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Nov 15. 2022

독서에 미친 사람들

'오직 독서뿐' 리뷰

종각역을 빠져나오자 파란 하늘을 뚫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내린 비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빠르게 만들었고 눈앞에 보이는 건물의 현관문을 열게  했다. 종로서적으로 책을 사러 왔던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1층 매장으로 들어섰다. 2층에서 기독교 서적을 구경하고 있는데 짧은 파마머리가 비에 젖은 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흑발의 머릿결은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것처럼 촉촉이 젖어있었고 등에는 젖먹이 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있었다.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기에 그 여인이 궁금했다. 일부러 그녀 앞으로 가서 읽는 책과 얼굴을 살펴보았다. 갸름한 턱선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뽀얀 피부와 반달눈 때문에 무척 귀엽게 보였고, 어떤 남자의 가슴이라도 설레게 할 수 있는 미인이었다.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본 이유는 책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외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비에 젖은 머리와 아이를 등에 업고 독서하는 여인을 쉽게 보지 못했기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
사람은 누구든지 아름답기 위하여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이제 성형은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었고 커다란 눈과 쌍꺼풀, 이등변 삼각형처럼 오뚝 솟은 콧날, 남자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큰 가슴을 가진 여인들이 거리에 넘쳐 나고 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바비인형처럼 개성이 없는 그녀들의 모습에 두 번 다시 눈길을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3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녀의 모습이 또렷이 기억되는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등에 업고 서점으로 달려온 그녀는 무엇보다 ‘오직’ 책을 읽고 싶은 갈증이 있었으리라.

‘오직 독서뿐’
이 책을 손에 잡으며 제일 먼저 눈길이 간 곳은 ‘오직’ 이란 단어였다. 일부러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만.’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다른 것은 없다’ 얼마나 비장한 느낌을 주는 단어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이 단어를 얼마든지 기분 좋게 사용할 수 있다.
“오직 섹스, 오직 돈, 오직 여행, 오직 명예, 오직 독서”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오직 독서뿐’ 이라며 자신의 삶을 책 읽기에 바친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가지 않는 좁은 길을 간 사람의 삶은 아름답다고 믿기에 나 자신도 그 길을 가고 싶다.‘평생 책을 읽다가 죽은 사람’ 그러면 그 가족은 동정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인은 행복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독서가들의 이야기다. 승려들과 교류하며, 기생과도 정신적인 교감을 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허균, 재야의 선비로 일평생 은둔생활을 하며 학문에만 매진했던 성호 이익과 백수 양응수, 일찍이 과거에 응시할 생각을 버리고 이익에게 수학하며 많은 책을 읽었던 순암 안정복,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진실한 선비가 되고 싶었기에 기꺼이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 항해 홍길주, 서자였기에 삶은 서러웠고 가난했지만 굶주림 속에서도 수만 권의 책을 읽었던 아정 이덕무, 유일하게 출셋길을 달려 우의정까지 이르렀던 연천 홍석주 등 이 책 속에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며 독서가로 알려진 9명의 핵심 독서전략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이들을 이기적이라고 한 이유’는 그들은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자신의 지식을 출세의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세상의 성공을 거부했다. 그들은 기꺼이 그 시대의 비주류가 되었지만 “그들의 아내나 자녀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란 의문도 들기 때문이다. 좀 더 높은 자리, 더 나은 보수를 성공으로 여기는 요즘의 세태는 내면의 성숙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세에 능한 삶을 부추기고 있기에 책을 읽는 목적도 자신의 출세에 도움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우리 시대는 흔히 말하는 사(士) 자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한다. 안정적인 직장과 직위, 그리고 돈으로 평가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사람들은 학문을 연마하고 드디어는 그들이 원하는 자리에 오르지만 삶은 세속적으로 변한다.

그러기에 아정 이덕무는 이들의 모습이 불편하고 못마땅하기에 직설적으로 꼬집어 비판한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공부 꽤나 했다는 사람이 입만 열면 성현의 말씀을 줄줄 꾀는데 하는 행실은 간사하고 일마다 속임수나 쓰는 경우다. 젠체하고 잘난 체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차라리 몰라서 무식한 속인만도 못하다. 속인은 해로움이 자신에게 미치지만 이런 인간은 그 해로움이 꼭 남에게까지 가닿으니 문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학력과 세련된 매너만 보고 참 괜찮은 사람이라며 그와 가까이하지 못해 안달을 한다. 우리는 더 나아지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출세하고 잘난 체하고 남 앞에 으스대려고 책 읽는 것은 아니다.’

