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가를 수 없는 사랑

영화 '아무르' 리뷰

by 이세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주인공 정원이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며 안타까워했기에 아픈 사랑으로 기억된다. 영화 속에는 정원이 죽음과 힘겹게 싸우는 투병생활의 모습이 생략되었기에 관객들은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죽음을 내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 더 안스러워한다. 이 정도면 정원에게 찾아온 죽음은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진관에 걸려있는 다림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영화가 80살이 넘은 노부부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사랑은 정원과 다림처럼 8월에 시작되는 풋풋한 사랑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무서운 형벌로 인해 “사랑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로 하여금


“당신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를 묻고 있다. 반세기를 넘게 사랑했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수없이 가지고 있을 80대의 음악가 부부인 조르주(장 루이 트렝티냥)와 안느(에마뉘엘 리바)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금슬을 가지고 있다. 함께 음악회를 다녀와서도 조르주는 사랑하는 아내 안느를 ‘달링’이라 부르고 아직도 그녀의 코트를 걸어줄 줄 아는 매너 좋은 남편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질투하는 세월이 안느에게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의 삶은 서서히 비극이 인도하는 데로 흘러간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세월은 그들의 평화롭던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느 날 달걀 반숙으로 후식을 즐기며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던 안느가 갑자기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비극의 시작이다. 그 후로 안느는 점점 더 병세가 악화되며 나중에는 반신불수가 되고 사랑하는 남편 조르주는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간호한다. 이 과정이 영화 속에서 길게 진행이 되는데 부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명장면 중 하나는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기는 신이다. 서로의 마음을 읽은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가기에 그 행위 속에는 낭만적인 사랑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르’에도 똑같이 조르주가 안느를 위해 머리를 감겨주지만 그 장면은 측은함과 안타까움으로만 다가온다. 그 장면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책임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안느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잃고 싶지 않기에 모든 의학적인 치료를 거부한다. 조르주도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허락한다. 이제부터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남편이 감당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딸 에바(이자벨 위뻬르)가 불만을 터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도 아빠 못지않게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안느는 딸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고 조르주도 딸이 오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마음이 닫혀있다. 그러나 에바는 걱정이 되어


“어머니의 상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라고 말한다. 이에 아빠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뭐가 진지한 건데? 너의 집에 모실래, 요양원에 모실래?”


이 한마디가 조르주의 힘든 마음을 보여준다.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내가 소망한 것처럼 그녀에게 존엄한 죽음을 허락하는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는 살인이 되겠지만 한평생을 함께 사랑하며 살아온 두 사람이 죽음의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란 생각을 한다. 물론 이 행위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많은 논란을 유발하기에 영화는 열린 결론으로 끝이 난다.



100세 시대란 선언은 새롭지 않다. 누구든지 죽음은 자신을 비켜갈 것이란 자신감속에서 인간의 삶은 내일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오래 사는 것도 비극이란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비극은 당장 오늘이라도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다. 그러기에 ‘아무르’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관을 나서며 우울해지기에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먹으며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이 궁금하고 난 그 죽음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를 고민하게 한다.


이제 사랑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낭만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아내나 남편을 바라보며

“내가 마지막까지 보살펴 줘야 할 사람이야.!”란 현실이다. 받아들인 다는 것,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은 평안을 누린다.


언론인 정진홍은 그의 책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외면한다고 외면되거나 회피한다고 회피되는 게 아니다.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것이 자신의 업보요 십자가다. 자기 인생의 배낭을 누가 대신 짊어지고 갈 수 없듯이 자기가 짊어지고 끝내 가야 할 자기만의 짐 보따리, 자기만의 십자가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그것을 짊어질 각오를 하는 것!. 그때 비로소 먼 길 떠나는 채비가 끝나는 것이리라.‘


나이 든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인정하는 것.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것. 그때 삶은 어떤 경우에도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고, 그 삶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조르주와 안느의 결단을 옹호하는 것은 죽음도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https://youtu.be/z_kBrYciL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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