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 리뷰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에서 가장 논쟁을 일으키는 인물은 신 목사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빨갱이에게 침을 뱉을 정도의 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교리적으로 접근하면 사이비 목사라 할 만큼 큰 흠을 가지고 있다. 성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거짓을 증거하고 천국을 부정하는 이단적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교회에서 설교하고 자신이 돌봐야 할 성도들을 위해 평양을 탈출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죽음을 맞는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 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를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 줄 용기를 가지시오 ‘ (283쪽)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 신 목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논쟁을 일으키는 인물이지만 그의 외침은 우리 시대에 곡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리보다, 이념보다 소중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예수를 경배하는 이유도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그 사랑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위정자나. 고위직 공무원이나 우리나라 권력 핵심부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나라 사랑, 국민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그들의 비리는 한결같은 돈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으며 신 목사를 떠올린 것은 이 책의 저자인 고든 리빙스턴이 말하는 주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도덕적 용기만이 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 시대의 위협을 인간으로서 자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감하게 마주해야 할 기회로 바라보는 것입니다.’(7쪽) 라며 이 시대를 변혁시키는 것은 이타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유 시민의 용기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이 시대의 모습은 어떤가?
그는 먼저 미국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통계를 말한다. 성인 인구의 9.5%에 해당하는 2,200만 명이 매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 5,400만 명이 항우울제를 복용한다고 한다. 게다가 학자들은 우울증 진단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실제 환자 수보다 훨씬 적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를 저자는 신체적인 위협보다는 실패와 수치심이라는 정신적인 두려움이 가져오는 불안에서 찾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살 사망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4.1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이고 8년 연속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역시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물질주의와 경쟁주의가 그 중심에 있다. 저자는 다시 미국의 통계를 말하는데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부유층과 중산층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에서 문제를 찾고 있다. 미국은 국민의 12.6%가 빈곤층인데 이들의 수입은 전체 국민소득의 3.4%에 불과하다. 반대로 고소득층 20%의 수입은 무려 49.4%에 달한다고 한다. 14.5 대 1이라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비율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이 2013년에 출간되었으니까 더 심화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22년 9월 4일 중앙일보 통계에 의하면
‘근로소득자 상위 0.1%의 연평균 근로소득이 전체의 중간에 있는 중위(中位) 소득자의 28.8배에 달한다고 한다.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20년 귀속 근로소득 1,000 분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근로소득자 상위 0.1%(1만 9,495명)의 1인당 연평균 급여소득은 8억 3,339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중위 소득자의 연평균 소득 2,895만 원의 28.8배에 달한다. 1년 전인 2019년 기준 27.2배에서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이런 현실은 가진 자들에게는 천국이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지옥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목숨 걸고 부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천박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메인은 외모지상주의와 성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이미지와 선정적인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는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사회의 모순을 이렇게 지적한다.
‘외모와 소유물이라는 외적 가치에 집착하는 비이성적 문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 결혼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주제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성별에 따라 흥미로운 차이를 보입니다. 남자는 육체적으로 매력 있는 여자에게, 여자는 재력이 있는 남자에게 끌립니다. 이 사회가 부치긴 외모와 물질적 부에 대한 동경이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요즘 대세인 연상연하 커플과 돌싱들의 재혼도 사랑하기에 결혼하는 것이겠지만 분명 그 안에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일반인들도 저런 행운이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믿기에 신데렐라나 바보 온달을 꿈꾸고 있다.
저자는 이런 삶의 모습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돈과 권력을 잡은 자들에게는 매혹적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냉혹한 사회입니다. 관대함과 관용이 아닌 불안과 이기심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사회에는 영원히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
“물질주의, 경쟁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책을 읽으며 바른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에게는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사회의 변화나 발전은 이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든 리빙스턴은 천박하고 가볍고 즉물적인 사회를 바꾸는 것을 용기라고 말한다.
‘우리의 영혼은 어느새 시들어버렸습니다. 주변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냥 외면해 버리고, 그런 일이 자신과 가족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버립니다. 그저 세상의 불의와 고통은 내 얘기가 아니므로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채널을 돌릴 뿐입니다.’ (164쪽)
“나 자신도 이 시대의 욕망에 물들어 살고 있지 않은가?”
가벼운 오락프로를 보며 낄낄거리고, 연예인의 사랑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프로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것이 책의 힘이다.
용기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만든다. 우리는 이것을 도덕적 용기라고 부른다.
어렸을 때 흔하게 보았던 반딧불, 아카시아꽃을 따 먹으며 함께 어울렸던 아이들, 소아마비에 걸린 친구를 같은 반 아이들이 서로 돌아가며 업고 교실까지 데려오던 작은 희생, 천 원이라도 생기면 중국집에 몰려가 자장면을 함께 먹던 즐거움 등은 점점 사라지는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개인의 탐욕과 욕망이 도덕적 가치인 용기를 사라지는 시대의 유물로 만드는 데 있다.
“남보다 더 많이, 남보다 더 놓은 자리, 남보다 뛰어난 미모”
등 우리 시대는 언제나 끝없는 욕망을 향해 위로 오르는 애벌레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그 삶의 허무함을 알았기에 내적인 삶을 추구했던 줄무늬애벌레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시대도
“누가 이 사회를 바꾸겠나?”
는 절규가 있어야 한다. 줄무늬애벌레가 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성찰과 투지를 요구하는 원칙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의 말처럼 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내지만 더딘 것이 서두름을 이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믿음이 되어야 한다.
배경음악은
Joan Baez - 'We Shall Overcom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