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넘어선 사랑의 아름다움

영화 '경주' 리뷰

by 이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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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친화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흥행을 무시할 수 없는데 가끔은 예술적 안목을 중시하는 영화를 만난다. 이런 영화의 특징은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모호하게 다가온다. 감독의 의도는 쉽게 드러나지 않고, 남녀 간의 사랑도 자극적이지 않기에 영화는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다. 경주는 흥행과 거리가 먼 영화이기에 박해일이나 신민아를 좋아하는 팬들도 이 영화를 외면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죽음과 삶, 외로움, 사랑 등이 혼재되어 있기에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좋은 것은 최현(박해일)처럼 충동적으로 경주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작년 4월에 갔는데 많이 변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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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욕망, 춘화, 경주,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했다. 경주라는 배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궁금해 이 영화를 연출한 장률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그는 경주라는 공간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 인근에 이렇게 많은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중국에서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보통 무덤을 싫어하는데 경주는 사람과 무덤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능이 놀이판이 되고 연애판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 경주를 봤을 때 무척 놀라웠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장률 감독의 말처럼 ‘경주’는 죽음을 소재로 전개가 되는데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죽음이 자살이다. 장률 감독은 자살의 원인보다 남겨진 자의 슬픔을 아프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처럼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최현(박해일)과 공윤희(신민아)의 사랑에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고 흔한 키스신도 없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감정을 격조 있게 끌고 가기에 “저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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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 교수인 최현은 친한 형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는 충동적으로 경주에 갈 생각을 한다. 7년 전 최현은 죽은 형과 그의 친구와 함께 셋이 '아리솔'이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전통 찻집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춘화를 보고 싶어 그는 무작정 아리솔로 향한다. 그러나 찻집 주인은 바뀌었고 춘화는 보이지 않는다. 최현은 단아하고 신비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 찻집의 새로운 주인 공윤희에게

“7년 전 여기 있던 춘화 못 봤어요?” 라며 그림의 행방을 묻는다. 이 한마디로 윤희는 최현을 변태 성욕자로 오해한다. 누구나 낯선 공간 속에 있으면 일탈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최현은 예전 연인이었던 여정(윤진서)에게 전화를 한다. 여정은 서울에서 경주까지 먼 거리를 달려와 최현을 만나지만 여정은 무척 차갑게 최현을 대한다. 그때 그녀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최현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숨겼고 이것을 모르는 최현은 중국으로 떠나 중국여자와 결혼한 것이다. 한때의 육체적 본능이 한 여자를 불행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최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윤희와의 미묘한 감정에 갈등한다. 여정을 보내고 다시 아리솔을 찾은 최현은 가슴속에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한 여인 윤희와 차 한 잔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열어간다. 저녁 시간 윤희의 계모임에 초대받은 최현은 술자리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2차로 노래방까지 함께한다. 이때 윤희는 노고지리의 ‘찻잔’을 부른다.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찻잔을 ‘그 사람’으로 바꾼다면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노래한 것처럼 보이는데 최현은 알았을까? 이 노래에 맞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르스를 추는 모습을 연출한다. 두 사람의 욕망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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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보내고 노래방을 나온 세 사람. 한 사람은 윤희를 짝사랑하는 영민(김태훈)이다. 세 사람은 술기운을 빌어 왕릉의 꼭대기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때 윤희는 엎드려 “들어가도 돼요. 들려요 드러나고 되냐고요”라며 왕릉에 대고 외친다. 윤희의 내면에 자리 잡은 아픔과 상처를 알 수 있다. 영민마저 보내고 두 사람은 윤희의 아파트까지 오게 된다.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는 최현에게 윤희는 날카롭게 말한다. “마음대로 하세요?” 소파에 앉은 두 사람.

어색함 속에 윤희는 최현에게 “귀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라며 서서히 윤희의 손이 최현의 귀를 향한다. 자신의 남편과 최현의 귀가 너무 똑같기에 만져보고 싶었던 그녀는 “만져 보니까 너무 다르네요”라고 말한다. 아직까지 남편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가 최현을 향해 마음을 여는 장면이 에로틱하게 묘사된다. 나아가 윤희는 방문을 잠그지 않고 살짝 열어 놓는다. 이때 최현의 갈등하는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새벽을 깨우는 범종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온다.(짐승^^)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기겠지만 자신에게는 죽음도 춘화도 아니다. 한 사람을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여는 윤희의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사랑이 좋다. 두 사람만이 있는 공간 속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둘의 시선이 마주치고 입술이 가까워지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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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인 욕망만이 사랑일까?

최현은 자신의 욕망에 의해 아픈 삶을 살고 있는 여정 때문에 고뇌할 것이고,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윤희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한 사람을 욕망한다. 그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사랑은 예쁘게 진행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순수라고 부를 수 있기에 사랑은 가치가 있다. 최현과 윤희의 사랑을 응원하는 이유다. 근데 신민아 단아한 모습이 너무 예쁘다^^


배경음악은


백현진 방준석 - 사랑 (영화 '경주'의 타이틀 곡)입니다.



https://youtu.be/O5t_NWp1u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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