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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Feb 23. 2023

희망이 있기에 삶은 살아진다

영화 '런치 박스' 리뷰


오락성과 작품성은 영화를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데 요즘은 오락성이 주가 된 영화들이 흥행을 하기에 가끔은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영화일수록 흥행과는 거리가 멀기에 홍보도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통해 작품성이 있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데 문제는 복합영화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기에 혼자만의 즐거움을 누리는 문화공간이 된다.

영화 ‘런치 박스’는 인도영화로 제8회 아시아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비평가 주간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9개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19개 트로피를 받았다면 이 영화의 작품성은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중년의  외로움이 영화의 저변에 흐르고 있기에 이 나이층의 관객이라면 공감지수가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영화는 고층빌딩 숲을 배경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전철로부터 시작이 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로는 뭄바이가 얼마나 다양한 삶이 혼재하고 있는 도시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식의 유럽풍 건물들과 발전된 인도의 현 모습을 보여주는 고층빌딩이 이 도시의 화려함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열악한 빈민촌도 함께 존재한다. '다바왈라'라 불리는 하층민 도시락 배달부 5천 명이 자전거나 기차 등을 이용해 가정에서 만들어 준 도시락을 직장으로 배달해  정도로 빈부의 격차가 큰 도시다.



어느 날 사잔(이르판 칸)의 직장으로 도시락 하나가 배달된다. 아내와 사별한 후 삶의 의욕을 잃고 주어진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있는 그에게 도시락이 배달됨으로 인생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주부 일라(님랏 카우르)는 요즘 소원해진 남편을 보며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만들었는데 번짓수를 잘 못 찾아 남편이 아닌 생면부지의 사잔에게 배달된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빈 도시락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그녀의 표정 속에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내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자신의 정성이 통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남편에게 보내지만 한번 잘못 배달된 도시락은 언제나 사잔의 몫이었다. 삶의 의욕을 상실했기에 짙은 외로움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잔과 멀어진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애쓰는 일라의 공통점은 어두운 얼굴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서서히 삶의 활력소가 찾아오는데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일라는 도시락을 싸는 일을 계속한다. 나아가 도시락 속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쪽지가 두 사람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셀위 댄스’가 생각이 났다. 성실한 회사원인 스기야마는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산층이다. 그는 전철로 출퇴근하기에 주변의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날 한 역사를 지나며 댄스 교습소 간판과 함께 창문을 통해 예쁜 여자가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 그의 시선을 빼앗는다.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녀 때문에 그는 댄스 교습소에 찾아가 등록을 한다. 예쁜 여선생 마이와의 로맨스를 꿈꾸기에 그의 심장은 크게 박동을 한다. 이렇게 중년의 나이에도 가슴을 뛰는 일이 발생하고 남자들은 사랑을 꿈꾼다. 사잔, 스기야마 그리고 나 자신도 이들의 영화를 통해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이것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다.



도시락 안에 짧게 쓰인 편지는 일라가 남편의 외도를 말하며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남편에게 따지려고 했지만 용기가 없어 속으로만 애태우던 그녀는 사잔에게 대담하게 만나자는 쪽지를 보낸다. 이때 환하게 웃는 사잔의 모습을 보면서 그 설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 때 시작이 된다. 이때의 순수함이 크면 클수록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감동도 커진다. 두 사람의 만남이 잘됐으면 좋겠다며 응원하는 것은 이미 나 자신이 사잔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마음속의 갈등도 사랑의 크기만큼 커지고 현실적인 조건들은 독버섯처럼 자란다. 사잔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가장 멋지게 차려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아잔은 거울 앞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냄새를 기억한다. 지하철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을 보며 아잔은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자신은 너무 나이 들었다는 현실 앞에서 그는 절망한다. 과연 아잔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들은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멋지게 표현한 대사가 마음에 맺힌다.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사랑뿐 아니라 우리의 삶은 때로 우연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나이 들수록 이 말의 진가와 힘은 더 커진다. 그러기에 인간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희망은 점점 더 발견하기 어렵고 삶은 운명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희망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여운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잔과 일라를 통해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아니 내 삶도 지금은 잘못 탄 기차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가서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삶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다.    

https://youtu.be/76a5Vld6C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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