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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Feb 27. 2023

사소한 결정이 운명을 바꾼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리뷰


영화 ‘미션’에서 처음 제레미 아이언스를 만났다. ‘무력이 정당하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어질 거요’ 라며 십자가를 앞세우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연합군의 대포 속으로 들어가는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의 모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후로 그의 팬이 되었는데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그 이름 때문에 본 영화다. 중년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작은 기쁨이다.



스위스 베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지루하다”는 이유로 아내가 이혼을 요청할 정도로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아내가 떠난 후 5년 넘게 홀로 살고 있는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1인 2역을 하며 홀로 체스를 둔다. 차(Tea)가 떨어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서 어제 먹었던 티백을 주워 다시 타 먹을 정도로 고리타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것이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출근길에 그는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젊은 여자를 구하지만 여자는 빨간색 코트만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진다. 코트 안에는 포르투갈어로 된 책 한 권과 리스본행 기차 티켓이 들어 있는데 출발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순간 그레고리우스는 자신도 모르는 충동에 휩쓸려 수업 중이던 아이들을 남겨둔 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다. 열차 안에서 읽게 된 낡은 책 속에는 잘 생긴 젊은이 아마데우 프라도(잭 휴스턴)가 웃고 있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 놀라운 고요함 속엔 고결함이 있다.”

잠언처럼 기록된 짧은 글은 그레고리우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 것은 순간의 일탈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는 동기를 만든다. 아니 이 영화에 등장하는 프라도와 그를 오빠 이상으로 사랑했던 여동생 아드리아나,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조지, 그리고 이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던 스테파니아(멜라니 로랑)의 관계는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이 된다.  이 만남은 언제나 결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특징이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은 살라자르 36년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1973년 시민들이 저항군을 조직한다. 혁명에 참여하기 위해 시민군으로 만났던 프라도와 스테파니아는 첫 만남에서 정염(情炎)이 불타오르고 두 사람의 짧은 사랑은 친구를 잃어버리는 아픔을 가져온다. 그녀는 프라도의 둘도 없는 친구 조지의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동생 아드리아나는 오빠를 잃게 된다는 불안 때문에 그 사랑을 말리지만 프라도는 동생을 떠나 사랑을 쫓아간다. 그러나 나비효과처럼 이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잊은 채 서로의 삶을 살고 있다. 누구도 먼저 자신의 상처를 들어내지 않았기에 서로의 상처를 몰랐지만 그레고리우스는 아드리아나, 조지, 스테파니아를 만나면서 아직도 프라도를 중심으로 도도히 흐르고 있는 사랑의 강물을 발견한다. 그것은 프라도의 시구처럼 ‘놀라운 고요함 속에 있는 고결함’이었다.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간 친구였지만 조지는 프라도가 선물로 준 약국을 떠나지 않고 있으며, 아드리아나는 아직도 애증으로 남아있는 오빠에 대해 그레고리우스에게 담담히 털어놓는다. 자신 때문에 프라도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스테파니아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지만 짧은 한 순간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그들의 얼굴은 주름살이 늘고 머리는 듬성듬성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을 만나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반추한다. 프라도와 그의 친구들은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열정이 있었고 실제적으로 그들은 반정부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젊음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내 가슴속에 부채로 남아있는 것은 어둠의 시대에 한 번도 이들과 같은 용기와 열정으로 시대의 비극을 몸으로 껴안지 못한 것이다. 그 당시는 기도가 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의 힘은 가브리엘 신부처럼 십자가를 앞세우고 최루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젊음은 아니, 인생은 치열하게 살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레고리우스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리라. 그저 주어진 삶에 안주하며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삶을 살았던 그가 처음으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요즘 영화의 결말은 추세가 열려 있는 것이다. 이제 거장이라고 불리는 빌 어거스트 감독은 관객들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리스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그레고리우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마리아나(마르티나 게덱)는 그레고리우스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기차역에 서 있다. 이때 그가 말한다. 
 “그들의 삶은 활력이나 긴장감으로 가득 찼어요. 제 삶은 어디 있을까요? 지난 며칠간을 제외하고요."
그녀가 대답하다.
“다시 되돌아가시네요. 왜 그냥 머무르지 않으세요?”

남을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여자가 묻고 있다.

난 그레고리우스가 돌아가지 않는 것에 건다. 왜냐하면 사랑이 찾아왔으니까^^
간간이 보이는 리스본의 경치는 너무 아름답다. 특히 트램이 오르는 언덕과 골목길, 그리고 리스본의 야경, 하나 더, 예쁜 너무나 예쁜 스테파니아(멜라니 로랑)^^ 이미 ‘더 콘서트’에서 그 아름다움을 봤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여성미가 물씬 풍긴다…….ㅎㅎ 
자신의 일상에 자극을 준다면 좋은 영화다. 사는 것이 심심하고 재미없다면 이 영화 반드시 자신을 향해 물음표 하나를 선물한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도 강추하고 싶은 영화!!

배경음악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ost 중에서

'Theme Of Night Train To Lisbon' 입니다.


https://youtu.be/SyAsaCLzv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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