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오색으로 물들었던 단풍잎은 짧은 순간 낙엽이 되어 거리에 쌓인다.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기에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의 손길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이유는 자신의 삶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단풍과 노을 그리고 인생의 가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아름답지만 한 순간이라고 할 만큼 짧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을은 슬픈 노래가 어울린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드립 커피 한잔을 내리며 듣는 김광석의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주는 아픔이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단풍은 1년이 지나면 다시 물들 수 있고 노을은 다음날 저녁이면 붉게 빛날 수 있지만 청춘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을은 외로움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나아가 낙엽과 동일시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삶은 더욱 아프다.
“무엇을 하며 살았지?”
이 질문 속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이 서려있다. 세속주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면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구차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론 안정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에 변명하고 싶다. 이때 발견된 책이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책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 “이렇게, 저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란 비결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보다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혜서라 할 수 있다. ‘행복, 욕망, 지위, 죽음, 감정, 외모, 삶의 의미, 육체, 영혼’ 등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의 내적인 가치에 대해 철학자인 줄리언 바지니와 심리학자인 안토니아 마카로는 독자들에게 쉬운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제시한 질문들 가운데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인생에서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질문 20가지를 논하고 있으니 마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다’는 말처럼 이 책은 머리를 어지럽히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읽는다면 조금씩 깨달음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추천한 연세대 김형철 교수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시하는 책으로 일독一讀이 아니라 다독多讀을 권한다.’라고 말한다.
이름 꽤나 알려진 교수나 저자들의 인문학 강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지역 도서관은 인문학 강좌가 줄줄이 이어지고 출판계는 인문학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인문학 열풍이다. 그런데 인문학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는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학과가 통폐합되거나 폐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까? 인문학은 바른 삶에 목말라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이 학문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풍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저열한 밥벌이 수단보다 못하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가치에 물들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른 삶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작가 박완서는 그의 수필집 ‘세상의 예쁜 것’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어디엔가 높은 정신이 살아 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 한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지만 외적인 것에 치우칠수록 그 사회는 물질적인 가치가 중심이 된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은 높은 정신이 죽었기에 인간은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회의감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와 비교해 본 모습이 너무 초라하기에 “뭐 하고 살았나?” 란 자조적인 한숨이 나오는 것은 최고가 아닌, 실패한 삶을 인정한 결과다. 이런 자괴감 때문에 가을은 슬픈 계절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 책은 슬픈 인생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
촌철살인처럼 이 책 속에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야 할 많은 지혜로 가득 차 있다. 그중의 하나 ‘자신을 최상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굳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질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그 뒤로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더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만들어내기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된다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81쪽)
“하면 된다.”는 막연한 믿음이나 확신으로 가득한 자기계발서보다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라며 이 책은 수 없이 노력을 강조한다. 이 나이에 무슨 노력이라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둔다.’는 것이다. 이제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것이 어울리는 나이는 아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좌절할 나이는 더욱 아니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렇게 삶의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매일매일을 음미하며 사려 깊은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133쪽) 이 충고는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인생의 가을을 지낼 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배움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 외적인 성공보다는 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승리의 쾌감은 아니다. 누군가에 비해 초라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이 듦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은사시나무는 낙엽이 진 후, 눈보다 더 하얀 몸과 앙상한 가지로 매서운 바람을 이기며 겨울을 지난다. 봄보다 아니 여름이나 가을보다 겨울이 더 아름다운 은사시나무를 보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인생도 이와 같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최고가 아니기에 삶에 대해 깊은 회한의 한숨을 쉴 때 저자는 이렇게 인생을 충고한다. 인간이란 ‘그의 행동의 총합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며, 그가 살아온 삶이 곧 그 자신이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이 한 구절을 읽는 순간 정신은 도끼에 맞고 결을 따라 쪼개지는 나무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 대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이 모습은 누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삶의 결과일 뿐이다. 이제야 자신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20대 시절 뜻보다는 멜로디가 좋았고 특히 후랭크 시나트라라는 이름 때문에 흥얼거렸던 노래가 ‘My Way’ 다. 이 책을 읽으며 그 가사를 이제야 음미한다.
‘I did what I had to do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네.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도망가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해냈지‘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을 닫으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런데 그 답은 철학자나 심리학자의 지혜나 아니라 뜻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My Way’ 속에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남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답이다. ‘올바른 삶과 가치’는 이론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지 않았을 때 남겨진 삶의 기록이다.
“최고가 아니면 어떨까?
아니, 실패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해냈다”는 데 있다 이 한 가지 깨달음만이라도 자신의 것이 되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어떤 힘듦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회복이 있다면 이 책은 돈 몇 푼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