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Oct 16. 2023

짧은 만남, 긴 여운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리뷰

살아있음을 가정한다면 올해 97살이 된 할머니 마릴린 먼로.
핀업걸(Pinup Girl)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작품보다는 ‘섹스 심벌’로 기억되기에 명화극장에서 몇 번쯤은 방영했을 ‘돌아오지 않는 강, 7년 만의 외출’등을 보지 않았다. 작품성보다는 그녀의 몸을 앞세운 B급 영화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기대했던 모습이다. 이 이미지 때문에 그녀는 평생 불행했고 마를린과 스캔들을 일으킨 수많은 남자들도 마릴린에게 요구한 것은 그녀의 몸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의 매력을 백치미라고 부른 것을 보면 머리는 비었고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는  여인쯤으로 매도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먼로의 삶은 외로웠고 결국 그녀가 자살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추론할 수도 있다. (타살이라는 설도 있기에) 
자신의 이미지에 대하여 항변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눈물겹다.


사람들은 나를 사람이 아니라 무슨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봐요.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보는 것이죠.
그들은 나를 음란하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은 결백한 척하지만
그들은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알려하지 않죠.
그 대신 나라는 사람을 마음대로 지어냅니다.‘ 

                                                        - 마릴린 먼로의 일기 중에서 - 



지나간 시대의 섹스심벌이기에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일까?
영화는 호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은 한적했다(2012년 2월 29일 개봉) 아직도 먼로를 섹스 심벌로만 기억한다면 이 영화를 통해서 그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알려진 것처럼 백치미나 섹스 심벌로 각인되었던 그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뇌하고 갈등하는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은 자막을 통해 영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1956년 마릴린 먼로는 영국의 국민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케네스 브레너)와 함께 '왕자와 무희‘를 촬영하기 위해 영국에 온다. 그녀는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는 최고의 인기스타다. 그러나 촬영장에서는 올리비에와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수면제와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촬영시간엔 항상 늦고 매 장면마다 NG의 연속이다. 정통 연극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올리비에가 보았을 때 먼로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육체를 무기로 화면에서 눈요깃감이나 제공하는 그렇고 그런 여배우로 보인다. “그냥 섹시하게 해 봐 그게 장기 아냐?” 이렇게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그러면서도 먼로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이 남자 못 말린다. 비비안 리가 남편을 정확히 봤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노배우 데임 시벌 손다이크(주디 덴치)의 모습은 노인의 지혜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제3의 감독이라고 불리는 막내 조연출 콜린(에디 레드메인)은 올리비에의 비서나 마찬가지다. 그는 영화계에서 일할 것이란 꿈이 있기에 성실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한다. 콜린은 이미 영화를 통해 마릴린의 매력에 쏙 빠져 있었는데 영화 촬영을 위해 나타난 그녀를 면전에서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린다. 이제 23살인 콜린은 순수하고 열정을 가진 착한 젊은이다. 올리비에는 콜린에게 그녀의 일정을 관찰하고 보고하는 일을 맡긴다. 마음이 들떠있는 콜린은 처음으로 마릴린의 방을 노크하며 대본연습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을 전한다. 이때 거울 너머로 콜린의 얼굴을 본 마릴린이 환하게 웃는다. 사랑의 시작일까?


영화로 인한 올리비에와의 갈등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인 아서 밀러도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핑계로 미국으로 가버린다. 마릴린은 혼자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만인들에게 알려진 섹스 심벌로서의 마릴린이 아니라 연약하고, 외롭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마릴린은 자연스럽게 콜린과 가까워진다. 그는 젊고 친절하다. 콜린과 함께 있으면 섹시 스타가 아니라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30살의 여자일 뿐이다. 두 사람은 급작스럽게 가까워진다. 화면 속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데이트 장면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정원에서 처음 데이트할 때부터 마릴린은 자연스럽게 콜린의 팔짱을 끼며 환하게 웃는다. 매력적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가벼워진다. 사랑할 때 연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쁜 장면으로 보여준다. 마릴린은 자신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힘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콜린은 웃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준다.  

낙엽이 살짝 떨어진 푸른 잔디 위를 맨발로 걷고 뛰는 그녀의 모습과 윈저궁의 웅장함, 그리고  궁 안의 도서관, 그 유명한 이튼 스쿨 등에서 두 사람의 데이트는 멋진 그림으로 그려지고 자신이 마치 콜린이 되어 마릴린과 데이트를 하는 착각이 들기에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모처럼 즐거운 기분으로 본 영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불과 1주일 만에 끝난다. 아서 밀러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또한 마릴린은 콜린에게 영화가 끝나면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며 그간의 일은 잊으라고 한다. 콜린은 나지막이 말한다.
“잊을 수 없어요, 마릴린 먼로도, 할리우드도 다 잊어버리고 나랑 결혼해요”
마릴린은 거절한다. 상처 입은 콜린은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마릴린의 표정이 애처롭다.


이런 의문이 든다. 콜린도 그녀의 품속에 있었던 수많은 남자 중에 한 명이었을까?
마릴린의 죽음을 아는지라 “그때 콜린과 함께 자연인이 되어 살았으면 행복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짧은 사랑이 화면 속에서 너무 아름답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중 하나. 왼손을 턱에 걸치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마릴린의 표정은 여전히 외로움이 있다. 둘 그녀는 누군가를 응시하며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콜린 아닐까?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정하의 시 ‘한 사람을 사랑했네!’를 떠 올렸다.


‘이 땅 위에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


한 사람을 사랑했으므로 진정 행복했다면 콜린과 마릴린의 사랑은 그래서 애절함이 있다.
가을바람에 쓸쓸함을 느끼거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면 이 영화 대리만족이 있다.
죽었어도 화면 속의 마릴린 먼로는 역시 만인의 연인이다.

그 말은 내 연인도 된다는 뜻이다. ^^


영상은 

'마릴린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 대해 

김태훈&이동진의 영화평입니다



https://youtu.be/XJVajODPwO0?si=HljdSZ8iWduwWKAG








매거진의 이전글 이 가을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