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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Nov 02. 2022

샘물의 청량감을 즐긴다

인문학명강 동양편 리뷰


내 나이 또래의 베이비부머들은 준비되지 않은 노후 때문에 막걸리 한 병을 가방에 넣고 홀로 산을 오른다. 더 슬픈 것은 남자는 홀로지만 여자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밝은 모습으로 앞을 스쳐간다. 이런 현실 때문에 우리 시대는 누구나 아프다. 그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힐링을 주제로 한 책들은  수없이 출판되고 방송 역시 먹방, 여행 프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인문학 열풍이 분 이유도 이 시대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서양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성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 역사의 흐름을 이뤘지만 동양은 사색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의 친화가 핵심이다. 대만의 현대신유학 분야의 거장인 팡둥메이는 ‘서양철학은 분석의 철학이고 동양철학은 화해의 철학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법가, 묵가, 유가, 도가 등 모든 동양 사상들이 어떻게 화해를 지향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관계론을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저 산을 보면 저 산 속에 뭐가 있어?“ 라고 존재론을 펼친 것에 대해 동양 사람들은 ’저 나무랑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해‘라는 걸 먼저 따졌다는 겁니다.’라며 박웅현은 동양과 서양 철학의 차이를 화해와 분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물질문명이 다다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시대는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벗으로 삼으며 함께 사는 동양 철학을 요구하고 있다.

‘인문학 명강’도 우리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만들어진 책이다.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이 주최하고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주관한 ‘東洋고전, 2012년을 말하다’라는 강의에 1만 30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강의의 제목은 무척 친숙하지만 정작 읽어보지 않은 ‘논어, 맹자, 장자, 한중록, 금호신화’등에 대해 페이퍼 파워의 힘을 가지고 있는 강신주, 고미숙, 박웅현, 정재서 등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기에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마치 유아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엄마처럼 강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의 힘을 정성과 사랑으로 풀어 놓았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동양고전을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장인 김진우는 책의 서문에서 ‘동양의 문화적 자긍과 정신적 자부의 원천인 동양 고전은 현대 물질문명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꾸준히 제시되었습니다.’라며 동양 고전의 가치와 지혜가 현 사회와 우리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진석 교수는 국가 발전단계에서는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등이 중심기능이 되지만 선진 국가에서는 철학, 심리학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가로 진입하느냐 못하느냐의 경계에 서 있는데 이때에 질적 도약이 없으면 나라나 개인은 정체되고 만다. 그런데 인문학이 이 경계를 넘어서게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인문학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힘이 있는데 그 방법은 질문이다. 한 대기업의 광고처럼 질문은 곧 혁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 잡은 광고인 박웅현은 동양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들여다봄’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사물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우리 것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는가, 우리 것의 힘을 얼마나 보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또한 철학자 강신주는 ’고전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목적은 그 내용을 외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는 데 있습니다. 장자나 맹자를 따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에 이르렀는가? 아닌가?가 책읽기의 핵심입니다.‘ 라고 말한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이 하는 말의 공통점은 책이나 자연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방법은 질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시대는 자신을 알아가는 것보다는 남에 대한 관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1위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고 2위는 스포츠다. 점점 사회는 물질과 쾌락을 중심으로 존재의 가벼움에 물들어 가고 있기에 감동을 찾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 동양 고전만이 답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책들 속에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참 가치가 녹아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기동 교수는 ‘중용’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대지가 얼어붙으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마음이 얼어붙으면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가 옵니다. 이제 머지않아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거의 변곡점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가치관, 삶의 기준이 바뀔 것이고 진짜 인간의 마음이 뭔지를 추구하게 됩니다.’
자신도 이기동 교수처럼 그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개척지로 알려진 뇌과학의 발달로 인해 마음을 뇌의 신경세포들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해 얻어진 뇌의 작용으로 보고 있지만 난 아직도 마음은 가슴속에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정신작용을 단순히 화학물질의 방출량으로 따진다면 동양고전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지." 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의 역사는 오염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여 왔다. 이것이 동양고전의 가치다. 그러기에 이기동 교수는 다시 한 번 그의 강의에서 마음의 가치를 역설한다.‘그러니까 미워하고 싫어하고 슬퍼하고 짜증내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 이게 다 정입니다. 정은 밖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샘물처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데 그게 바로 하늘의 마음입니다. 하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하늘마음으로 살지 못하고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갈등합니다. 욕심을 채우려고 하면 늘 남과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갈등하는 마음으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갈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초등학교때  2년 정도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다. 집 앞에는 흔히 말하는 샘물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물이 솟아나기에 마치 개울물 같았다. 어느 날은 뱀이 그 샘물 앞을 지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바위틈 속에 있는 가재를 잡기도 했지만 샘물은 언제나 맑았고 청량감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이런 물을 구경도 못하고 마실 수 없다는데 있다. 샘물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인공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결과 마음도 오염되어 욕심, 질투, 불안, 분노나 짜증으로 채워졌다. 동양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오염된 우리의 마음을 샘물(동양 고전)로 정화 시키는 것이 아닐까?

몇 권의 동양고전을 읽으며 발견한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는 청각의 소중함이다. 지금이야 보는 것이 문화의 중심이고 들려오는 소리의 대부분은 소음뿐이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 속에서 발견한 소리의 아름다움이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시를 지었고 책도 소리 내어 읽었다. 우리의 독서는 정보와 지식이 중요하지만 그들은 감성이 풍부한 독서를 즐겼기에 지식보다 지혜를 원했고, 출세보다 삶의 근원을 탐구했다. 14명의 강사들이 열강하는 현장에 있지 못했기에 아쉬움은 있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졌기에 몇 번이라도 반복읽기가 가능하다. ‘인문학 명강’은 고리타분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동양고전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내 삶의 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를 알게 하는  깨달음이 있다.  이것의 소중함을 느낀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https://youtu.be/9-2RXg4l4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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