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동해 가족여행
아내가 신이 나서 가족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
삼척에 있는 쏠비치 리조트 1박 예약을 했다는 자랑질과 함께. 꽤 많이 가족 여행을 했는데 그때마다 가족 간에 느껴지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수확이다. 이번 관광이 특별한 것은 사위와 함께하는 첫 번째 여행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차를 구매한 후 첫 번째 여행이니까 자신이 모시겠다.” 하고, 사위는 “아니야. 처남은 아직 초보 운전이니까 자신이 운전하겠다.”라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은 사위가 운전해서 1박 2일의 가족 여행을 했다.
아내는 작년에 친구들과 함께 쏠비치에서 숙박을 했기에 “어떻게 하면 가족에게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를 나름 고민하며 채팅방에 맛집, 여행지 등의 정보를 올려놓으며 의견을 묻는다. 저녁에 리조트에서 바비큐, 아침 조식도 리조트에서, 점심은 횟집 등
“이번 여행은 사위와 처음 하는 여행이니까 모든 경비는 내가 책임질게”
라며 아내가 통 크게 나온다.
가족들은 딸 집에서 자고 이른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난 시간이 맞지 않아 청량리에서 ktx를 타고 혼자 동해를 가기로 했다. 젊은 시절 사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을 때 홀로 밤 기차를 타고 정동진이나 강릉으로 떠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청량리역도 완전히 현대화된 모습으로 변했다.
플랫폼에 서 있는 기차를 보는 순간 여행을 한다는 작은 설렘이 인다. 예전엔 차장이라 불린 분이 일일이 기차표를 검사했지만, 지금은 예약된 좌석에 앉으면 되기에 젊었을 때의 낭만은 사라지고 편리함만 남아있다.
지정된 좌석에 앉았는데 혼자라는 편안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은 혼자 여행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과 함께 이북을 꺼냈다. 2시간 정도 걸리니까 가벼운 에세이를 읽어야겠다. 귀로는 음악을 듣고, 눈으로는 책을 읽으며 하는 여행은 익숙하기에 우선 음악을 듣기로 한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1집에서 9집까지 연속된 전집 음반인데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곡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곡이 대중적이지 않기에 나만의 음악으론 최고다. 그중에서도 1집 첫 번째 곡인 The Rose Of Tralee (트롤리의 장미)는 온통 슬픔으로 장식된 곡이다. 멜로디, 음색 등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에 독서 전의 음악으로 잘 어울린다.
태블릿을 꺼내서 이북을 읽으려고 하는데 기차가 출발한다. 이문동, 외대 등 익숙한 동네를 지나는데 책보다는 창밖 구경이 더 좋을 것 같아 눈길을 밖으로 향한다. 잔뜩 흐린 날씨이기에 좋아하는 구름을 보기는 힘들지만 내 정서에 맞는 것은 우중충함이다. 맑음보다는 흐림이 흐림보다는 비가 좋기에 여행의 진짜 멋은 비 내리는 광경을 보며 상념에 젖는 것이다. 그래 이제 낭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 젊은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무덤덤함이다. 모든 것을 “그러려니”로 퉁치며 생각을 싫어하는 모습에 길들어 있는 자신을 본다. 기차는 어느덧 원주를 지나 평창에 다다랐고 드디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정동진이다. 바다는 잔잔하고 간간이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내리고 싶다. 5분 정도는 정차할 것 같았기에 사진 몇 장이라도 찍고 싶었지만, "혹시 나를 두고 기차가 떠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자리를 꼭 지키고 앉아 있다.
(나이 들었어 ㅠ)
11시 55분 기차는 정확히 동해에 도착했다.
아내는 쏠비치리조트까지 택시 요금이 1만 4천 원 정도 나오니까 택시를 타라고 했다. 말없이 가는 것이 어색해 나이 지긋하신 택시 기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해도 사람들이 떠나 인구가 10만이 안 된다. 윤석열 찍었더니 실망이다”
기사 분은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들었더니 쏠비치에 도착했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을 가보지 못하고 영상으로만 보았는데 사진 속의 그 모습이다.
약간의 웃돈을 더 주고 배정받은 방은 바다가 보인다. “좋다”라는 감탄사가 신음처럼 흘러나온다. 아내는 배고프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횟집으로 가자고 한다. 이때부터 몇 끼를 돈 생각하지 않고 먹었다. 난 그때마다 이 돈이면 책이 몇 권인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지만… ㅠ
사위는 나를 꼭 장인어른이라고 부른다. 아직은 어색한 호칭이기도 하고 왠지 자신이 나이 많이 든 퇴물 같은 느낌을 들게 하기에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네버링을 해 봤더니 ’ 장인‘에 대한 높임말이라고 한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난 나이 든 어른이야 ㅎㅎ
이번 여행에서 몸으로 느낀 것도 힘듦이다.
아들은 아버지 생각한다며
“아빠 힘들면 방에서 쉬세요”
근데 이 말이 왜 서러울까?
“아니야,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걷는 것이 힘들기는 하다. ㅠ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소득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아내와 난 새로 가족이 된 사위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고, 그 아이는 점수 딸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일정을 끝내고 딸 집에 모여 동해에서 사 온 대게와 한우를 가지고 새벽 1시까지 먹고 마셨다. 모두 웃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데 책 속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은 사랑이 거창한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같이 좋은 것을 보고 싶고, 나의 하루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다.‘
조현영 - ’ 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 중에서
https://youtu.be/QzWpPkI2L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