터 시작이 된다. 그녀의 표현대로 숨을 쉬는 산송장과 같은 존재지만 아직도 예쁘고 표정은 밝다. 화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아마도 프리다 칼로는 자신을 향한 운명의 화살을 넉넉한 미소로 싸워 이겼을 것이란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영화는 프리다의 삶이 가장 행복했을 여고생 시절부터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여고생들이 한때 입었던 하얀 블라우스에 청치마 교복과 똑같은 옷을 입었기에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프리다가 책가방을 들고 달린다. 누드모델을 그리고 있는 디에고(알프레드 몰리나)를 몰래 훔쳐보기 위함이다. 이때의 디에고는 그녀의 삶에 장난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후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이렇게 영화는 그녀가 만났던 불행과 비극을 한 장면씩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했던 버스와 전차의 충돌로 인해 창과 같은 긴 쇠막대기가 그녀의 왼쪽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 자궁과 질을 꿰뚫고 허벅지로 빠져나온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자신의 꿈에 취할 나이에 찾아온 비극을 감독은 사실적으로 보여주기에 끔찍한 그 장면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날아와 치명상을 입힌 운명의 화살을 화가가 되어 싸우기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리던 프리다는 드디어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찾아온 운명의 화살 중 하나를 부러트린 것이다. 또 하나의 화살과 맞서기 위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평가받기 위해 디에고를 찾아간다. 그는 이미 부와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름난 화가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아름다움과 열정, 재능에 반한다. 그녀도 뚱뚱하고 두꺼비 같이 못생긴 얼굴에 네 아이의 아버지고, 두 번이나 결혼했고, 아직도 복잡한 여자관계를 가지고 있는 디에고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반대했지만 두 사람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리다와 디에고의 사랑은 항상 삐거덕거렸기에 수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는데 디에고의 바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을 때까지 애증을 가지고 디에고를 사랑했다. 프리다에게 사랑은 언제나 디에고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거칠고 아프고 힘들었던 사랑도 은혼식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쩜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사랑의 모습이란 생각도 든다. 마치 1 급수와 2 급수에서 사는 물고기가 틀리는 것처럼 사랑도 순수함에 따라 그 급수를 분리해도 좋지 않을까?

어쩜 예술가들의 사랑은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끔 감동이 있는 것은 열정이 가지고 있는 치열함 때문이다. ‘죽음보다 깊은 사랑’은 흔하지 않기에 때로는 퇴폐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랑에 취하고 싶을 때도 있다.



전기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주인공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 표현된 삶은 감독이 의도한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관객들은 그 앵글 속에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감독인 줄리 테이머스는 여자답게 “프리다의 삶에 찾아온 운명의 화살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기에 영화 속에는 그녀의 사상이나,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고 심지어 양성애자라는 것도 그다지 문제로 삼지 않기에 스쳐 가는 바람처럼 영화 속에서 살짝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사랑은 왠지 3 급수쯤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그 사랑을 경멸하거나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리다가 나눈 육체적 사랑은 많았지만, 그녀가 고백한 사랑은 디에고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예술혼이 불탔고 결국은 자신에게 찾아온 운명을 승화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라는 말처럼 개인에게 주어진 삶은 언제나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다. 그 탈출에 가장 필요한 도구가 열정이다. 운명도 그 어떤 사랑도 열정이라는 아름다운 힘 때문에 가치를 달리한다. 그런 면에서 프리다의 삶은 가치 있고 그녀의 삶은 교훈이 있다. 가슴이 식었다면 이 영화 괜찮다. 한 방울의 눈물이 잠들어 있는 자신의 열정을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프리다'
소개 영상입니다.

https://youtu.be/JzC3HIQc4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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