이정무는 공부와 책 읽는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책이 내 삶을 더 나아지고 괜찮게 하지 못한다면 그 공부와 책은 오히려 남에게 더 많은 피해를 가져다줄 것이다.‘오직 독서뿐’은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9명의 조선 지식인들이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가면서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서의 깊이와 삶의 깨달음이 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책의 저자 정민 교수의 친절한 해설이다. 그는 마치 프로야구의 해설가처럼 9명의 최고 독서가들이 가지고 있는 독서법과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고 이 시대의 문제점을 제기하기에 인기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민 교수는 그의 책 ‘고전 독서법’에서 자신의 자녀 벼리에게 독서의 유익을 이렇게 말한다. “좋은 책은 나를 달라지게 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니지. 눈빛이 달라지고, 마음속에 무언가 뿌듯한 것이 들어앉게 된다. 참 멋진 변화가 아니겠니?”

‘멋진 변화’ 이것이 책을 읽는 목적이다. 이것은 정민 교수의 생각만이 아니라 9명의 최고 독서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독서의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불행하게도 자기계발서나 학습서 등이 독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기에 삶은 경박스럽고 낭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서정(抒情)이다. 물질만능 문명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감성을 빼앗아갔다. 9명의 독서가들은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옷매음새를 정돈했고, ‘깊은 밤 옆집 도련님이 낭창낭창 가락을 얹어 몸을 까달이며 읽던 독서성에 이웃집 처녀의 애가 다 녹았다.’는 표현은 얼마나 멋진가? 어느덧 자신도 책을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침대나 소파에 누워 오징어 다리 씹으며 가급적 편안 자세로 읽는다.
겨울밤에 졸음을 쫓으려고 얼음물에 발을 담가 놓고 읽다가 동상에 걸려 한쪽 발을 잃고 절음발이가 되었다는 명나라 양천상의 삶은 감동보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자신도 어린 시절 남폿불을 켜놓고 흔들리는 심지 아래서 이광수의 ‘사랑’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독서 경력의 자랑거리다. 낭만이라는 단어, 가장 좋아하지만 우리 시대가 잊어버린 단어기에 그 시절이 그립다. 사람의 변화는 이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오감이 자신을 자극하고 유혹할 때 느끼는 쾌감이 있을 때 이성은 결단한다. 독서도 감동이기에 진리를 깨닫고 홀로 기뻐하며 일기장에 그 깨달음을 적기도 하고 연애소설을 읽고는 그 감동을 고스란히 필사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기도 한다.


‘오직 독서 뿐’ 은 이런 감동을 주는 책이다. 독서에 방법에 대해서 깨달았기에,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기에, 정민 교수의 멋진 해설에 반했기에 하염없이 밑줄을 치게 하는 책이다. 그러기에 한번 읽고 쉽게 책장으로 보낼 수는 없다. 자신의 독서법에 대해서 회의할 때, 세속적인 성공을 부러워할 때, 쾌락을 누리고 싶은 유혹이 있을 때 이 책은 자신의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손이 많이 갈수록 좋은 책이라면 오직 독서뿐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책이다. 단지 아쉬움은 자신의 형편없는 한문 실력으로 인해 원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정민 교수를 넘어 자신도 해설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나쁘지 않지만 이제 안다. 과도한 욕심은 해만 될 뿐이라고…….

영화 ‘노트북’을 생각했다.
17살에 만난 앨리를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노아의 사랑, 비록 그녀가 치매에 걸려 그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노아는 그녀 옆에서 지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와 함께 숨을 거둔다. 오직 한 사람만 사랑했기에 감동을 주는 영화처럼 ‘오직 독서뿐’ 은 죽는 그날까지 책 읽기만 사랑했던 순정남들의 진솔한 사랑에 가슴이 저려온다. 아직도 세상에는 이들처럼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쩜 그들은 이들을 이어 10번째의 인물이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그 자리에 이름을 내밀고 싶다.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고 꿈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든지 아니면 음악을 듣습니다. 누구의 방해도 없어요. 책맥을 하다가 사라브라이트만의 노래로 “Dust in the wind”를 듣습니다. 젊은 시절 캔사스의 노래로 많이 들었는데 사라는 이 노래를 품격있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은 먼지와 같은 것” 젊은 시절은 몰랐으나 이제 가사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래도 이 인생에 책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 빼앗길 수 없는 자신만의 행복이군요!!

https://youtu.be/5URvplpG7DU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러운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