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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Jan 20. 2023

3박 4일 후쿠오카, 유후인 여행기

3일째 후쿠오카 구경하기

“아빠 이번 여행에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일본 신사”

신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과 일왕에게 충성하기위해 신사 참배(神社參拜)를 강요당했다는 부정적 지식뿐이다. 이번 기회에 신사(神社)를 구경하면서 그들이 왜? 800만 명이나 되는 신을 섬기고 있는지, 신사가 그들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었다. 네이버 검색을 했더니 유후인에 텐소신사(天祖神社)와 후쿠오카에 있는 스미오시 신사가 검색되었다. 텐소 신사는 긴린코 호수를 걸으며 가 봤지만 너무 작기에 신사를 알기에는 부족함이 있기에 후쿠오카 여행을 기대했다.



여행 3일째 되는 오늘은 유후인을 떠나 후쿠오카에서 1박 한다. 올 때와 달리 아이들은 10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버스안에서 한국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관광지임을 알 수 있다. 고속도로를 1시간 30분 정도 달려 후쿠오카에 도착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일본의 많은 고속도로를 보지 못했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왕복 4차선 도로는 통행량이 적어 한가해 보인다. 더군다나 중형차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주로 박스형으로 생긴 소형차들이 주가 되어 주행한다. 우리나라처럼 정신 사나운 과속 금지, 졸음운전, 감시 카메라와 같이 주의를 요구하는 글귀가 안 보인다. 고요함과 평온함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삶의 가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를 가든 차분함이 넘친다. 조그만 차들은 자신의 속도를 따라 질서 있게 길을 달리고 우리나라에서 흔하디흔한 벤츠, BMW도 볼 수 없고 일본 차의 자존심인 렉서스도 보질 못했다.



그러나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오니까 10층 정도의 건물들이 도심지에 들어선 모습이 보인다. 시내는 금방 폭발할 것 같은 활화산처럼 살아 움직이는 데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편리함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도심지는 소화가 안 돼 속이 불편한 사람처럼 꽉 막힌 교통체증으로 인해 곳곳마다 긴 한숨을 내쉬고 있다.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 지진 때문인지 하늘을 뒤덮는 고층빌딩이 없기에 답답하지는 않다. 우리는 도시의 물질문명에서 오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지만, 도시가 우리의 혼을 빼았었기에 슬로우시티인 유후인을 생각나게 한다.



딸은 하카타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베이직 호텔을 예약했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마치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로비의 모든 벽이 책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호텔의 주인장은 왠지 책을 사랑하고 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어 그것만으로도 호텔은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는데 내부 시설도 넓고 깨끗해 “우와”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이들은 짐을 풀자마자 오늘 점심은 “하카타항으로 가서 초밥을 먹겠다”라며 빨리 택시를 타자고 한다. 두 대에 나누어 도착한 곳이 완강 스시인데 대기 줄이 길다. 예약을 하고 1시간 정도를 기다렸더니 순서가 온다. 초밥 하나에 1,000원이니까 비싸지 않다. 맥주와 함께 20개를 먹었다. ㅋㅋ

스미오시 신사

배 속을 든든히 채운 후 택시를 타고 스미오시 신사로 향했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일본 고대 건물 방식으로 지어진 이 신사는 창건한 지 약 1,800년이 되었고 특히 불교 양식이 아닌 일본 고대 신사의 건축법으로 지어졌기에 중요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신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에 여행이 끝난 후 집에서 유튜브, 책, 나무위키 등을 참조해서 신사를 공부했는데 알게 된 것이 많아 신사 구경을 잘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문장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서울의 고궁 걷기를 좋아하는데 고궁에 대해서도 배워야겠다는 착한 생각을 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유튜브가 도움이 될 것 같다)



토리이(신사 입구에 세워진 기둥 문으로 재료는 나무, 금속, 돌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의미는 불경한 곳(일반세계)과 신성한 곳(신사)을 구분하는 경계를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같은 뜻이라고 보면 되겠다. 토리이를 지났으니까 신성한 곳으로 들어왔는데 왼쪽으로 긴 줄이 늘어져 있다. 신사를 참배하기 위한 줄인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당연히 줄을 서야 하는 줄 알고 꽁무니에 서 있는데 아들이 “오라”며 손짓을 한다. 가만히 보니까 왼쪽은 긴 줄이 늘어져 있지만, 오른쪽은 텅텅 비어있다. 아들이 하는 말,

“오늘이 성년의 날인데 부모들이 자녀의 성년식을 기념하기 위해 신토(神道)의 신에게 참배하는 줄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참배가 아니라 구경이니까 이곳으로 자유롭게 들어가면 돼요.”



