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쪽팔림으로 인해 무릎에서 피가 흐름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걸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 인생은 더 힘들고 복잡해졌기에 타인은 모르는 내상을 가슴에 안은 채 신음하며 산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의 ‘밤의 끝을 알리는’을 읽으며 그녀의 아픔에 깊은 공감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부정할 순 없지만 가난한 아티스트로 사는 심규선 작가의 삶에 공감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이렇게 표현한다. ‘어쩌면 넘어지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를 시간을 지나 이제 나는 무언가를 통해서가 아닌 나 자신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찾아내길 바라고 있다. 단순히 보는 데 지나지 않고 더 많은 것들을 그 안에서 수없이 발견해 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도 있지 않을까 한다.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옳은 눈으로 내가 나 자신을 볼 수 있을 날이. 그리고 그 안에서 녹지 않고 투명하게 빛나는, 자신만의 눈 결정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148p) - 밤의 끝을 알리는 – 중에서
넘어지는 시간을 부정하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그 시간을 통해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킨 것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밤의 끝을 알리는 시간까지 창작에 몰두하고 낮에는 산책하는 루틴의 힘이다. 걸을 때 만나는 나뭇잎을 만지기도 하고, 햇살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려 심호흡하면서 인생을 견뎌낸다. 산책하면 떠오르는 철학자가 임마누엘 칸트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50킬로미터 이상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철학자의 삶은 산책으로 상징된다. 요양차 머물렀던 스위스 '실스 마리아' 호수 근처를 매일 산책하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떠 올렸다. 소크라테스, 버지니아 울프 등도 산책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 산책은 정신이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드는 시간이기에
나의 산책도 생각의 확장을 소망한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고 깊은 사색은 못 한다 할지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천천히 걷고 싶다.
눈 내린 날 운현궁
대부분의 사람은 건강을 위해 걷는다. 새벽을 달리기도 하고 공원에 모여 댄스 강사를 따라 춤을 추면서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소중한 일이지만 자신에게 걷기나 산책은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이나 영혼이 맑아지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규리 작가의 글이 매혹적인 이유도 영혼이 맑아지는 산책을 배우기 때문이다.
‘노을이 강렬할 땐 함께 울기도 했다. 그 이후 산이 가까운 공원 안에 살게 되면서 바람과 나무와 허무의 빛깔을 수시로 보고 있다. 이 공원에서 나는 많은 새소리를 들었고 나무의 흔들림을 보았으며 바람이 지나는 길에서 먼 사람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골을 타고 오는 겨울바람 소리가 상실감보다 더 큰 실감을 주었고 허공을 다 차지하는 나무들의 흔들림 아래서 왜 이토록 삶은 부조화한가를 묻기도 했다. 우리는 얼마나 가야 진심에 닿겠는지, 무엇을 보아야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해답은 있거나 없었지만, 나는 나무의 삶이 해답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살구나무의 봄 빛깔이, 산딸나무 흰 꽃들이, 청단풍 이파리의 섬세함이, 잎갈나무의 바늘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진심인 시간에 아픔이 물밀 듯 오기도 했다’
작가는 산책을 통해 3가지 인생의 유익을 얻는다.
첫째 자연과의 교감이다. 노을, 바람, 나무, 새소리 등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누구나 보고 듣기에 작가와 자신과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보고 느끼고 들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자신에게는 부족하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 한계를 알기에 철학자의 산책보다는 일상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표현한 에세이를 통해 마음을 정화한다.
두 번째 자기 모습을 들여다본다. 자신 안에 감추어진 속물근성을 찾아내고 산책을 통해 자기반성을 한다. 시인도 ‘나는 때가 많이 묻었으므로, 췌언이 많았으므로, 솔직하지 못했으므로, 아는 체했으므로, 묵은 먼지를 털어 내는 일이 산책 아니었을까.’라고 말한다. 홀로 하는 산책은 자신과의 대화만 가능하기에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타고 기분 나쁜 일을 경험하며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속물근성을 끄집어냈다. 옆자리의 건장한 청년은 폭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난 힘에 밀려나 있다. 더군다나 다부진 팔로 압박하는데 짜증 난다. 한 마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의 연기처럼 올라왔지만 소심한 남자는 "참아야지"가 답이다.
세 번째 외로운 캔디의 삶도 좋다. ‘산책은 혼자를 사는 일이다. 혼자서 혼자를 넘어서는 일이다. 왜 나는 늘 혼자인가, 이젠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갈수록 점점 혼자가 되어 있어도 괜찮다. 누군가와 함께 산책해 보았지만, 보폭이 맞지 않았고 그들은 침묵을 버거워했다. 나는 맨발처럼 오로지 혼자 있다. 혼자라는 일, 그러나 완벽히 혼자인 삶은 불가하다. 혼자라고 말하지만, 혼자인 적 없다. 까뮈의 노트가 있고 카프카의 생이 있고 첼란의 시가 함께 있으므로, 그리고 아주 많이 내가 빚진 우리의 윤동주와 최승자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행운과 그로 인한 소중한 벗들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섣불리 혼자를 입에 올리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내 공간 - 테라스 카페
나이 들수록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노인이 많은 모양이다. 우울증과 자살은 외로움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물인데 아직은 괜찮다. 혼자 있으면 편하고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책과 영화, 음악, 커피, 문구류는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찬양한다. 거기에 혼술의 즐거움도 있지 않은가?
김포는 산책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기에 만족한다. 집에서 10m만 벗어나면 둘레길을 만날 수 있고, 10분만 걸으면 자신의 정원이라고 우기는 장릉이 있다. 아내가 꾸며놓은 테라스 카페는 계절이 바뀌는 봄과 가을이면 가치가 증명되는 사랑스러운 자신만의 공간이다. 거기에 책상 위에 앉으면 보이는 푸른 하늘. 하드웨어는 완벽할 정도로 갖추어져 있는데 문제는 빈약한 소프트웨어다. 스쳐 가는 바람, 어깨 위로 내리는 따스한 햇살, 반갑게 울어대는 이름 모를 새소리, 푸른 하늘을 나는 비행기 등을 통해 얻은 행복을 표현하지 못하는 빈약한 사고력은 부끄러움이지만
“서툴면 어때 모자라면 어때”
예전엔 이 모습을 부끄러워했지만 이젠 당당하다. 세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점심을 가볍게 먹고 창덕궁과 북촌을 걸을 수 있고, 집에서는 장릉과 둘레길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나설 수 있다. 아마도 산책하는 시간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지고 사고의 폭도 넓혀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에 오늘도 신발 끈을 당기며 문밖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배경음악은
중경삼림 OST 중에서 Faye Wong의 'Dreams' 입니다. (산책할 때 즐겨 듣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