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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an 14. 2023

여행의 첫날

후쿠오카행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제주항공 후쿠오카행 비행기는 10시 40분 출발이다.
기내는 좁고 만석인데 비상구 옆으로 5개의 좌석을 배정받았다. 떠난다는 설렘과 “제대로 뜰까?”라는 긴장감으로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며 비행기는 활주로 진입을 위해 천천히 후진한다. 기내등의 불이 꺼지고 실내는 어둠으로 바뀐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도 커진다. 워밍업이 끝났는지 소음은 줄어들고 최고조의 용트림과 함께 이륙한다. 10분 만에 비행기가 날아오르기 시작하는데 심한 스모그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을 바라보며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중 한 문장을 떠올렸다.

알랭 드 보통은 빠른 상승을 통해 일정 궤도까지 오르는 비행기처럼 우리 자신의 삶도 빠른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우리를 짓누르는 많은 억압 위로 솟구칠 수 있다는 상상 때문에 여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다.
많은 사람이 떠나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의 변화와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기 때문이다. 저가 항공이기에 통로는 좁고 좌석도 불편하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이유는 3박 4일은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기에 떠나는 것이다.

옆을 둘러보니 아내와 사위, 딸, 아들 모두 잠들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 얼마나 컸으면 구름 한 점 보지 못하고 잠들까?”

라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착륙 20분 전 동체가 흔들리고 승무원들은 음료수 서비스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지만, 승객들은 별 관심이 없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비행기는 하강을 시작하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정확히 12시 5분이다. 1시간 2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내 출근 시간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입국심사가 지연되고 있어 비행기에서 20분 정도 대기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12시 30분 비행기를 나와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통로부터 입국심사대까지 수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하카타역에서 유후인 가는 노모리 열차를 예매했는데 14시 38분 출발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35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아직도 입국심사대 앞에 서지를 못 했다. 아들과 딸은 아무래도 기차를 놓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2시 5분 드디어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아들은 누나와 매형에게 먼저 나가 택시를 타고 하카타역에서 예매를 하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매했으면 탑승까지 이어지는데 일본은 예매한 것을 보여주면 창구 승무원이 확인하고 기차표를 전해주는 시스템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예매시스템이 잘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심사대를 나오면서 아들은

“아빠 뛰어야 해”

“아빠 뛰어야 해”


하면서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달린다. 뒤질세라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하카타역에 도착한 시간이 2시 32분이다.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을 우리 가족이 연출했다. 2시 35분 유후인으로 가는 노모리 기차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고 아슬아슬하게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귀엽고 예쁜 이 열차에 대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가격은 1인당 4만 원 정도니까 조금 비싼 느낌이지만 조용한 실내와 정결한 좌석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다 잊게 했다. 더 좋은 것은 기차에 식당칸이 있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침부터 굶었기에 배가 고픈데 이 열차의 자랑거리인 도시락을 아들과 딸이 사서 나눠준다. 거기에 사이다까지 있다.



초등학교 때의 소풍을 떠올리며 사이다를 마시는데 지금까지의 긴장과 피곤함이 “크”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우리나라도 열차 안에서 도시락을 팔던 때가 있었고 여행의 재미도 배가시켰는데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기억할 수 있기에 아쉬움이 크다.

배부르게 먹으니까 창밖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카타를 떠난 기차는 마치 우리나라의 중앙선처럼 도심을 지나 산골로 접어드는 느낌이기에 다양한 창밖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를 사용해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지만 아쉽게도 빠른 속도로 인해 기대하는 풍경들을 놓치고 말았다. 2시간 20분을 달려 기차는 오늘의 종착역인 유후인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앞에 눈앞에 유후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후다케산이 보인다. 산 정상에는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고 구름이 산봉우리에 걸려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남산 정도의 높이처럼 보이는데 1,500m가 넘는다고 해서 놀랐다. 그 산을 바라보며 길을 걸으면 이 도시의 중심거리인 유노츠보 거리를 지나게 된다. 오늘 머물 숙소가 역에서 10분 정도 거리이기에 천천히 걸으며 주변 상점들을 스캔한다. 첫인상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다양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숙소에 도착했다. 전구 색의 조명으로 치장된 호텔은 매우 감성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프런트에서 수속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의외로 숙소가 넓다. 침대 2개와 다다미방으로 구성되었는데 일본 호텔의 특징은 청결과 몸에 밴 서비스 정신이다.



딸아이가 6시에 저녁을 예약해 놓았으니까 빨리 나가자고 한다. 오늘 저녁은 ‘와규’로 유명한 일본의 고깃집이라고 한다. 조명발이 한몫하는 이 음식점은 벌써 많은 사람으로 인해 분위기가 달아 있었다. 딸아이가 예약했다고 하니까 종업원이 정중하게 자리로 안내해 준다. 메뉴판을 보며 고기를 시키는데 먼저 와규와 소혀바닥을 먹자고 한다. 딸아이는 식성이 좋은 편이기도 하지만 이상한 것을 어려서부터 잘 먹었다.

“소혀바닥이라니?”

이것만이 아니다. 소위(胃)까지 시킨다. 내가 아는 고기 이름은 안창살뿐이다

아내와 사위 자식들은 와규를 먹으며

“입에 살살 녹는다”
“진짜 맛있다.”

을 감탄사로 던지지만 내 입에는 그닥이다.



 고기는 씹는 맛인데 이건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맛없다고 하면 꼰대니까 아무 말 없이 먹어줬다. 다행인 것은 유후인 맥주가 내 마음에 쏙이다. 가격은 일반 맥주에 비해 비싼 편인데 쌉쌀하고 향이 좋다. 거기에 부드러운 거품이 일품이다. 배 터질 정도까진 아니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기에 음식값은 꽤 나왔다. 난 이럴 때마다 “그 돈이면 태블릿을 살 수 있는데”란 아쉬움을 갖는다. 그러나

“주는 대로 먹는다”
이것이 여행의 철칙이다.



숙소에 들어와 맥주를 마시겠다며 가족이 모였다. 이미 편의점에서 넘치게 사 온 간식과 맥주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생활 10년 차에 접어든 딸아이는 지쳤다며 쉬고 싶다고 한다. 이번에 과장 진급이 되면 임신을 하겠다고 한다. 아들은 3월에 연봉 협상을 하는데 잘 안 되면 기업 홍보팀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아들은 바쁘면 시도 때도 없이 야근이다. 연봉제이기에 수당도 없다고 한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나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다. 가장 큰 것은 인간관계다. 함께 떠나오는 것이 좋은 이유는 감추어진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했다.

“아빠도 나랏일 하잖아! 그래도 이 나이에 일하니까 보람이 있어 좋다. 근데 나이 때문에 잘릴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있었는데 재계약이 될 것 같아”
가족들이 “아빠 잘됐다”라며 좋아한다.

뒤늦게 일하지만, 보람을 우선시한다.

“나는 어떤 아픔이 있을까?”

1월 2일 자신을 격려한다며 카키색 머그잔과 빨간색 텀블러를 구입했다. 어저께는 원색의 샤프 2자루를 주문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언제나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문구류와 텀블러, 머그잔, 그리고 맥주다. 함께 떠나온 하루가 끝나간다. 가족을 바라보며 행복한 것은 서로를 향해 아껴주는 마음이 있고 소중한 내 자산이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기에 여행은 소중하고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배경음악은

김진호의 - '가족사진'입니다.

https://youtu.be/cS-IiArG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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