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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ug 07. 2023

Honor, sir

영화 ‘맨 오브 오너’ 리뷰

축구에는 투톱 시스템, 야구에는 원 투 펀치가 있는 것처럼 영화도 두 주인공을 앞세워 사건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다. 투톱 영화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히트!’의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 ‘미션’에서의 제레미 아이언스와 역시 로버트 디느로와의 만남이다. 생각해 보니까 로버트 디느로는 초기작은 단독 주연이 많았지만 갈수록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통해서 자신의 진가를 들어내는 배우로 변한 것 같다. 투톱 영화는 성격을 달리하는 매력적인 두 배우와 서로 다른 인종, 그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다가 결말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때 감동이 되는데 ‘맨 오브 오너’ 도 그 공식에 잘 맞아떨어진다.
      
영화의 두 축인 빌리 선데이(로버트 드 니로)와 칼 브라셔(쿠바 고딩 주니어)는 교관과 훈련생으로 만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감동 때문에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훌쩍 지나간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미국 해군 역사상 첫 흑인 잠수병이었고 장애를 이기고 명예로운 은퇴를 한 칼 브라셔(Carl Brashear)의 일생을 그린 실화이기에 더 교훈적이다. 자기 계발서 수십 권 읽은 것보다 이 영화 한 편을 감상할 때 잠들어 있는 뇌가 더 많이 자극을 받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수영과 잠수하기를 즐겼던 칼의 꿈은 해군에 입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흑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미국은 아직도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었다. 흑인은 해군에 입대한다 할지라도 취사병이나 장교의 딱갈이(지금은 군대에서 안 쓰는 단어라고 하는데 노예나 몸종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군요^^) 밖에 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이지만 아버지는 칼에게 "포기하면 안 된다. 절대로!” 라며 꿈을 심어준다. 호이스트함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던 칼은 어느 날 추락한 헬기를 구조하기 위하여 바다에 뛰어든 빌리 선데이 상사의 활약상을 보고 심해 다이버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칼은 인종차별과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함장으로부터 해양구조학교 추천서를 받고 2년이 지난 뒤에 칼은 이 학교에 입학하지만 첫날부터 동료들은 흑인과 함께 내부반을 쓸 수 없다며 반기를 든다. 고립된 칼이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실력으로 이겨나간다. 이때 이 학교의 교관으로 있던 빌리 선데이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로 졸업하는 날까지 칼을 괴롭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칼을 통해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도 가난했고 놓인 장벽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하사관으론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인 상사에 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훈련 중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다에 뛰어든 칼의 모습을 보며 빌리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제 빌리는 교관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으로 칼 앞에 선다.

졸업을 앞둔 칼의 침대에 눈에 익숙한 라디오가 보인다. 그 라디오는 칼이 애지중지하던 것으로 빌리가 화가 나서 부셨던 것이다. 라디오에는 ‘A SON NEVER FORGET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때부터 빌리는 칼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빌리는 미국 해군의 잠수사로서 전설의 자리에 남고 칼은 현역에서 가장 빼어난 잠수사가 된다. 사고로 인해 지중해에 떨어진 핵탄두를 찾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숨 가쁜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칼은 러시아의 잠수정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지만 핵탄두를 발견하고 갑판으로 옮긴다. 탄두를 옮기는 과정에서 로프가 끊어져 배위의 사병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 속에서 칼은 몸을 날려 그들을 구하지만 자신은 왼쪽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명예로운 은퇴를 권하지만 칼은 전역하지 않고 의족을 한 채로 마스터 다이버(Master Diver)가 되는 꿈을 꾼다.


칼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빌리는 칼이 다시금 다이버로 복귀할 수 있도록 아버지처럼 최선을 다해 재활 치료를 도와주고 상부인 워싱턴에서 복귀여부 심사를 받는데 까지 동행한다. 이때 칼의 심경고백은 감동적이다.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지만
위대한 전통이 없었다면 여기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뭔가?
Honor, sir. (명예입니다)‘ 


1968년 칼 브래셔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장애인 다이버로서의 실전임무를 맡고. 2년 뒤 그는 빌리처럼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다이버 교관이 되어 9년 동안 해군에 몸 담고 퇴역을 한다. 


군대를 소재로 하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감동은 휴머니티에 있다.
생명이 오가는 극한 상황 속에서 전우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거나, 목표를 세우고 어떤 난관이 있다 할지라도 이기고, 마침내 승리한 모습을 볼 때 관객의 마음이 움직인다. 영화의 투 톱인 빌리나 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다혈질이고 자기 관리에 실패하고 지독한 인종차별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빌리는 인간적인 약점을 많이 노출하고 있다, 반대로 칼은 거의 완벽한 모습의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마침내 ‘흑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진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에 남는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해군을 사랑했고. 잠수사로서의 긍지가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다는 데 있다. 그것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명예다. 이 낱말이 새롭게 들리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삶을 산 사람들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을 지킨 것의 결과가 명예라면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삶의 원리를 하나 발견한다. 


‘명예를 잃음은 곧 생명을 잃는 것이다. 명예를 잃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쇼펜 하우어의 말을 기억하는 이유는 삶은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맨 오브 오너'의 감동적인 장면 


 

https://youtu.be/QhCISxbO7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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