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책상' 리뷰
초등학교 6학년 때라고 기억해.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 책상이었어. 그것만 있으면 전교에서 1등은 맡아 놓은 당상이고 공부가 저절로 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책상을 사 오신 거야. 놀라운 것은 책상 크기와 무게야. 나왕이라는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에 니스 칠을 했는데 번쩍번쩍 윤이 났어. 내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크기. 아버지 하시는 말씀
“열심히 공부해서 꼭 사대부중 들어가거라!”
“예”
책상 위에 책꽂이가 설치되고 스탠드도 새것으로 갈았어. 완전 좋았지!!
“공부, 열심히 했냐고?”
초등학교 시절만 열심히 공부했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코피가 나는 거야. 엄마가 놀래 솜으로 코를 틀어막았지만 멈추지 않았어. 아들 죽는다고 울면서 병원으로 데려갔어. 놀라운 것은 한 20센티쯤 될까? 긴 거즈를 의사 선생님이 콧속으로 집어넣는데 그게 다 들어가는 거야.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열심히 공부해서 코피가 난 거래.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모습 지금도 생생해. 그해 7월 15일 권오병 문교부 장관이 중학교 무시험 발표를 했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학교인 사대부중(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을 은행알 돌려서 들어간 거야. 집안이 난리가 났지. 우리 학교만 사대부중 배지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다녔어. 물론 반대 여론 때문에 얼마 뒤에 중(中) 자가 새겨진 모자를 썼지만 ㅠ
원하는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공부는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어. 또 교회 다니면서 예쁜 여자 아이들을 만나며 공부와 멀어졌어. 책상에 앉는 시간은 줄었고, 교과서보다 쓸데없는 책들이 놓이기 시작했고, 서랍 하나는 자물쇠로 채웠어. 거기에는 부모님이 봐서는 안 되는 일기장이나 뭐 19금 책 같은 것들을 집어넣었지…….
몇 번 이사하면서 큰 책상은 사라지고 파란들에서 나온 책상이 내 앞에 놓여 있었어. 철재로 만들어진 책상은 실용적이기에 내 젊음의 시간과 함께했었고……. ㅎ ㅎ
지금 사용하는 책상 위에는 책꽂이 대신 모니터가 놓여 있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는 컴퓨터로 글을 작성하거나 이북으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
K야?
너도 그렇겠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책상은 그 가치를 잃어버렸고, 어느덧 자신의 생활에 꼭 필요한 가구는 아니야. 책은 침대 위에 엎드려 편안히 읽을 수도 있고 글 쓰는 것도 작은 테이블에 노트북 펼치고 앉으면 더 편안하기에 책상도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추억 중 하나인 것 같아.
‘시인의 책상’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을 때 얼른 장바구니에 집어넣었고 너에게 이 책을 선물해 달라고 했지?
이유는 이 시대의 시인은 책상 위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싶었고, 또 하나는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작가의 신음 소리를 듣고 싶었어. 결론은 시인의 책상도 오라방 하고 비슷해. 가난했기에 책상은 사치품으로 여겼고 밥상이 책상의 역할을 했어. 시인은 모텔에서도 글을 쓰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모텔의 이미지는 불륜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장소이기에 거부감이 있잖아?
모텔로 시를 쓰러 가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니?
박성준 시인은 그의 시에서 이렇게 처참함을 말한다.
‘오늘도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몸만 씻고 나온 여관의 뒷문
대낮은 자살하기 좋은 천장처럼 엄숙하다 ‘
‘향락이 시보다 더 진지하다.’고
말하는 시인의 아픔을 감싸주고 싶고, 저속하고 더러운 사회를 향해 같이 쌍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모텔은 아무리 시트를 간다고 할지라도 정욕 냄새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아.
그보다는 카페가 시 쓰기에는 더 좋겠지?
분위기 있는 음악에 또 젊음 자체가 매력인 청춘 남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잖아. 그런데 시인들은 아무도 읽지 않을 시 한 줄을 만들기 위해 떠돌고 있어. 난 그들의 떠도는 영혼이 좋아. 왜냐하면 그나마 시인들이 우리 시대의 토끼 역할을 하잖니?
