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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Sep 20. 2023

리움 미술관과 Y

김범 기획전을 보고

인사동을 걷다 보면 나이 든 남녀가 웃으면서 다정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부러움이다.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부부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이상한 관계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인사동이고 화랑이 있기에 “연인과 같은 친구가 아닐까?” 란 상상을 하며 그들의 뒷모습에 다시 한번 눈길을 주는데 이런 친구를 만난 것은 호사임이 분명하다.

“쎄이리 형아”
라는 다정한 호칭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그녀는 오프라인에서 몇 번 만남을 가졌기에 마음이 가는 Y다.

전혀 가식이 없고 고속도로와 같은 넓은 포용력과 쾌활한 성격, 거기에 붙임성이 좋기에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친구다.


12일 Y와 함께 김범전을 관람했는데 두 번째의 미술관 만남이다. 원래는 몇 사람이 함께하기로 했지만, 주중이고 개인 사정 때문에 오지 못했기에 부러움으로 바라봤던 남녀 데이트(?)가 현실이 되었다.
약간의 설렘으로 다가오는 만남을 좋아하기에 머리에 젤도 바르고 “옷도 무슨 옷을 입지?”라며 신경을 쓴다. 가방에 관심을 두었기에 아들이 사용하고 있는 숄더백을 빌려 손에 들었는데 흔한 말로 10년은 젊어 보인다. (흐뭇한 웃음)
리움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Y 친구 S를 위해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책꽂이에서 감성 에세이 한 권을 꺼내 포장했다. S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기에 책 선물도 조심스러웠지만 고마움은 전달되지 않을까? 란 기대감을 갖고 가방에 넣었다.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숄더백을 들고 11시에 집을 나섰다.
가을답게 푸른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햇볕은 아직 따갑기에 얼굴을 찡그리며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다. 하늘을 향해 길쭉이 뻗은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도 다리미로 펴지는 것 같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는 길이다. 가끔 사진을 찍어 보관하게 되는데 벌써 위쪽이 빨간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가을이다.


오후 1시
아래위를 블랙으로 꾸민 Y를 만났다. 활짝 웃음으로 다가오는 벗을 보며 미소를 지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는 활달하다.   

“형아 사진 찍자”     

보자마자 미술관 입구에서 친구는 셀카를 찍는다. “어울리게,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란 바람과 함께 미소를 지었는데 항상 사진 속의 얼굴은 자신이 아닌 이방인이다. ㅠ
조금 뒤에 리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Y의 친구 S가 다가와 김범전 티켓을 전해준다. 구면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수줍게 책 한 권을 전했다.

“다음에도 이러시면 리움 오실 수 없으세요.”라며 웃는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첫인상은 30초 이내로 결정된다고 하는데 S에게서 느껴지는 단아함과 조용함, 그리고 지적인 모습이 매력적이다. 커피를 마시자고 해서 “제가 살게요.”라고 했더니 당연히 본인이 사야 한다며 계산을 한다.

“즐거운 관람되세요”
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스커피를 전해주는데 멋진 벗을 둔 Y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휴게실에 앉아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가장 친하게 지낸 절친이란다. Y의 성격이 좋은 이유는 “S가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났다”라며 칭찬을 하길래
“질투 나지 않았어?”라고 물었더니 깔끔하게 아니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ㅎ)    



커피를 마시고 Y와 함께 김범 작가의 ‘바위가 되는 법’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현대미술은 문외한이기에 며칠 전부터 인터넷과 책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하고 김범 작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3장짜리 유인물을 만들었다.
신비주의를 지향하는지 작가의 사진도, 사생활에 대한 언급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공개된 정보가 없는데 부모님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김세중 조각가(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창작자)이고 어머니는 김남조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구나!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공부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4가지로 정리해 기억하기로 했다.
1) 모든 물질은 생명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물활론적 사고를 갖고 있다.
2) 우리의 눈에 보이는 실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틈새가 있기에 숨겨진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3) 우리의 고정관념은 진실이 아닐 수 있기에 '다르게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4) 작품의 소박함은 캔버스의 소재와 빛깔에서 온다. (전시회에서 본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베이지색 캔버스를 사용해 작품화시켰다)  

현대미술은 어렵기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다행인 것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전문가의 평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상과 생각의 여지를 귀하게 여긴다. 쉽게 표현하면

“난 이렇게 느끼고, 봤는데 뭐 잘못된 게 있어?”  
란 개인의 감상을 우선시한다. 문제는 머릿속에서 느끼고 생각나는 것 없이 몽실몽실한 구름처럼 생각만 떠다니는데 나쁘지 않다. 미술책에서 늘 강조하는 것은 작품을 많이 봤을 때 알게 된단다. 알거나, 모르나 미술관에 열심히 가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유레카!!    



                                       -    heypop. kr에서 이미지 인용 -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벽면에 1분 7초짜리 영상작품 ‘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상식적으로 보면 치타가 영양을 추격하는 것이 동물의 세계에선 진리인데, 자세히 보면 영양이 치타를 사냥하고 있다.

Y가 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한다.      
“반전의 묘미,
약육강식의 상황이 바뀐 것으로부터 시작된 전시야”      
친구가 김범 작가를 세 단어로 정리했다. ‘유머와 반짝이는 수많은 아이디어, 그리고 상상력’ 이 세 단어만 기억하더라도 작가의 작품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 최근의 역사만 보더라도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시민혁명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약육강식이라는 권력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약자인 시민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상식을 뒤집고 현실을 비틀고 고정관념을 깰 때 개인은 성장하고 시대는 바뀌게 되는 것을 예술을 통해 배울 수 있다.      



Y는 ‘임신한 망치’를 보며 작가의 유머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데 공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 중 하나인데 망치를 의인화했기에 스토리텔링이 쉽다. 망치의 역할은 못을 박아 재료를 결합해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데 있다. 망치가 가하는 충격으로 못은 아픔 때문에 재료 속으로 스며들고 망치의 몸도 똑같은 고통을 당하기에 망치는 상처뿐인 영광만 존재한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치는 한 가지 꾀를 내는데 임신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배가 불러오는 망치를 보며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했기에 외면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특이한 모습 때문에 희소성의 가치를 알고 미술관으로 옮겨 전시한다. 망치는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의 추앙을 받는 예술작품으로 변신이 되었다.  

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만 인생은 때론 엉뚱한 곳에서 삶의 판도가 바뀐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보다 알 수 없는 절대적인 힘으로 인생이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운빨이라고 한다. 실력보다 운빨!!     
“내 인생도 여느 날 망치처럼 변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있기에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도 임신한 망치가 되고 싶어”란 염원을 담는다.     



김범 작가의 작품 70여 점을 Y와 돌아보면서 나눈 이야기는 소중하다.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대화는 깊어지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열리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의도를 찾을 수 있을 때 예술은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추상미술이라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기에 리움은 늘 다시 오고 싶은 미술관이다.

리움을 나와 빵집에서 친구와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이 문장을 떠올렸다.      

‘행복한 기억, 추억 하나로 사람은 살아간다.’ 
                                  -  불편한 편의점 2 중에서-     

Y와 그녀의 친구 S로 인해 행복한 기억이 생겼다.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흘러 백발도 사라지며 소갈머리 없는 노인네로 변했을지라도 미술관의 추억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 시간까지 Y와의 우정이 이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추억을 이야기하며 함께 늙어감을 기뻐하지 않을까?     

“안녕”
이란 인사를 나누고 사라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고마워, Y야”     


배경음악은

Don McLean의

'Vincent'입니다.


https://youtu.be/bk-82ebJyZ0?si=XteScD_mVNlcHS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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