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홍 편지지는 반드시 읽습니다 분홍빛 편지지는 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의 우편물 사이에서 단연 돋보입니다 읽히지 않을 거란 불안감은 떨쳐버리세요 안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편지는 없다. 연애편지든 위문편지든 팬레터든 상대가 꼭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지를 고를 때 좀 더 시선을 끌 수 있는 것으로 고르고, 심지어는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상대방이 꼭 읽게 될 편지’라는 카피만큼 반가운 멘트가 어디 있겠는가? 카피라이터는 밥상만 차리는 게 아니라 직접 떠먹여 줘야 할 때도 있다.‘
- 이유미 ‘문장 수집 생활’ 중에서 -
’ 분홍 편지지는 반드시 읽습니다 ‘ 이 문장을 읽으며 웃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다이소가 있다. 처음에는 품질을 믿을 수 없기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다이소에서 급하게 연습장을 사면서 수많은 문구류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이때 유튜브에서 젊은 친구들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하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했기에 인터넷과 YES24에서 틈만 나면 포스트잇 플래그, 젤 펜, 샤프, 만년필, 노트 등을 사들였다. 누구에게 편지 쓸 생각은 없었기에 편지지나 봉투는 눈 밖에 두었는데 다이소에서 분홍색 편지지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도 1,000원이라 본능적으로 구입해 몇 가지 다꾸 세트와 함께 만원으로 하루가 즐거워지는 날이 있었다.
얼마 전 Y의 생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책과 함께 문구류를 선물하기로 했다. 이 습관은 젊었을 때부터 “너를 좋아한다”라는 마음의 고백이기에 주는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다. 요즘 가까이하는 친구 중 한 명이 Y이기에 필통 안에 유니스타일 5색 펜, 스테들러 샤프, 색연필, 북마크 등을 넣었다. 그리고 책을 선택해 포장했는데 다이소에서 구입한 편지지가 눈에 들어왔다.
“생일 축하하는 마음을 편지로 써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요즘처럼 이모티콘이나 카톡 메시지로 “생일 축하해”라는 형식적 축하보다는 Y를 생각하며 쓴 다정하고 정성스러운 문장 하나가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젊은 시절부터 이성에게 보내는 편지는 인기가 있었다. 외모로는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편지로는 마음을 흔들었던 경험이 있기에 Y에게도 생일의 의미를 더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거기에 이유미 작가의 이 문장은 충동질의 극치다.
“분홍 편지지는 반드시 읽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이소에서 구입한 편지지 세트가 분홍색이다. 내 앞에 분홍 편지기가 놓여 있고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기에 편지지에 글을 썼다. 연애편지도 아니지만 애정하는 0.38mm 유니스타일 펜으로 수십 년 만에 정성을 다해 편지지 한 장을 채웠다. 뿌듯한 기분
편지는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한 글이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웃기도 하고 마음을 모르기에 불안해하면서 조바심이 날 때도 있고 수십 번씩 문장을 고칠 때마다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친구가 좋아했으면” 이란 바람과 함께 “넌 나의 소중한 벗이야”라는 마음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가장 내밀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오직 한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이기에 편지는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설렘을 안겨준다. 편지를 받은 Y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신랑에게도 보여줬다고 하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