라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제일 먼저 만난 것이 고마이누 한 쌍(전설 속의 동물로 신사의 수호신인데 여우나 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사는 일본의 민속신앙으로 신토(神道)의 신을 모시는 종교시설인데 모시는 신은 800만 명이고 일본 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사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가 20~30만 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신사가 이렇게 많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일본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태풍, 지진, 화살 폭발 등의 자연재해가 많아 자연히 토착 신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신도가 애니미즘이나 샤먼이즘의 모습이 남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내세관이 없는 것을 보면 종교라기보다 문화를 바탕에 둔 국민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애도시대(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현 도쿄)를 본거지로 창설한 일본 무사 정권 시대)까지는 신과 부처를 동일시 하는 신불습합(일본의 토착 신앙인 신토와 불교가 융합해 하나의 신앙체계로써 재구성된 종교현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는 절과 신사의 구분이 모호했는데 메이지 시대 이후에 신도와 불교를 분리하며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많은 절이 사라지고 불상, 불화 등의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고대 일본에서 신사는 우리나라의 샤먼이즘처럼 독립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 없었기에 숲이나 동굴, 바위 등 특정 장소를 신성한 장소로 지정했다. 그곳은 신이 사는 곳이기에 신령한 장소로 추앙되었지만, 일본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신사도 지금처럼 건물을 짓고 신을 모시며 경배를 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일본의 절과 신사를 구분하기 어려운데 가장 큰 차이점은 입구에 토리이가 있거나, 신전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부처가 아닌 여러 가지 신이나 동물이나 사물이나 인물을 참배의 대상으로 모시고 있다면 신사라 할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신사 그러면 내선일체 사상이나 신사 참배 등으로 인해 신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가 대표적이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인물들과 천황, 2차대전 패전의 원흉이 되는 전범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정치적 목적이 있기에 신사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품게 된 원인이다.

- 나무위키, 유튜브, 네이버에서 참조와 인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일본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이다. 료칸에서 유카타를 입을 때도 왠지 애국선열에게 죄송한 느낌이 들었고, 게다를 끌며 온천탕에 갈 때는 “이래도 되는 거야?”란 미안함이 있었다. 일본에 대한 적대 의식과 감정적 미움도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을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일본에 관한 책 몇 권을 YES24에서 주문했다.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떠 오른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신사 여행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을 곳이란 생각을 했다. 먹는 것과 쇼핑도 여행의 중요 요소이지만 한 나라의 문화를 알고 적대적 감정을 품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성숙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근본적 자세란 생각을 한다.



저녁은 딸 아이가 한 달 전에 예약했다는 유명한 곱창집이라고 하는데 느끼하기만 할 뿐 내 입맛엔 별로다. 오늘도 숙소로 들어올 때는 어김없이 편의점 음식과 맥주다. 내일은 돌아가는 날이라고 새벽 2시까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게 쓰지는 못하기에 딸 아이에 대해서는 이대를 보내기 위해 이대 견학을 하면서

“네가 올 대학”

이라고 세뇌했지만 어림없는 점수였다. 같은 2호선을 탔지만 딸 아이 학교는 변두리에 있었다. 지금은 한 중견기업의 과장이 되었으니 잘 풀렸다. 아들은 2호선도 못 타고 천안에 있는 지방대를 다니면서 꼬인 인생에 대해 저주했지만 늦게 광고회사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오원 작가의 글 한 줄을 기억해 냈다.

“네가 사랑받는 사람이란 걸 기억해주면 좋겠어.”

사위와 아이들에게 감사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으며 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오늘 밤이 행복한 이유다.


배경음악은

Freddie Aguilar의 ‘Anak(1978)입니다.


https://youtu.be/g-nt2Tuy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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