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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Dec 05. 2022

참 좋은 당신

도서 :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휴거(휴먼시아 거지), 빌거(빌라 거지)라는 단어를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네버링 해보니까 이런 기사들이 엄청나게 검색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8년 전의 기사를 읽으며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속이 상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주민과 아이들은 놀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라는 기사였다. 

제목만 가지고는 이해가 안 되었기에 본문을 읽었는데 이유는 놀이터 관리비를 내지 않기 때문이란다. 없는 자의 설움보다 쬐금 더 가진 자의 속물근성을 알기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가 얼마나 천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이 기사 하나만으로도 증명이 된다. 그들 말대로 관리비를 내지 못했다면 조금 더 가진 자가 부족한 자의 몫까지 내준다면 이 세상은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지 않을까? 

     

더군다나 놀이터는 주로 아이들이 노는 공간인데 한 아이가 웃을 때, 다른 아이는 눈물로 부모를 원망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돈으로 아이를 상처 주는 세상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근절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야박하고 인정머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가 사람을 물면 신문에 실리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삿거리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 대부분은 인간의 선함보다는 악함에 무게가 실려 있다. 살인, 폭행, 강도, 성폭력 등의 뉴스를 접하며 시대를 한탄한다. 그러나 부나 지위, 명예가 없는 서민 대다수는 아직도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악독함을 원색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나 소설은 보지도, 읽지도 않는 편이다. 반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아름다움이나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화면을 사랑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관을 나올 때 가슴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를 통해 처음 만난 송정림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처럼 사람 내음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그래도 내가 닿을 섬 하나, 그것은 사람입니다. 바람 부는 세상을 걸어가다가 지친 마음을 기댈 언덕 역시 사람입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도 결국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래! 모든 사람은 아니고 손꼽아 헤아릴 수밖에 없는 소수의 사람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가 5권 시리즈로 출간된 것을 보면 많은 독자가 아직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함과 아름다움을 믿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동을 얻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눈물은 패배나 연약함의 상징이었기에 아버지로부터 “남자 놈이 칠칠찮게 왜 울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기에 잘 울지 못했는데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남자가 눈물이 많다는 것이 허물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성이 강해짐으로 인해 흐르는 남자의 눈물은 연민의 대상이 된다. 중년의 남자가 이 책을 읽으며 속으로 눈물을 감춰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모처럼 인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에세이의 즐거움은 이성은 마당 한가운데에서 낮잠을 즐기는 강아지처럼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감성은 눈물과 웃음, 기쁨, 감격 등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에 있다. 누군가에게 밑줄 친 글귀들을 보내주고 싶고 너무 빨리 읽는 것이 아쉬워 커피 한잔을 내리며 그 맛을 음미하듯 저자의 글맛에 천천히 도취하는 것. 에세이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곳에서 멈칫거린다. 

‘담쟁이도 올라가기 쉬운 거 아니다. 그래서 견디며 올라간다. 나중에는 쉬워져’ 

저자는 아버지의 그 말이 가슴을 치는 듯해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 했는데 자신도 이 글을 읽으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분이 살아온 삶은 아들이 보았을 때 실패한 인생이었다. 그 모습이 싫어 사춘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심했지만 이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 ‘담쟁이도 올라가기 쉬운 거 아니다.’ 이 한 문장 때문에 가슴은 벅차오르고 눈물이 고인다. 나름대로 아픔을 견디며 열심히 인생을 사셨다는 것을 이제 알기에 아버지가 보고 싶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언제나 아련함을 동반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슴속에 살아있는 것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현실을 이겨낼 힘이기도 하다. 도회지에 살고 있기에 그 흔한 귀뚜라미 소리 하나 듣지 못하지만, 가을밤의 정취는 감성이 움직이는 것에 있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가을밤의 영향이다. 보름달이 비취면 더욱 좋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연두색으로 덮여있는 책 표지의 선명한 글자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를 통해 몇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며 감사를 표한다. 부모님은 그리움의 대상이고 아내에 대해서는 미안함이, 자식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앞선다고 할지라도 난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아직도 ‘참 좋은 당신’이란 호칭을 얻을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을 고맙게 여긴다. 아니 이제는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모든 사람을 향해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라는 감사는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다짐과 함께… 


배경음악은 

 'We Are The World'입니다.


https://youtu.be/s3wNuru4U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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