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가 넘는 상금을 미끼로 우리나라의 각 방송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방영하고 있다.
예선전에 수만 명의 지망생이 몰리고 시청률도 잘 나오기에 이런 열풍이 부는 모양이다. 2012년으로 기억하는데 ‘오페라 스타’도 이런 시류에 편승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이름 꽤나 알려진 가수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는 것 때문에 간간이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들이 부르는 아리아는 한 번쯤 들어봤기에 귀에 익숙한 곡이다. 문제는 어느 오페라에서 불린 곡인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기에 배움을 염두에 두고 본 기억이 있다. 이 프로를 통해 자신의 오페라 상식이 증폭된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그 영향 때문이지 오페라 아리아만을 모아 놓은 음반을 구입하고 Yes에서 기획 상품으로 판매했던 ‘Opera Best Collection’도 구매했다.
이 프로를 보면서 귀에 거슬리는 음성이 있었는데 멘토로 등장한 국민 바리톤 서정학이다. 대중의 집중을 받으려고 일부러 꾸민 듯한 니글거리는 억양과 가식이 묻어나는 웃음 때문에 “뭐야?” 이런 거부감이 있었는데
"오페라와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
는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애를 쓰는 저자의 의도를 알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바리톤 서정학이 ‘오페라 읽는 즐거움’을 출간한 것을 알고 예전에 구입을 해놓았다. 이유는 저자의 말처럼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쓰인 책이라면 초보 독자에게 오페라에 대한 접근을 쉽게 인도해 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두껍고 딱딱한 이론만 나열된 오페라책이 아니라, 재미있고 유쾌한 책을 만들자’
라는 그의 의도대로 이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인 희로애락에 맞춰 20개의 오페라를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 해당하는 리허설 부분에서 오페라를 시, 연극, 미술, 무용 등으로 구성된 종합예술로 설명한다. 아무리 오페라의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아리아(Aria)란 단어는 들었는데 막상 설명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는 이에 대한 정의를
‘독창 중 특정 시점에서 주인공의 심정 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단순 명료하게 설명한다.
이 뜻을 기억하며 누구나 들어본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 ’ 어떤 개인 날‘을 찾아 오디오로 들었다. 오페라의 내용은 모른다 할지라도 이 아리아를 듣는다면 누구나 극한 슬픔의 감정을 갖는다. 왜냐하면 소프라노의 음색과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저자가 분류한 것처럼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인 애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페라의 배경까지 안다면 그 감정은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그 당시 오페라계의 흥행제조기로 불렸던 푸치니는 런던에서 연극 ’ 나비부인’을 보자마자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하고 당장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에게 대본을 의뢰했다고 한다. 그러나 1904년 라 스칼라 극장 초연에서 푸치니의 흥행기록은 참패로 끝나고 만다.
”2막이 너무 길어 지루하다 “
는 반응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어 길고 지루한 2막을 대폭 줄이고 중간에 막을 하나 더 넣어 마침내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다. 결국 나비부인은 그의 명성에 훈장 하나를 더한 오페라의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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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일본식 집에서 미국 해군 중위 핀커튼과 게이샤 초초(나비부인)는 전통 혼례를 올린다. 동양의 사고방식대로 초초는 핀커튼을 평생의 반려자, 지아비로 생각하지만 핀커튼에게 초초는 일본에서 적당히 즐기다가 버릴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3년 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소식이 없지만 초초는 오늘도 남편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눈앞에 하얀 연기를 뿜으며 고동을 불고 배가 항구에 들어설 때면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초초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반갑게 편지를 뜯었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미국인 여자와 결혼을 했고 나가사키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초초를 만나러 오는 것은 아니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초초는 밤늦은 시간까지 핀커튼을 기다리지만, 그가 오지 않기에 처량한 마음으로 달빛만 바라본다. 이때 잠이 든 아이를 위해 자장가를 부르던 초초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왔지만, 그의 옆에는 부인 케이트가 함께 있다. 그녀는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초초에게 이 아이를 주면 친자식처럼 키워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때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것을 안 초초는 아버지 단검에 새겨 있는
‘명예롭게 살 수 없을 때는 명예롭게 죽어라’
는 문구를 읽으며 자결로 그녀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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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 날’은 미국으로 돌아간 지 3년이 된 핀커튼이 편지 한 장 없자 그를 그리워하며 초초가 부르는 아리아다. 이렇게 슬픈 내용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녀의 아리아는 더욱더 감성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아픈 사랑의 상처나 흔적 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 날 바다 저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배가 나타납니다. 그가 왔어요. 나는 만나러 갈 겁니다. 언덕에서 기다리는 것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라는 가사는 아직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초초의 어리석음과 아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느끼는 공감이 있다.
어젯밤처럼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상념에 젖어 ‘어떤 개인 날’을 들으면 잘 어울릴 것이란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삶은 때로 과거의 한 시점을 돌아보며 얻는 행복이 지금보다 더 소중하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 말이다. 헤어진 연인들은 초초처럼 아직도 그 사람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에 더 아련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오페라도 인간의 감성에 호소한다. ‘오페라 읽는 즐거움’은 오페라의 주인공과 내용, 관전 포인트별로 구별해서 친절하게 20개의 오페라를 안내해 주고 있다. 더군다나 서두의 한 마디는 명언이다.
‘오페라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낯설 뿐입니다’
상위 1% 만이 즐기는 예술이었기에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던 오페라도 이제는 대중성을 가지게 되었다. 공연과 큰 차이는 있겠지만 유튜브 영상과 저장매체의 발달로 인해 집에서도 오페라를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또 쉽게 접할 수 있는 오페라 개론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오페라도 무척 가까운 예술이 되었다. 아직도 오페라는 낯설지만 계속 아리아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면 친숙한 장르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품위 있고 우아하게 사는 법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자신에게 일 년에 한두 번쯤은 좀 과한 돈을 투자해 자신의 지적 허영을 만족시키는 것도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기억시킨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자기 절제를 통한 노력이다. 이 책 속에 나타난 저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여러분 중 누군가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자책하고 있다면 이 순간부터는 더 이상 자책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신 준비하세요. 운이든, 기회든, 운명이든,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니까요. 그리고 도전하세요. 모든 것이 처음인 것처럼’
저자의 바람이 깨달음이 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이 진심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페라 속에는 우리의 인생이 들어있다. 저자의 삶도, 나의 삶도 한 편의 오페라로 남을 수 있기에 삶은 언제나 다시 출발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기에 한 편의 오페라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