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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18. 2024

여기가 나의 지중해

‘평사리에 아침이 밝았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로나 번의 책을 읽는다. 홀로 있는 시간의 힘으로 나는 삶의 작은 언덕을 넘는다.     
모두들 행복하시라. 바로 오늘! 바로 지금!
한 번뿐인 당신의 생이 가고 있으니’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후기 중에서     

출근 후 동료와 함께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이북으로 공지영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완독한 시간이 오전 11시다. 속으로 울컥하며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졌기에 눈물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북이 좋은 것 하나는 쉽게 밑줄을 칠 수 있고 Ctrl + C, Ctrl + V KEY를 사용해 복사한 후 개인 밴드로 붙여놓으면 자신이 어느 문장에 끌렸고 감동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공지영 작가가 사는 하동의 시골 평산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죽을 이유를 30가지나 가지고 있던 작가는 4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정착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자연이 주는 행복에 취해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강은 이명박 정부 때 개발이란 명목으로 파괴되어 자연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고맙게도 섬진강은 4대 강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본래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구불구불한 강의 형태를 따라 걸으면 반짝이며 흐르는 윤슬이 보이고,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지리산 일대의 산과 들에는 봄의 전령인 매화, 산수유가 흰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피어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책을 덮으며 섬진강의 모래사장을 걷고 화개장터에서 해물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취기가 오르면 매화와 산수유꽃의 향기를 맡으며 흐느적거리며 걷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지 않는다. ㅠㅠ

충동을 다스릴 나이가 되었기에 비상구 하나를 만들었다.     
김민철 작가는 ‘여행의 기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물론 육체의 지중해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끊임없이 그곳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반면에 정신의 지중해는 나를 지금 이곳에 살게 한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지중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바람이 불고, 달이 뜨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그 모든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가, 나의 지중해다.'     



오늘 꿈꾸는 나의 지중해는 하동이나 구례를 중심으로 한 섬진강과 지리산 일대가 될 수 있지만 정신의 지중해는 지금 근무하는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월급을 받으며 밥벌이의 지겨움도 생각하며 1달에 한 번 적은 돈이지만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보며 “잘했어 쎄일”이라며 자신을 격려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함이 있는데 나의 지중해가 100미터 앞에 있다.
창덕궁이다.
“왜 이곳이 너의 지중해냐고?” 물을 텐데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에서 산수유와 매화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쯤 근무가 끝난 후 창덕궁에서 산수유와 매화꽃을 봤다. 군락을 이룬 지리산 일대의 꽃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대리만족은 충분하다. 더군다나 창덕궁은 조선의 왕궁 아닌가?      

전주 이씨는 아니지만 난 왕궁이나 왕릉에 들어설 때마다 왕의 권위로 충만해진다. 그러기에 창덕궁을 걸을 때도 왕의 길을 고집한다. 창덕궁은 다른 왕궁에 비해 고요함이 있다. 밀리는 인파가 없기에 고요하다.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리며 봄꽃의 향기를 맡거나 느낄 수 있고 사진도 구도를 잡아 찍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어폰과 민증을 챙겨서 창덕궁으로 향했다.



건널목만 건너면 나의 왕궁이 있기에 감정의 기복이 생기면 찾아가는 공간이다. 월대를 올라 돈화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금천교다. 외부의 잡귀를 막는 상징적 경계인 금천에는 사악하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동물인 천록이 든든하게 왕궁을 지키고 있다. 금천교를 건너며 짧은 시간 사악하고 나쁜 마음은 없는지 자기 모습을 돌아본다.     



금천교를 건너 숙정문을 지나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낙선재가 보인다.
조선 24대 왕 헌종의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지어진 이곳은 다양한 문양의 아름다움과 서재로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애정하는 곳이다. 가끔 낙선재 마루에 걸터앉아 이북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 때문에 이 공간을 사랑한다.      
독서에 몰두하던 헌종의 눈이 피곤할 때쯤이면 낙선재를 나와 눈앞에 보이는 정원을 산책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봄바람에 향기가 날리며 왕의 후각을 자극할 때 왕은 행복했으리라.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따라 걸으면 노란색으로 피어난 산수유와 아직 몽우리만 졌기에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매화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수유나 매화는 군락을 이뤘을 때 아름답다. 산천을 노란색으로, 하얀색으로 물들이는 봄의 전령사를 보며 감탄하는 이유는 봄을 느끼기 때문이다. 햇살을 따라, 바람을 따라, 파란 하늘을 따라 봄을 느낄 수 있지만 최상은 봄꽃을 시각과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으로 봄을 체험하는 것이다. 완전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는 산수유는 정원 한 곳에 외롭게 피어나기에 다가가야 본모습을 볼 수 있다. 꽃송이는 작고 주목을 받는 개나리처럼 화사한 노랑이 아니기에 한눈에 들어오는 꽃은 아니다. 핸드폰의 줌을 최대함으로 당겨 촬영했을 때 고움이 보인다. 벌꿀은 벌써 향기를 맡고 꽃향기를 나르기에 바쁘다.



매화는 아직 개화하지 않았기에 순백의 눈부심을 볼 수 없지만 상랑정 앞의 홍매화는 몽우리로 피었음에도 사람을 유혹한다. 화려한 붉은색이기에 멀리서도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개화되면 가장 번잡한 포토 존으로 남을 것이다. 셀카를 찍었지만, 만족스러운 얼굴이 아니기에 지우기를 몇 번씩이나 ㅠㅠ     
늙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자신의 매력을 외모에서 찾는다면 어리석음이다.

고흐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의 프로방스로 떠나는 것도 포기한 지 오래다.
섬진강의 하얀 모래사장을 걷는 것도, 남도 축제를 즐기는 것도 어렵기에 간접경험으로 만족하는 연습을 한다. 이때 가장 좋은 것은 책과 영상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     

는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가슴속에 새겨둘 금언이다.      
직접경험의 최고치인 '여행'보다 간접경험의 최고치인 독서로 형태가 기울겠지만, 아쉬운 것은 없다. 지금, 여기를 나의 지중해로 만드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읽고
보고
듣고
배우고
쓰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기에 오늘도 나의 지중해를 지금 여기서 꿈꾼다.

배경음악은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OST 입니다.
(배경인 욕망의 지중해도 좋았어요)

https://youtu.be/ctesvxzAuUA?si=gGIS-HfWsEhgdc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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