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Jun 22. 2023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 말하는 게 아니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영화 ‘러브 스토리’를 보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명대사다. 빵빵한 집안 출신인 법대생 올리버와 이탈리아 이민 계통의 딸인 제니퍼.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기에 집안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결혼한 두 사람. 그 사랑의 힘 때문에 감동하며 눈물로 봤던 ‘러브 스토리’는 내 나이쯤의 연배라면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기억하며 감동하지 않을까?
특히 제니퍼를 잃고 망연자실한 올리버의 뒷모습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러브 스토리의 메인 테마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후 라스트 콘서트, 가을 동화 등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백혈병으로 죽이기에 식상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이기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 때문에 아직도 많은 관객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도 같은 부류의 영화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흐르면서 영화는 두 남녀의 대화로부터 시작이 된다. 차분하고 건조한 대화는 이 영화가 비극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에 놀라 사쿠타로(오사와 다카오)는 자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다. 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사쿠타로의 약혼녀인 리츠코 (시바사키 코우)는 이삿짐 속에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테이프를 듣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녀는 사쿠타로에게 짧은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시코쿠’로 향한다. 이곳은 사쿠타로의 고향이고 그의 첫사랑이었던 아키(나가사와 마사미)와의 추억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약혼녀를 찾으러 고향에 온 사쿠타로는 옛 추억을 생각하며 바다를 향해 절규하고 그를 위로하듯 쪽빛으로 빛나는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말없이 흐른다. 



1986년 여름
매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초여름의 어느 날 스쿠터를 타고 동네 길을 달리던 사쿠타로에게 낚시 바늘이 걸렸다. 어쩔 줄 몰라하며 낚시 바늘을 떼려고 하는 그를 보며 아키가 소리 내며 환하게 웃는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통해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왜냐하면 사랑이 이루어진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쿠터에 올라탄다. 사랑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워크맨이 상품으로 걸려있는 라디오 심야프로에 응모엽서를 보내기도 하고 워크맨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음성편지를 주고받으며 순수하고 예쁜 사랑을 만들어 간다.

86년 7월 7일 글씨가 쓰이고 빨강 하트 표시가 선명한 카세트테이프를 전해준 아키는 부끄러운 듯 도망을 친다. 그 테이프 속에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사쿠타로와의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지기를 바라는 아키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있다. 이렇게 워크맨을 통해서 두 사람의 사랑은 편지가 아니라 음성으로 교류된다.



영화 속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예쁜 사랑을 만들어 가다가 갑자기 여주인공이 불치의 병에 걸려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도 이 공식을 철저히 따른다. 친구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무인도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꿈같은 짧은 시간을 보낸다. 실루엣으로 표현된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다운 화면으로 다가올 때 사쿠타로가 도둑키스를 하려고 한다. 이때 갑자기 아키가 고개를 돌리며 “키스하려고 한 거지?”(귀여운 녀석들^^)  다음날 아침 다가오는 친구의 보트를 보며 손을 흔들던 아키가 갑자기 쓰러진다. 아키의 백혈병이 발병된 것이다. 사쿠타로를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아키(선율이 매우 아름답다) 살포시 사쿠타로에게 안기며 “사랑해”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그녀의 표정은 슬프지만 행복하다. 그리고 자신의 병명을 고백한다. '백혈병'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아키는 언제나 밝다. 영화를 보면서 그 표정 때문에 더 아픔을 느낀다. 사쿠타로 와의 애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키는 자신이 잊히는 것이 싫어서 시게조 할아버지에게 사쿠타로와 자신의 결혼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얀 드레스에 면사포를 쓴 아키의 얼굴은 밝고 행복하다. 점점 더 백혈병이 아키의 몸을 지배하고 있을 때 사쿠타로는 그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괴롭다. 어느 날 사쿠타로는 아키가 가장 가고 싶어 했었던 호주의 울룰루로 여행을 떠나려고 하지만 아키는 공항 로비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세상의 중심이라고 불리던 그곳은 어쩜 사쿠타로와 아키의 사랑의 중심이 아닐까?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사쿠타로를 향한 아키의 마지막 고백이다. 모든 사랑은 이렇게 끝나야 마땅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부딪치는 사랑은 대부분 수많은 갈등의 연속이다. 어쩜 이런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경박하고 깊이가 없는 사랑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고 사랑보다는 조건이나 배경 때문에 맺어지는 결혼은 순수한 사랑에 대한 모욕쯤으로 보인다.

사랑의 깊이는 다르다 할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순수할 때 만난 사랑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게 전하고 몰래 기뻐하고, 그녀의 말 한마디와 눈동자 때문에 얼어붙은 자신의 모습이 왜 그리 창피한지……. 지금도 가끔씩 화면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났을 때 여운이 길게 지속되는 감동이 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자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키의 첫사랑처럼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이런 사랑을 꿈꾸기에 가끔 마음은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군청색 교복에 풀 먹인 하얀 칼라가 빛났던 하얀 얼굴의 소녀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ㅎㅎ

배경음악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ost / 중에서 '눈을 감고'입니다.

https://youtu.be/6gMark6SR-w


매거진의 이전글 이 영화 비처럼 마음을 적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