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제천 숲 속에 있는 ‘포레스트 리솜’이기에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여행하면 별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지만 쉬운 것은 아니다. 백패킹의 성지로 알려진 굴업도의 밤하늘을 보기 위해 떠났지만 기상 악화로 덕적도에서 발이 묶였고, 일본 여행을 할 때도 별을 보는 것이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지만 아쉽게도 밤하늘에는 몇 개의 별만이 외롭게 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참외가 있는 원두막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으며 알게 된 카시오페이아와 오리온자리 때문에 이 별자리만 찾으면 흥분했다. 고3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리포에서 보았던 밤바다는 내 인생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처럼 밤하늘은 온통 별로 가득 차 있었고, 파도 소리는 영화의 OST처럼 곱게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김포에 이사를 왔을 때도 별을 기대했지만, 간혹 보이는 금성이 전부였기에 제천을 중심으로 천문대를 검색했다. 영월에 별마루 천문대가 검색되었는데 1시간 정도 밤 운전을 해야 하고 고지가 높은 곳이기에 1년 정도 운전 경력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무리일 것 같아 지나가는 소리로
“아들아 영월에 천문대가 있는데….”
“아빠 가고 싶으시면 가세요”
착한 아들은 아빠 의견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무리라는 생각을 하고 포기했다.
“다음에 영월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가자”
9일 오전 9시에 집을 나섰는데 도착 예상 시간은 3시간이었지만 갈수록 시간이 늘어난다.
더 놀라운 일은 아들에게 걸려오는 수많은 업무 전화다. 연차를 신청했기에 쉬는 날이지만 실무진 사이에서 조율된 의견을 고위직 클라이언트가 제동을 걸었기에 판이 뒤집힌 모양이다. 전화로 오가는 내용을 들으면서 “아들 고생하는구나”란 연민과 “아들 대단하다”란 뿌듯한 마음이 양가적으로 오갔다.
4시간 정도 걸려 포레스트 리솜에 도착했는데 예전 푸껫에서 머물렀던 리조트처럼 고급스러운 곳이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곳이 있어”란 놀라움
숙소는 푸르고 높은 나무들로 가득 찬 숲 속에 개별적으로 위치하기에 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또한 숙소와 숙소 사이는 예쁜 꽃들과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좋아하는 벤치가 놓여 있다(벤치만 보면 책 생각, 읽지도 않으면서 ㅎㅎ)
체크인하고 배정된 카트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기사분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다.
“이곳에서 별을 볼 수 있나요?”
“그럼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별똥카페에서 편안하게 보실 수 있어요.”
오늘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안은 채 숙소를 나와 인근에 있는 제천 의림지를 다녀왔으나 별 느낌이 없는 평범한 관광지였다. 이유는 부지런히 발품 팔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이 호캉스를 선호하는 것처럼 숙소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방콕 하는 것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 되었다. 맥주와 책 한 권을 가지고 숲 속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여행의 모습인데 포레스트 리솜이 그런 곳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때는 돈 많은 사람이 부럽다)
저녁은 술과 함께 바비큐를 먹으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3인이 이용하면 최소한 2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아내는 먹자고 했으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솔티(Solti) 맥주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수제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에일 맥주로 충북 제천에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가 있기에 이곳 3층에 매장이 있다. 3.8도부터 9도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에일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라거 맥주처럼 “카” 소리를 내며 단숨에 마시는 청량감보다 개성 있는 맥주 맛을 추구하는 것이 에일의 특징이다. 사장님이 종류별로 추천을 해주시는데 위트 에일로 시작해 페일 에일, IPA 순서로 마시라고 한다. 6병을 주문했다. 가격은 약 7만 원 정도로 시중 맥주보다는 비싸지만, 맥주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요즘은 마트에도 에일 맥주가 많이 나와 있는데 할인해서 4캔에 1만천 원이니까 가격 경쟁력이 있다)
불맛은 봐야 할 것 같기에
“닭고기 바비큐 먹고 가자” 했더니 아내와 아들도 좋다고 해서
바이젠(Weizen) 맥주와 함께 바비큐를 시켰다. 맥주도 종류가 수백 가지는 되기에 공부하면서 마셔야 하는데 바이젠은 밀맥주로 가볍고 풍성한 거품과 과일 향이 특징이라고 한다. (책에서 본 내용, 아직 맛 감별사는 못 된다 ㅎㅎ)
1차로 불맛을 보고 어묵집에 들러 어묵을 사고 편의점에서 간식용 과자를 샀다. 카트는 3번까지만 사용할 수 있기에 맥주와 어묵을 들고 천천히 숲길을 걸어 숙소에 도착해 맥주를 마시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저녁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숙소를 나와 하늘을 쳐다봤다. 수많은 별이 쏟아질 것이란 상상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별을 세다 숫자를 까먹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는데 실망. 2개의 별만이 반짝이고 있고 그 넓은 하늘을 어둠이 채우고 있다. (다행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니까 별 몇 개가 더 보인다)
벤치에 앉아 자신에게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었다.
밤 별자리의 매력은 신비로운 느낌과 상상력이다. 신화가 인간을 지배했던 시절 모든 별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축을 키우던 목동들이 별을 바라보며 서로 연결해 동물의 모양을 만들고 비유를 함으로써 별자리에 관한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연을 두려워하고 숭배하던 시절 인간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달나라를 정복하는 순간 달 떡방아 찧는 토끼 이야기도 사라지고 말았다. 신화를 잃어버린 인간은 탐욕으로 물들었고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을 보면 신화적 세계관을 회복할 수 있고 현실을 넘어 이상적 삶을 꿈꿀 수 있기에 별은 소중하다. 그런데 별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니….
알퐁소 도데의 별을 생각했다.
‘나는 그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별』, 최내경 옮김, 베텔스만, 22쪽)
순수한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문장 중 하나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어떤가?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연애편지 쓸 때, 대중가요의 가사, 예술 작품의 제목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제목이 별이 아닐까?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우리가 별을 봐야 하는 이유를 시적인 언어를 통해 꿈과 추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또 어떤가?
극심한 가난과 깊어지는 조현병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반 고흐는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라고 말했다. ‘별이 빛나는 밤’도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자해 사건 이후 생레미의 요양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라고 한다. 현실에 막혀있던 반 고흐에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은 그가 꿈꿀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별을 바라본다는 것은 답답한 현실을 떠나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음껏 꿈꿀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행복의 모습에 대해 김신지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한 달을 가만 돌이켜보면 나는 맑은 공기와 얘기 나눌 친구와 맥주만 있으면 어김없이 행복했던 거 같다. 그게 행복의 3요소라니. 너무 쉽네. 그렇다면 의외로 내가 오래 찾아 헤맨 답도 쉬운 것일지 모르겠다.’
- 평일도 인생이니까 중에서 -
피톤 치드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숲 속에 앉아있고,
내 가슴에 시를 써주는 몇 명의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며 “너희들과 오고 싶다”라고 했다.
에일 맥주를 마셨다.
이렇게 행복의 3 요소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시대의 고통을 짊어지면서도 서정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남긴 윤동주
매독이라는 삶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알퐁소 도데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이상적 삶을 꿈꾸었던 반 고흐
일상의 삶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도 소중하지만, 가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싶은 이유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동주, 도데, 고흐의 정신세계에 대한 존경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