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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ul 19. 2023

세일은 왜 울었어

'모두 좀 취해 있었어요. 우리는 복분자주를 꽤 여러 병 마셨어요. 그랬죠?
당시 저는 주란 씨를 몰랐고, 아직 소설도 읽어보지 못한 때였어요(미안해요).
하여간 우린 많이 웃었고 주인아주머니가 와서 그만 떠들고 집에 좀 가라는 언질을 여러 번 준 걸로 기억해요(우리 그날, 시끄러운 진상이었을까요?).

주란 씨가 놀랍게도 제 시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해주었고 저는 빈말이려니 들었는데, 또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많이 기뻤답니다. 황현진 작가는 몇 년 전 제주에서 제가 “소처럼” 울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고, 저는 과연 그렇게 울었던 때가 떠올라 부끄러웠지만 좋았습니다. 소처럼 운다니, 그게 뭐가 나쁘겠어요.

뭐가 그토록 웃긴지 저는 그날 배가 찢어질 정도로 웃다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드려 한 시간 동안 소리 내서 울다 잠들었어요.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그날 현진 언니(그렇게 부르기로 했어요)와 주란 씨, 제 후배, 이렇게 넷이 술을 마셨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우린 진짜 슬픈 사람들이야.'

고요한 포옹 | 박연준 저



아침에 카톡이 울렸다.

‘세일은
왜 울었어?
것두 한참을...

감정이 복받친 모습에
따라 울 뻔 했자너~

이유를 말해줘’

카톡을 보는 순간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70이 다 된 나이에 웬 울음
술 마시고 운 기억은 거의 없는데 술버릇이 하나 더 늘었나 보다.

내 술버릇은
잘난 척하면서 말 많은 것인데
여기에 2가지가 더 늘었다.
하나는 옆 사람에게 자꾸 다가가는 것.
또 하나는 이번에 처음 일어난 우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를 차단했기에 주로 집에서 혼술을 한다.
캔맥주 2-3캔 정도를 마시니까 과음할 일이 없다. 약간의 알코올은 책과 영화, 음악을 부르기에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몇 개월 전부터 좋아하는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모임을 하면서 얻게 된 즐거움이다. 나름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도록 연극, 영화, 걷기 등 주제를 만들어 유익한 시간을 갖는다.

문제는 이 만남이 너무 좋아선지 알코올 섭취량이 늘어난 것이다.
내 주량의 몇 배 정도는 마시는 것 같다. 어제도 그랬다.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이기에 많이 마셨는데 어느 순간 필름이 끊긴 모양이다. 그래도 운 것은 기억이 나길래 곰곰이 어젯밤의 대화를 복기해 봤다.

아침에 카톡을 보낸 친구가 내가 쓴 글에 대해 격려를 해준 것이 원인이다.

“세일이가 쓴 글은 덤덤히 안보거든
읽어보고
다시 또 보고
글로 대하는 세일은 참 매력 있어.”

이 말에 고무되어 감정 과잉을 일으켰고 눈물이 흐른 것이다.

“너 아직 괜찮은 사람이야.”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아직 내 삶에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는 글쓰기를 인정해 주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부끄러움.
술 취한 모습에 실망할지 모르지만 친구들이
“저런 세일의 인간적인 모습도 괜찮아”라고 넉넉히 받아주면 좋겠다.



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사람이게 만드는 것은, 고귀한 어떤 것이 아니라 치욕이라는 것. 치욕을 치욕으로 알고,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치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에게 가까워진다는 것’

박연준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웃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술에 취해 여자들이 엉덩이를 까고 쭈그려 앉아 차 뒤에서 오줌을 누던 날은 분명 부끄러움이겠지만 사람에게 가까워진 모습이기에 공감하며 미소를 보낸다. 등단은 했지만, 무명이었기에 소처럼 울던 시절도 있었기에 시인은 말한다.
“우린 진짜 슬픈 사람들이야.”

내 정서에 슬픔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그 슬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친구가 있기에 (물론 자의적일 수 있다) 그 눈물을 사랑한다. 그러나 또 울지는 않으리라. 그러면 바보니까
~~

고마워 나의 친구들!!

배경음악은

Brown and Dana의 'Ace of Sorrow'입니다.

https://youtu.be/sB4lThTHB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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