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팝송을 들었으니까 햇수로는 53년쯤 되는 시간이 흘렀다.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은 잊었지만 처음 들었던 곡은 기억하는데 Steam이라는 7인조 밴드가 부른 ‘Na Na Hey Kiss Him Goodbye’다. 사춘기 시절에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최동욱의 0시의 다이얼,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을 들으며 청춘이 지나갔다. 그 당시 최동욱과 이종환의 라이벌 구도가 대단해 양측 다 열성 팬이 존재했다. 좋아하는 곡을 엽서로 신청해 채택되면 DJ가 읽어주었고 사연을 소개하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연말이 되면 각 방송국에서는 예쁜 엽서 전시회를 했는데 아이들은 정성을 다해 보낸 엽서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사연을 읽으며 감탄했다. 지금의 젊음은 상상할 수 없는 낭만과 느림이 시대정신이었다.
중학교 시절 RCY 미팅에서 만난 소녀에게 잘 보이려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곡을 녹음해 전해주었던 순애보도 기억난다. 그 뒤로 카세트 시대가 열리며 소니 워크맨은 돈 좀 있는 아이의 자랑이었고 나처럼 없는 아이는 삼성 마이마이로 위안을 삼았다. 이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때 드디어 독수리 표 전축으로 LP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원판은 비쌌기에 백판을 사러 세운상가에 자주 들렀던 기억도 좋은 추억이다. 재미있는 것은 언제나 빨간책을 호객하는 삐끼가 앞을 가로막으며
”학생 Play Boy나 야한 책 있어!
구경해 봐 “
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넘어간 기억은 없다. 오직 백판 몇 장을 사 기쁜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명동이나 종로. 무교동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았다. 이때도 하이라이트는 자신이 신청한 곡이 채택되었을 때의 즐거움이다. 그 당시는 분식집도 DJ가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물론 돈벌이는 안 되는 아마추어들이지만 장발에 도끼빗을 바지 뒷주머니에 꽃은 판돌이는 청춘들의 마음을 끌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듣는 방식도 라디오에서 카세트, LP 시대를 지나 지금은 유튜브나 벅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이로 인해 전축은 사라졌다가 마니아들에 의해 부활하고 있지만 대세는 핸드폰이나 PC를 통해 편하게 음악을 듣기에 LP를 꺼내 음반을 닦고 혹시라도 음반에 스크레치가 날까 조바심을 내며 바늘을 올려놓던 시절은 추억이 되고 말았다. 한두 번 정도 터치만 하면 자신이 듣고 싶은 곡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기에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MP3 파일로 대표되는 음원은 음질 문제로 인해 마니아들의 외면을 받았고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고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Flac, Sacd, Ape, Wav, Dsp 파일 등이 등장했다. MP3 파일보다 몇 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는 대용량 파일이기에 엄청난 저장공간이 요구된다. 또한 고음질 파일이기에 이것을 재생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기에 PC – FI(High Fi)가 대세다. 질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 좋은 성능의 스피커와 DAC(Digital Analog Converter)은 필수장비다. DAC의 핵심 기능은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모든 컴퓨터는 이 장치를 기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듣기에 최적화되지 않았기에 더 좋은 음질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스피커(현대그룹의 3세는 스피커만 3억이 넘는다고 한다 ㅠ)는 기본이고 DAC도 수천만 원에서 수만 원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대를 가지고 있다.
음질이 좋고 나쁨을 구별할 수 없는 막귀지만 좋은 오디오 장비에 대한 욕심은 있다. ”용돈 중에 얼마를 투자할 수 있는가? “고민하다가 작년에 스피커를 바꿨고 진공관 DAC을 알리에서 구입했다. 가격은 저렴하게 20만 원 정도 들었는데 그전 장비와 비교했을 때 뚜렷한 차이는 모르겠지만 음질은 LP 향수를 느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예쁘다 ㅎㅎ 20만 원 정도 투자해 몇 년 행복을 누린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천)
음원은 무지막지하게 모았다. 컴퓨터에는 VA 전집, 가요, 성악가, 연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 영화 음악, 연주, 오페라, 재즈, 크로스 오버, 팝 등의 장르로 나눠 보관하고 있다. 핸드폰에도 4,000곡 정도 저장되었기에 기분에 따라 음악을 선곡해 듣는다.
이규리 작가는 아침에 슈베르트를 듣는다고 한다. 드보르작의 페르퀸트 모음곡도 좋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본인도 좋아하는 곡이다. 작가는 스메타나의 몰다우강을 들으며 체코를 떠올린다. 카를교를 걸으며 스메타나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규리 작가의 모습을 상상한다. 모든 예술은 작가에 대해 알았을 때 감동이 더하기에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난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 ‘Pilsner Urquell’을 생각하며 목젖에 경련을 일으킨다. 라거 한 잔을 마시며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듣는 것도 좋다. 필스너 맥주는 편의점에서 4캔에 12,000원이니까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맥주와 음악은 기분 좋은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이규리 작가는 클래식만 아니라 김광석, 이승철, 포레스텔라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고 한다.
1주일에 두 번은 아침에 퇴근한다. 전날 밤 홀로 박물관을 지키고 있으면 맥주 생각이 난다. 마실 수 없기에 상상을 하는데 퇴근하면 지하철에서 나와 GS 프레쉬에 들려 맥주 4캔을 산다. 안주는 마트를 돌면서 기분에 따라 가볍게 고른다. 얼마 전에 돼지 족발집이 입점했는데 가격도 싸고 맛도 괜찮다. 맥주와 족발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다. 내 세상이다(이 시간이 제일 좋다. 점심은 맥주로 대신하며 음악을 듣는데 행복한 시간이다). 팝을 지나 몇 년 전부터 재즈를 선곡했고 클래식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크로스 오버 장르의 음악을 즐기는데 마음이 고급스러워지는 효과가 있다. 러시아 성악가인 안나 네트렙코(오페라 가수로 예뻤는데 지금은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 ㅠ), 영화 ‘버드’를 보고 홀딱 빠진 찰리 파커의 연주를 듣는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했고 개성 있는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가 찰리 파커 역을 했기에 좋아하는 음악 영화다.
아직 이규리 작가의 시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루틴을 통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한다. 작가의 삶에 공감할 때 그녀의 시는 매혹으로 다가올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소중하게 여긴다.
아침에 슈베르트를 들으며 커피 한 잔의 행복에 빠지고, 밤이 깊어지는 시간은 마약과 재즈에 취해 인생을 마감한 찰리 파커를 떠올린다. 그리고 성스러운 삶을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