예전 잠수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압력 게이지가 고장이 잘 났대! 그럴 때를 대비해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지? 토끼의 귀에는 많은 혈관이 분포되어 깊이 잠수하면 귀에서 피가 나왔는데 이것을 보고 위험을 느낀 잠수함이 부상했다고 해. 난 시인들은 토끼라고 믿어.
K야?
너도 책상 위에서 침 흘리고 잔 적 있지?
그때마다 개꿈은 항상 짧은 잔상으로 기억에 남았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예쁜 여배우와의 감미로운 입맞춤. 너무 아쉬워 또 자려고 기를 쓰지만 잠은 달아나고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입가에서는 미소가 흐르고…….ㅎ ㅎ
책상이 주는 가장 좋았던 순기능이야. 시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그들은 아무 때가 어디든지 책상만 있으면 팔을 베고 자나 보다. 그 자유로움 때문에 시인이 탄생하는 것 같아. 비록 시는 못 쓴다고 할지라도 자유로운 정신은 배우고 싶어. 정형화된 삶보다는 조금 삐딱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 책은 30대 중반부터 20대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10명의 젊은 시인들이 책상 위에서 꿈꾸는 몽상인데 확실히 세대 차이가 있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기에 공감은 적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은 참 좋아.
너나 나나 블로그에 글 쓰잖니?
가끔은 이런 글도 써지지 않기에 잠 못 이루기도 하고, 또 자신의 재주 없음에 대한 저주로 꿀밤을 날리기도 하면서 때려치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하잖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에 의미 부여할 수 있는 행위란 생각을 해. 왜냐하면 글이란 것이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잖아? 그나마 이런 글이라도 쓰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바른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에 존재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잖니?
이 책에 소개된 젊은 시인들은 한결같이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써.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사랑하기에 저들은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어. 그 자존감이 좋아. 가끔 시인의 마술에 걸린 정신없는 아가씨들이 있기에 결혼도 하면서 인생의 기쁨을 노래하는데 이 시대에 시인을 사랑하는 예쁜 젊음이 많았으면 좋겠어. ㅎ ㅎ(함민복 시인도 성공했잖아!!- 벌써 옛날 일)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을 정성스럽게 내려.
커피 맛도 좋아야 하지만 내리면서 얻는 마음의 여유와 전해오는 향을 사랑해.
네가 옆에 있으면 뽐내기 하고 싶은데……. 부산까지 택배로 보낼 수도 없고……
가을이다. 책상 위에 궁둥이 붙이고 앉기 좋은 계절. 언제나 마음은 앞서가기에 책상을 정리하고 독서일기를 쓰겠다는 전투적인 다짐을 한다.
유희경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책상 위에는 내가 사랑하는 시인의 글씨가 있고, 책이 몇 권 놓여 있고 새로 구입한 스탠드가 있다. 그 자리에 앉아서 당신을 생각하거나, 구름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 네 가지의 행동 말고 다른 짓들은 잘하지 않는다.’
삶을 단순화시키면 좋겠어, 좋아하는 책 읽고, 글 쓰고, 좋은 사람 생각하고, 하늘 보는 것.
오라방도 이 책 읽고 책상을 정리했단다. 스탠드 하나 새로 지르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서, 갑자기 흰색보다는 주광색 등이 마음에 드는 거야. 책도 몇 권 가지런히 놓았어. 천천히 읽고 싶어. 모처럼 한승이가 전화했단다. 네 안부도 물으며 우리 만날 때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쉽단다. 부산에서 올라오렴.^^
너를 처음 만났을 때 꽃 같은 젊음이었는데
40대라니. 놀랍네. ㅎ ㅎ
가을. 오색의 단풍처럼 화려하게 보내렴.
며칠 전 하늘의 구름이 울산바위 모양 같아. 찍었어
생각나는 사람.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기억하는 삶이 있기에 생은 지속되는 것 같아.
네 이름 때문에 고마워^^
안녕!
배경음악은
Sara K의
'What's a Little More Rain'입니다.
https://youtu.be/s2GJaM38RP8?si=b7JbLsD0WuenSu4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