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꼬네의 배경음악이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 ‘Love Affair’는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영화 음악 가운데 하나다. 영화의 곳곳에서 이 곡은 마이크(웨렌 비티)와 테리(아네트 베닝)의 사랑을 덧칠해 주기에 심야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단골 멜로디였다.
연말이 되면 해마다 방송국에서 청취자가 뽑은 ‘영화음악 베스트 100’ 곡 안에 꼭 들었다. 뿐만 아니라 한 때 핸드폰 컬러링으로도 사랑받은 곡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될 때 지니 할머니(캐서린 햅번)가 이 곡을 연주하자 넋을 잃고 지니를 쳐다보는 테리, 이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마이크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러시아 유람선의 항해를 통해 배경으로 보이는 화려한 노을의 아름다움과 겹쳐지는 두 사람의 키스는 명장면이다. 확실히 애정영화는 뜸을 들이며 두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 여운이 있고 공감이 있다. 그러나 요즘 영화는 이런 소중한 것들을 생략한 채 육체로 가버리기에 늙다리 아저씨는 불만이 많다.
영화 속의 장면과 음악이 너무 아름답기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지만 젊었을 때는 웨렌 비티의 바람기가 더 화제가 되었다. 그 유명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로 하루아침에 스타로 대접받은 그는 젊은 시절 내가 좋아했던 모든 여배우와 염문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함께 공연한 페이 더너웨이, 청순미의 대명사였던 나탈리 우드, 프랑스의 섹스 심벌 브리짓 바르도, 슬픈 눈동자 때문에 남심을 자극했던 이자벨 아자니, 지성미와 함께 아직도 귀여움이 남아있는 다이앤 키튼 등 그 당시 내노라는 모든 여성과 염분이 있었기에 그 당시 청춘이었던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55살의 늦은 나이에 아네타 베닝과 결혼을 했다. 나이 차이는 무려 21살… 1992년 영화 ‘벅시’에서 함께 공연한 두 사람은 이때 가슴이 뛰었고 지금까지 아이 4명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이제 화면에서 웨렌 비티를 만날 수 없지만 아네타 베닝은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4년작인 ‘페이스 오브 러브’에서 그녀는 트레이드마크인 우아하고 귀여운 미소를 가지고 있다. 물론 주름살도 함께 보이지만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다. 모든 애정영화는 공식과 같은 것이 있는데 언저리의 불륜을 대부분 운명적인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너무 이런 영화에 빠지면 바람날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러나 염려할 것 없는 이유는 그 어떤 여자도 나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ㅎㅎ)
웨렌 비티의 인생을 이야기하듯 영화 속에서도 그는 유명한 플레이 보이다. 토크 쇼 진행자로 이름이 높은 린과 약혼한 사이였는데 그는 비행기 안에서 테리를 만난다. 그녀도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이 탄 호주행 비행기는 엔진 고장으로 인해 조그만 섬에 비상착륙하게 되고 근해에 있던 러시아 여객선을 타고 타이티로 향하면서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약혼자가 있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영화의 특징은 언제나 이성과 감정과의 갈등에서 이성은 맥을 못 추는 것이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두 사람은 3개월 동안 그리움의 시간을 갖은 후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이때 마이크의 말 멋지다.
“지금 행복한가요? 난 지금까지 사는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충실하지 못했지만, 나한테 모험을 한번 해볼래요? 나에게 시간을 줘봐요.”
이런 달콤함에 안 넘어갈 여자 있을까?.…….ㅎㅎ 테리는 적극적이다.
“당신이 안 나온다고 해도 난 이해할 거예요.” “난 나가요. 당신이 안 나와도 이해해요.” “난 나갈 거예요.”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확고하다. 수순에 의해 약혼자들을 차버리고 약속한 날을 기다리는데 약속한 날 만남의 기쁨 때문에 약속 장소를 쳐다보며 걷던 테리가 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사실을 모른 채 마이크는 테리를 기다리다 낙담하고 떠난다. 테리는 재활치료에 열심이고 마이크는 새로운 코치직을 얻기 위해 준비한다. 레이 찰스 콘서트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음을 알고 되고 사랑은 거침없이 진행된다.
인간이 정해놓은 도덕이나 윤리의 틀을 벗어난 사랑에 대해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까?
흔히 하는 말로 자신의 사랑은 로맨스이지만 남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기에 사랑은 경계선이 모호하다. 그러나 고전 로맨스 영화의 가치관은 분명한데 책임지는 사랑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상대방을 차지하기 위한 비열한 행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에서는 버림받은 두 사람의 약혼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그들도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식었음을 인정했기에 웃으며 돌아섰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마이크와 테리에게 찾아온 사랑을 응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테리는 부상당한 자신의 모습이 행여나 마이크에게 부담이 될까 봐 연락을 끊었고 마이크는 테리의 다리가 온전히 낳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한 장의 그림으로 그들의 사랑은 완성된다. 진정한 사랑만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순수함. 어쩜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사랑의 모습이기에 잘 만들어진 로맨스 영화 한 편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거름종이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