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를 지나던 수많은 차들도 집으로 들어가 안식을 취하는 밤이면 TV를 보던 아내도 홀로 잠이 든다. 적막한 시간에 커피 한잔을 내리며 스탠드를 켜면 따뜻한 느낌의 전구색 불빛이 책상 위에 쏟아진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때는 주로 감수성을 깨우는 책을 읽는다. 자신의 마음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에세이집이나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픈 가슴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시집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봄비처럼 촉촉이 가슴을 파고든다. 박완서 선생님의 ‘세상에 예쁜 것’을 손에 든 것도 그런 이유다.
20대 시절 글 쓰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 당시 70년대 작가군으로 불렸던 최인호, 황석영, 조해일, 박범신 등의 소설을 읽으며 나도 저들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처럼 빛날 것이란 기대감으로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기를 몇 년, 속된 말로 자신의 깜냥을 알게 된 후로 문학은 쉽게 헤어진 연인과 같았다. 책 없이도 인생은 재미있고 살만했다.
어느 날 39살의 늦깎이로 데뷔한 것이 화제가 되었던 박완서의 ‘나목’은 다시 한번 문학이라는 울타리를 어슬렁거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박완서의 작품에 감동했다기보다 39살의 나이에 데뷔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번 더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문학은 떠나간 여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박완서의 등단은 자신의 삶에 동기부여가 되었기에 지금도 70년대 작가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다. 물론 그 동기부여도 잠시 또 몇 년 가슴앓이 하다가 소설과 작별한 지 수십 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박완서의 에세이집만큼은 이렇게 늦은 밤에 찾아 읽는다. 이유는 작가의 글을 통해 엄마를 만나기 때문이다. 내 곁을 떠난 지 20년이 되어가는 엄마를 보고 싶은 것은 윗니가 다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으시는 선생님의 얼굴이 엄마의 모습으로 클로즈업되기 때문이다.
우연하게도 엄마와 박완서 선생님은 나이가 같다. 선생님의 에세이집 ‘세상에 예쁜 것’을 읽으며 엄마의 모습을 떠 올린다. 많이 배우지 못하셨지만 자식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끔찍했던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은 늦게야 엄마의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이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에 해당되는 “나는 왜 소설가인가?”에서는 선생님이 소설가로서 어떤 자세로 글을 쓰셨는가를 배울 수 있다. 특히 40세에 첫 소설을 쓰신 후 40년을 더 살아오시면서 자신을 충분히 젊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문학소녀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젊다는 건 체력이나 용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말하는데 이런 정신의 탄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각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요즘처럼 외모를 최상의 무기로 여기는 시대에 선생님은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만이 젊다고 말씀하시기에 소중한 교훈으로 다가온다. 자신도 육체적으로 젊은 나이가 아니기에 선생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내면에 붙어있는 더러움을 본다. 감수성은 점점 낡아지기에 일기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자기 성찰 없이 사는 삶의 추함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생전에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은 단순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엄마는 아들이 초등학생 때에도,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은 아빠가 되었을 때도 한결같이 착함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착함이라는 것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의 장점이 아니라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을 칭찬할 때 쓰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이 사람이 배운 것도, 돈도, 배경도 없지만 마음 하나는 진짜 착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매도되는 세상에서 엄마는 착한 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고 계셨다. 살아오면서 이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아직도 착함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감수성과 분별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착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착하지 않은 현실에 대하여 분노하고 부조리에 대항할 때 비로소 착함은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한걸음 더 나아가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갖는 것은 선생님이 보여주신 그 소녀 같은 감수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에 예쁜 것’은 선생님의 생각을 읽으며 자기 성찰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책은 뒤로 갈수록 무겁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인생의 스승으로부터 멋진 죽음을 배우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격의 향기가 좋은 분들과 교제하셨던 선생님은 그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글로 적으셨다. 법정 스님에 대해서는 한 시도 공부와 고독한 자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던 높은 정신을 높이 사셨고, 피천득 선생님에 대해서는 자신이 쓴 수필처럼 담백하고 무욕하고 깨끗하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사신 그 모습을 그리워한다. 장영희 교수에 대해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그늘 없이 명랑하고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을 기억하며 아름다운 사람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선생님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보다 아침이슬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친구로 삼으셨다. 부러움이다. 내 나이도 늙음을 향해 가고 있기에 언제나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이제는 선생님도 이 분들과 함께 내세에서 만남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분들이 만난 자리는 얼마나 멋진 인격의 향기가 피어오를까?
엄마는 이분들처럼 인격의 향기도 약하고 내적 성숙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렇게 향기 나는 분들과 친구가 되신다면 그곳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를 상상해 본다.
암 투병중일 때 출간한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엄마’를 읽으면 70살 이 되어가셔도 엄마를 부르는 수녀님의 사모곡을 들을 수 있다. 시구 하나하나가 수녀님의 눈물처럼 절절하고 영롱하게 느껴져, 목이 메어 자신도 "엄마!"라고 불러 보았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살짝 울려고 하니
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엄마
엄마는 이제 가장 아프고 그리운
저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자리를
대신해 줄 순 없을 것 같아요. 엄마'
엄마가 보고 싶다.
올봄에 카네이션 한 묶음 들고 꼭 엄마 산소에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나쁜 아들의 눈가가 촉촉이 젖는 이유는 엄마란 이름이 주는 그리움 때문이다.
이제 박완서 선생님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어쩜 아직 읽지 않은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며 그리움을 달랠지 모르겠다. 마치 엄마가 아들에게 한결같이 “착하게 살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선생님이 보여주신 높은 정신,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평생 젊은이로 사신 삶의 자세는 남은 내 인생에 소중한 가치로 남을 것이다. 다시 커피 한잔을 내린다.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20대 시절에 들었던 지미오스몬드의 ‘Mother Of Mine’이다.
아홉살 때 이 노래를 불렀던 지미오스몬드도 환갑의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이제야 그 노래의 가사를 이해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살아가며 해야만 할 올바른 세상 이치를 알려 주셨지요.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제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어요.‘
엄마나 박완서 선생님이 그리운 이유는 늦게 그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소중한 것은 느리게 깨달아지지만 세상에 예쁜 것을 가지고 있기에 새벽을 아름다움으로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