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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Oct 26. 2023

쫄지 마 쎄이리~~

도서 '남자의 물건' 리뷰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아내다. 

짧은 여행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며 나름 즐겁게 살려고 애를 쓰는데 그 모습이 싫지 않다. 얼마 전부터 틈만 나면 늦은 시간까지 수세미와 받침대 만드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데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 나이의 여자들이 다 그렇듯이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등으로 인해 꿈꾸던 삶을 살지 못했던 여인들이 폐경기가 다가오면서 “나 뭐 하고 살았어"란 회의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며 살고 싶기에 가족으로부터 탈출을 시작한다. 사춘기 시절처럼 친구들 만나 수다 떨고, 영화 보고, 여행도 가고, 좀 더 여유가 있으면 10만 원이 넘는 공연도 보며 지난 젊음을 그리워한다. 티켓 파워 최고인 임영웅 공연이 500만 원에 거래되는 이유도 삶이 공허한 아줌마들의 힘이다. 



그렇다면 할배는 뭐 하고 있을까?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아진 남편은 집에서 혼자 노는 게 좋다. 그래도 이 나이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긍지이기에 E-BOOK 글자 키워가며 한자라도 더 읽으려고 애를 쓴다. (어려운 책은 못 읽는다 ㅠ) 거기에 커피와 음악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필수요소이기에 혼자서도 잘 논다. 이런 일상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부럽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은 그럴지 모르지만 속에는 근심 걱정이 있다. 어쩜 그것을 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파마만 하면 누구나 베토벤이 되는 줄 착각하는 김정운 교수(지금은 작가)의 글이 표면적으로는 재미있지만 조금 더 그와 친해지면 그의 글 속에는 아저씨의 삶에 대한 잔잔한 아픔이 녹아있다. 심리학자답게 그는 중년의 아픔과 슬픔을 잘 파악하고 해결책도 제시한다. ‘남자의 물건’이라는 요상한 제목 때문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콤비플레이로 만들어진 가벼운 담론인 줄 알았다. 요즘 이런 책들이 인기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남자의 물건’은 그렇게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는 조금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재미있고 쉽게 풀어나가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남자의 물건’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가진 이 책을 집필한 동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다. 존재 확인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적을 분명히 하면 쉽게 해결된다. 적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통해 내 존재를 아주 명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없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은 모여서 기껏 정치인 욕이나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않은 증거다. 그저 주어진 일상에 순응하며 앞만 보며 달렸기에 'One of Them'은 성공한 남자에게 주어진 훈장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지금은 'Only One'의 삶을 사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문제는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며 달린 남자에게 '하나뿐인 나' 라는 가치는 어울리지 않는 패배자의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쉽게 꿈을 말하고 목표를 정하고 거기까지 달려간 사람들의 성공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나도 저들처럼 될 거야 “ 


이런 희망을 갖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쟁에서 낙오되기에 38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현실이 우리의 삶에 더 친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으로 출근하는 남자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연민을 표한다. 



그러나 꼭 그럴까?
자신도 50대 시절에는 독서모임의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갈 때가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는 의무감을 가지고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러나 난 조금 힘들면 주저앉는다. 

“너희들끼리 갔다 와. 난 여기서 쉴래!”

그들을 보내고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는다. 심심하면 오가는 등산객들의 얼굴과 몸매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산에 간다는 것을 꼭 정상에 오르는 것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갈 수 있을 만큼 가면 된다. 그것이 내 인생의 즐거움이다. 젊었을 때 봤던 영화 ‘빠삐용’이 감동적인 이유는 자유를 얻기 위한 그의 용기와 신념 때문이었다. 인생을 빠삐용처럼 살아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섬에 남아있던 드가가 보인다. 빠삐용은 그에게 탈출을 권했지만 드가는 사양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가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을까?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꽃들을 가꾸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기 나름의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섬이 드가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는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나름의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김정운 교수는 이렇게 논리적인 설명을 더 한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 존재의 근거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선택했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된다. 심리학에서 이 선택의 자유와 아주 비슷하게 쓰이는 개념이 있다. ‘내적 동기’와 ‘선택의 자유는 사실 서로 다른 개념이다. 아무리 재미없는 행동도 내가 선택하면 재미있어진다.’


‘남자의 물건’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을 성공이라는 세속적인 잣대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선택으로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누구나 이름만으로 알 수 있는 문재인, 김문수 같은 정치인도 있고 이어령과 같은 대학자와 조영남 같은 연예인도 등장하지만 김갑수, 윤광중, 같은 낯선 이름도 있는데 저자는 김갑수, 윤광중의 인터뷰 내용을 제일 앞에 실었다. 자신과 가장 친하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쩜 이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선택의 자유를 누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두 분 다 필자가 지독히 흠모하고 좋아하는 인물이다. 



 김갑수를 명작스캔들이라는 교양 프로에서 처음 봤다. 문화평론가이기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스타일은 인정해주고 싶었는데 의외로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시인이었다. 한 권의 시집을 달랑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시인임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고 재미있는 인물이란 생각을 했는데 김갑수는 오히려 기인에 가깝다. ‘오직 음악 듣고 커피 마시는 일만 한다.’ 김정운 교수는 김갑수의 삶을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작가 송영은 한 인터뷰에서 전세방보다 비싼 오디오를 가지고 있던 것을 자랑했다. 그때부터 그 삶을 부러워했는데 김갑수는 부러움의 대상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가 쓴 2-3권의 책을 읽어보면 얼마나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자아라는 주체로 서는 게 아니라 대상에 함몰되는 거지. 돈이나 밥이 아닌 다른 것에 함몰되는 것은 참 근사한 거야.’ 


멋지지 않은가?


돈이나 밥을 떠난 인생을 사는 것      

그 인생이 행복한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사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의 설렘. 김정운 교수는 설렘이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설렘이 없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기 위해 삶은 외로워야 한다고.

그래, 아내도 외롭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나도 외롭기 때문에 방구석에서 노인의 삶을 즐기는 것이다. 나름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이고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책을 읽으며 아직도 설렘을 누리고, 커피를 타면서 즐겁고, 아직도 영화관의 어둠을 좋아한다면 괜찮은 삶이다. 왜냐하면 떠밀린 삶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정운 교수의 멋진 한방이 결론이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일에 제발 쫄지 말자는 이야기다.’
내 삶에 쫄지 말자.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https://youtu.be/yt0ryG0kJLw?si=972Rf1bRyhByr8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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