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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Feb 13. 2024

늙어가는 부부는 그냥 사는 거야

태백 눈축제를 다녀와서

아내가 친구에게
남편과 함께 태백산눈꽃축제 간다”라며
자랑삼아 이야기했단다.     
“아직도 남편과 여행 다니니
어이없어하는 친구의 반응이다.   

그럼 나는?
확 당기지는 않지만, 아내가 좋아한다면 기꺼이 동행할 마음은 있다.
15년 정도 지난 이야기 같은데 YES24 리뷰 대회에서 2등 상으로 50만 원의 상금을 받은 적이 있다. 아내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더니 여행 가자고 해서 1박 2일로 통영과 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후로 아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같이 여행하자고 한다.      
이번 태백산눈꽃축제도 아내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자고 했기에 통 크게
“경비 부담은 내가 할게”
했더니 반팅 하자고 한다. 못 이기는 척하고 OK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내가 거의 경비 부담을 했다. 그래도 이 남자의 입에서      
“밥 살게
경비 부담할게”      
라니 약간은 흐뭇한 마음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단체 관광은 거의 해보지 않았지만, 편의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을 것 같다.
태백산눈꽃축제도 이음이라는 관광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기에 준비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한 시간에 모이면 되고 일정에 맞춰 움직이면 되기에 노인에게 맞는 여행이다.
7시 40분 서울역 집합이기에 6시 20분에 집을 나와 공항철도를 타고 정해진 시간에 도착했다. 예상한 것처럼 중년을 넘어 노년기를 보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쉽게도 기차는 KTX가 아니라 무궁화호급 정도로 보이는데 좌석에 앉자마자  단체관광을 온 아줌마들의 들뜬 목소리가 메아리로 퍼진다.
“아, 이건 아닌데”     



내 여행의 핵심은 조용함에 있다.
말보다는 시각과 생각을 통해 만나는 유람에 설렘이 있는데 왕복 9시간 동안 아줌마들의 목소리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다.
언제나 창가는 아내 몫이기에 실내석에 앉았다. 아내와의 여행에 좋은 것 하나는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은 채 각자 카톡을 할 수도 있고, 잠을 자거나 책을 읽어도 괜찮다. 수컷 본능이 살아있던 젊은 시절은 예쁜 아이에게 쫌 잘 보이려고 수많은 말을 난사했다.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일임을 알기에 더 이상의 호기심이 필요 없는 노년의 부부는 할 말만 한다.      

“커피 마실래    
”한라봉 까줄까“
”저 눈 풍경 봐, 이 더운 날씨에도 눈이 그대로 있어“     

‘따로 또 같이’
60살이 넘은 부부 여행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짓을 한다고 해도 아내의 마음이 상할 일이 없다. 잠을 자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피곤하구나“라는 말로 위로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열차는 서울역을 떠나 5시간 정도 걸려 태백산 눈축제에 도착했다.
이때 주차장에서 시끄러운 고음이 들려온다.
대한민국 어디에 가든 구경할 수 있는 품바나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관광객을 부르는 밴드다.
순간
저 시끄러움에 또 마음이 비틀어진다.



”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아파트와 품바뿐인가? “라는 탄식      
몇 번 가보지 못했지만, 일본의 조용함을 생각했다. 관광객들은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자연의 모습이나 유적을 바라보며 내면이 아름다운 관광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부지런히 사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되었다.      
태백산눈꽃축제가 31회를 맞이했기에 태백이라는 도시를 알리고 경제적 가치도 이뤘겠지만 그리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자신이 바라던 모습에서 멀기에 느끼는 불만이겠지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차가 늘어선 것을 보면 이 축제를 즐기는 사람이 꽤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내를 위해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어줬다.

본인의 얼굴은 작게, 풍경 위주의 사진을 찍으라고 하지만 난 인물 중심으로 찍기에 결과에 대해 마눌님은 언제나 불만이다. 이때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신 여성분이 ”사진 찍어줄 테니 자세를 취하라“고 하신다. 근데 이분 사진 잘 찍으신다. 다정스러운 모습도 좋지만 젊어 보인다.
”이건 액자로 만들어 보관해야겠다“

3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1시간 30분 만에 관광을 끝냈기에 갈 곳이 없다. 추우니까 어디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야겠기에      
”감자전에 막걸리 마실까?“
”좋아“     

점심을 먹은 식당에 들어갔더니 아직도 식당 안까지 노랫소리가 들리고 몇 사람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개별관광이라면 시간의 구애 없이 다니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단체는 소뚜레에 매인 송아지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하는 것이 치명적 단점이다.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자유시간이 있기에 아내와 둘이 시장을 걸었다. 열차 안에서 전을 먹고 싶어 몇 가지를 주문하고 포장했다. 맥주도 필요할 것 같기에 근처의 하나로 마트를 들려 맥주 2캔을 사고, 역 쪽으로 걷고 있는데 아내가 꽈배기 파는 것을 보더니 두 개만 사겠다며 뛰어갔다. 조금 뒤 맨손으로 나오며 지갑이 없다고 한다.
마트에서 계산하면서 지갑을 두고 온 모양이라며 또 달려간다. 옛날 같으면 한 소리 했겠지만, 관계를 더 악화시킨다는 것을 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마트에도 없데“
”할 수 없지“
”시장에도 가볼게“ 라며 전화를 끊는다.      
시간이 흘러도 안 오기에 전화했더니
“찾았어”라며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마눌님이 보인다.
다시 마트에 가서 "CCTV를 볼 수 있냐?”라고 물었더니
”괜찮다”라고 하기에 여직원과 함께 영상을 보는데 남자 직원이 아내의 지갑을 사물함에 넣는 장면이 나오길래 내 것이라고 했더니 남자 직원이 하는 말
”전 가방인 줄 알았어요. “
라며 변명을 했단다.
아내는 남자 직원을 의심했지만 ”찾았으면 됐지“라며 다행으로 마무리했다.      



기차 안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 칸이 있다.
사 온 전과 맥주를 마시며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가
”내년에 퍼플섬에 가자“
친구가 보내준 퍼플섬 사진을 보여주며 꼭 가자고 한다.
앙코르와트와 퍼플섬
아내와 약속된 2개의 여행지다.

”여보 우리 처음 김포집 계약한 후 카페에서 커피 마셨잖아“
”그때 게이샤를 처음 마셨지“
”그 카페가 사라졌어“     

아내는 남편과의 작은 추억도 기억에 소중히 담아놓은 모양이다.
”난 더 나이 들어 당신하고 가벼운 점심 먹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으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해“     
아내에게 미안하다
철들지 못한 남편이지만 한 번도 돈 벌어 오라고 다그치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적은 돈이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송금하면 아내는 고맙다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황지우 시인의 ‘늙어가는 아내에게’를 떠올렸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사랑해?“
라고, 묻지 않고
”그냥 살어“     
’그냥 산다’라는 말속에는
”사랑해“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이 아닐까?     

그 마음이 있기에 나이 들수록 ”미안해“ 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남자가 있고, 여자는 싫지 않기에 오늘도 남편이 좋아하는 대구전을 해주겠다고 한다.

배경음악은

Stellenbosch University Chamber Choir의
' You are the new day, 입니다.

https://youtu.be/k096P6wz9wA?si=-1x_1RpDCcycyl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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