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영화 흥행순위 2위를 기록한 타이타닉은 Celin Dion 이 부른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은 소니사에게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영화 음악으로서는 최고의 기록이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뱃머리 난간에 서 있는 두 남녀. 로스가 두 팔을 벌리며 비상할 듯한 포즈를 취할 때 잭이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을 때 ‘My Heart Will Go On’이 흐르면 객석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것을 보면 영화음악은 영화를 빛나게 하는 보조역할이 아니라 당당히 OST라는 장르로 자리 잡았고 앤딩에서도 음악 감독의 이름이 올라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절기에 맞춰 4권으로 출간된 박신영의 ‘영화음악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감동적인 영화들의 OST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영화와 음악 여행과 사진 등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즐거운 인생을 꿈꾸고 살고 있다. 감성적인 글 솜씨가 그녀를 빛나게 하는데 ‘봄’에 이어 두 번째 책인 ‘여름’에서 15개의 영화와 똑같은 숫자인 15개의 배경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번지점프를 하다, 라디오 스타, 맘마미아, 쇼생크 탈출 등의 영화를 여름이라는 주제로 풀어간다.
여름은 어떤 계절일까? 수많은 사람들은 7월이 되면 휴가를 꿈꾼다. 젊은이들은 휴양지에서 만날 사랑을 꿈꾸고, 부부는 아직도 진행 중인 두 사람의 사랑을 행복해하며 해변을 걷는다. 예전에 징검다리가 불렀던 ‘여름’이라는 노래 속에 ‘산도 좋고 물도 좋아라!. 떠나는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사랑이 오고 가네요.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라며 여름을 노래한다. 그래, 여름은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계절이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빛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남자는 복근을, 여자는 몸매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며 사랑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소개한 영화들은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너무 순수하고 깨끗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클래식‘ 등 주인공의 순수함과 맑고 아름답지만 아픈 사랑을 공감케 하는 OST들이 영화를 빛나게 한다.
저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말한다. ‘이별 없는 사랑은 없다. 제아무리 빛나는 사랑도 죽음 앞에선 끝이 나기 마련.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해야겠다.‘ 영화 속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저들의 이별이 진한 아픔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원(한석규)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제 시작된 다림(심은아)과의 사랑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놓는다. 이것은 다림을 향한 유언인지도 모른다.
산울림의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생각이 나겠지요?‘가 이 영화에 안성맞춤인 이유는 슬픈 결말을 상징하듯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다림을 그리워하며 한 장의 사진으로 그를 추억하는 정원의 마음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
죽음으로 이별하는 사랑이 더 아픈 이유는 남은 자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다림도 정원을 추억하기 위하여 그와 함께 했던 찻집이나, 오토바이를 타며 기분 좋은 감정으로 정원의 허리를 끌어안았던 기억들을 떠 올리며 산울림의 노래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정원을 기억할 것이고 어느 순간 다림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사랑의 결말을 알기에 산울림의 노래는 더 아프게 다가올지 모른다.
심은아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든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과천국립현대현대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좋아했기에 더욱 가슴 깊이 남아있는 이 영화는 꽃비처럼 내리는 벚꽃을 어깨에 맞으며 걸을 때 제일 멋있다. 동물원이 아이들을 위한 장소라면 미술관은 젊은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 참 어울리는 곳이다.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을 벤치에 앉아 감상하기도 하고 조금 더운 느낌이 나면 미술관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먹으며 여유를 부릴 수 도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얼마나 좋은 데이트 코스인지 아는 사람은 이 영화의 제목 때문에 더 명작으로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전혀 춘희와 담지 않은 심은아의 엉뚱한 매력 때문에 이 영화가 잊히지 않을 수 도 있다. 모든 사랑 영화에는 잊히지 않는 명대사들이 있는데 미술관 옆 동물원도 연애편지 쓸 때 인용하기 딱 좋은 대사들이 감칠맛 있게 느껴진다. ‘난 정말 달인가 보다. 내 안에서는 노을이 지지도 않으며, 그에게 미치는 내 중력은 너무도 약해 그를 당길 수 도 없다. 난 태양빛을 못 받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월식 중인 불쌍한 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우리는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빈다. 그러나 상대방은 고궁의 한 구석에 서있는 무표정한 탑처럼 조금도 미동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사랑은 아프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 나타난 사랑의 결말은 불쌍한 달이 아니라 빛나는 태양이다.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보사노바풍의 리듬감이 멋진 로라 피기의 ‘Let There Be Love’는 미술관 옆 동물원을 격조 있는 영화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허스키하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철수와 춘희의 사랑을 축복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렇게 얇은 이북(ebook) 속에는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랑이 등장한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사랑의 집착을 아픔으로 표현하는데 쇼스타코비치의 ‘Jazz Suit No. 2-1V Waltz II’를 사용한다. 제목은 생소하게 들리지만 들어보면 “아! 이곡”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경쾌한 왈츠 음악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왠지 우울하고 진한 아픔이 느껴진다. 특히 색소폰으로 연주되는 “라라라 라”이 부분이 더욱 그런 느낌이다. 이곡을 youtub에서 Andre Rieu의 연주로 봤는데 관객들이 함께 허밍으로 따라 부르는데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름! 벌써 해운대를 비롯한 전국의 해수욕장이 개장하며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늙다리 아저씨에게 그 젊음의 장소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상체를 벗으면 나타나는 주목받는 복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도를 가를 수 있는 멋진 수영 솜씨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여름은 휴가지에서 저자가 소개한 영화를 노트북으로 보며 지난날을 그리며 회상하는 즐거움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배경음악을 들으며 귀를 즐겁게 하고 그 때문에 마음이 풍요로워지면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다면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더 좋은 것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이 배경음악을 CD로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다.(예전에 참 많이 했는데 지금은 유튜브가 더 그 역할을 해주기에 쓸데없는 일이다. ㅠ).
누군가와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고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늙다리 아저씨만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호사로움이다. 놓치지 말아야지.^^
배경음악은
번지점프를 하다 OST 중에서 'Jazz Suitz No 2 - IV Waltz 2' (Dmitry Shostakovich)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