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치매?

아직은 아닐걸?

by 이세일

개그맨이 아님에도 사람을 웃고 울리는 재주를 가진 인기 강사 김창옥 씨의 나이는 50살이다.

지난달 23일 김창옥 TV에서 그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내 인생을 뒤흔들 때’라는 영상을 올렸다고 한다. 심각할 정도로 기억력이 감퇴되었고 현관 비밀번호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동수도 잊어버려 뇌신경외과에서 검사했더니 치매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으며 순간

“나도 그런데, 설마 내가”

아직은 자신을 믿기에 흘린 여유로운 웃음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안심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몇 달 전 착한 일을 하겠다고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핸드폰도 책상 위에 놓고 슬리퍼를 신은 채 가볍게 문을 나섰다. 임무를 완수한 후 빈 쓰레기통을 들고 다시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열댓 번쯤 시도해도 문은 삑삑 소리만 내며 꿈쩍도 앉는다. 순간 아내를 의심했다.

짜증 나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비밀번호 바꾼 거 아냐?”

나중에 알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옆집에 살고 있는 청년이 아내에게 전화한 것이다.

“수상한 사람이 자꾸 문을 열려고 하는데 전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겠어요”

15분 정도 헤매며 자신이 잘 쓰고 있는 비밀번호를 총동원해 결국 문을 열었는데

“나에게도 이런 일이…. ” ㅠㅠ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

아야세 하루카’

의 이름을 외우는데도 수십 번 반복했다.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은 아예 외우는 것을 포기하고 메모를 해 놓을 정도니, 기억력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전 오후 3시 30분에 치과를 예약해 놓았기에 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울의 봄’을 예매했다.

잘 가는 극장이 신도림 디큐브시티에 있는 롯데시네마이기에 11시 25분 표를 온라인으로 구매한 후 카톡에 저장해 놓았다. 2시간 정도 여유로운 시간이 있기에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1호선을 타고 동인천까지 갔다가 돌아와 11시 신도림역에 내렸다. 7층에 있는 롯데시네마로 올라갔더니 11시 10분이다. 5분만 더 기다리면 자율 입장이라 자연스럽게 들어가면 되는데 25분이 넘도록 입장하는 사람이 없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매점에서 서빙하는 직원에게 핸드폰을 들이밀며

“제가 11시 25분 표를 예매했는데 왜? 입장이 안 되죠?”

예매표를 본 직원 하는 말


“선생님 이곳은 신도림 롯데시네마예요.

선생님이 예매한 곳은 신림 롯데시네마고요”

“아! 이런 바보 ㅠㅠ”

다시 표를 끊어 영화를 보자니 치과 예약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문제는 또 2시간 30분 정도 빈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보내지?



갈등하다가 디큐브시티에 교보 문고가 있는 것을 기억해 냈다. 예전에도 몇 번 들렸던 기억이 있기에 모처럼 오프라인에서 책과 문구 구경을 하기로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중얼거린다.

“나 치매가 진행 중인 거야?”


교보 문고에 들어서는 순간 치매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친숙한 공간이 주는 행복감에 마음이 쩐다.

책과 음악 문구가 있는 공간은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여유로움이 있다. 거기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대에 진열된 책을 고르며 읽는 모습이 멋지다. 낮이라 내 나이 또래의 노인과 젊은 여성, 중년의 여인이 기쁜 표정으로 긴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자신도 그중의 한 사람이 되고파 책을 한 권 골라 읽기로 했다. 수많은 책 중에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 맥주 영화’


제목이 유혹적이고 매력적이다. 1시간 30분 정도 읽으니까 삼분의 일은 읽은 것 같다. 구매할까 하다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 책은 생략하고 대신 옥스퍼드 노트 2권을 구입했다. 그 책을 읽으며 메모 한 줄 했다. 저자가 꼭 마셔보라고 추천한

‘IPA 플루토 블론드 에일’이다.

일반 시중에는 없을 것 같고 전문 매장이나 POP에 가야 마실 수 있는 맥주이기에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편의점에서 제주 IPA 에일 맥주는 구입할 수 있기에 결정했다.



오늘 치과 다녀온 기념으로

“IPA 에일 한 잔”


내 인생에 치매가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니다.

기억력은 희미해지고, 현관 비밀번호도 잊어버릴지라도, 오늘 살아야 할 삶을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다.


난 아직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거기에 맥주 한 잔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풍성한 삶이다.


배경음악은


감미로움 때문에 기분 좋아지는 곡


Gregory Abbott의 'Shake You Down'을 즐겨 듣는답니다.

검색해 보니까 가사는 쫌 야하군요 ㅎㅎ


https://youtu.be/Uc8wmLul3uw?si=AZ_82KMvTxOKrA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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