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의 태극기를 생각하며.

다사다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by Yongnam Kim

3.1절이다. 어느 누구에겐 개학 및 개강의 전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날이기도 하다.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3.1절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글을 써 본다.


탄핵(impeachment)이다. 누군가는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탄핵되기를 소망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것을 거부한다. 대한민국은 탄핵이냐 아니냐의 가운데에 서 있다.


탄핵을 바라는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여 한다. 그래서 촛불집회라고 일컫는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간다. 언론에서는 ‘태극기집회’라고 부른다. 아니면 애국집회??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우리나라의 법에서도 법률과 대통령령으로 ‘국기’와 관련된 법령이 있다. 모양, 인쇄방법 등에 대하여 정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으며, 공공기관에서의 태극기관리방법 등이 명세 되어 있다. 한 마디로 하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


올해 2017년을 맞이하는 3.1절의 ‘태극기의 가치’는 중립적이지 않았다. 이미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를 어느 누군가의 비상식의 모임의 상징으로 쓰인다는 것이 이미 가치중립을 상실 했다고 본다. 이전에 교직과목 중 ‘교육사회’라는 과목을 들을 때, 담당교수님이 수업 중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교수님은 교사의 역할이 전문직이냐, 노동자냐의 입장에서 전문직인 입장을 고수하는 단체는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 전문직으로서 교사의 권익신장을 위한 전문직 단체라고 하였으며, 노동자의 관점으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일명 전교조)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 전교조가 내세운 가치인 ‘참교육’ 이란 슬로건(slogan)에 대하여 잠시 언급 하면서 “전교조 조합원이 아니면 참교육이 아닐까요?”라고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 이 말이 문득 떠오르면서 함께 태극기집회의 참여자들이 주장하는 말과 함께, 촛불을 든 사람들은 태극기를 든 사람들과는 다르게 “매국”인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이다. 답은 아니다 이지만.


모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인터넷에 떠돈다. 평소에는 정치적인 발언을 설교시간에 발설 하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하신 분인데, 태극기집회에 참여를 독려하는 설교를 6분 이상 했었고, 매주 그런 식으로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 교회는 성도수가 20만 명이 넘는 초대형 메가처치(mega-church). 한 탐사전문 독립언론에서는 교회 앞에 줄 지어 주차되어 있는 대형버스들이 태극기집회로 교회 예배가 끝난 뒤 성도들을 수송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보수적인 정치색을 띄는 교회에서는 강대상 위에서 이미 탄핵기각의 의견이 많이 흘러 나왔다. 주 교회참여계층이 노년층이 대다수인 우리나라의 교계에서 많이 보인다. 그러나 제일 나쁜 케이스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는 양비(兩非)론으로 설교하며, 설교자가 마치 모든 것을 통찰한 하나님처럼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하며 또한 양 편의 지지와 반대의 의견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는 회색적 역할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방편을 쓰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상식 vs. 비상식’ 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어떠한 가치는 가치중립을 띄어야 그 가치가 빛이 난다. 태극기가 어느 정치집단의 상징이 되는 순간 그 국가의 미래는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강대상에서 도덕과 윤리를 넘어 종교적인 진리 및 가치만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 어느 관련 없는 말이 나오면 강대상에서 나오는 모든 것의 가치를 상실한다. 그냥 의미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2017년의 국가상징물이 이렇게 의미 없게 쓰이는 것을 보고 있는 현상이 참담하다. 1960년대 3.15부정선거를 자행했던 당의 명칭이 유추되게 당명을 바꾼 그들의 여당 비상지도자도 하필이며 ‘목사’ 일까? 또 지금 자행되는 정교(政敎)일합 현상에 대하여 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가치, 십자가가 십자군전쟁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를 잃고 정복과 폭력이라는 이미지로 바뀔 때, 지금의 한국교회가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 이란 제목으로 ‘비상식’을 옹호 할 때, 기독교적 가치는 상실한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의 독립을 향하여 외치며 같이 나부낀 태극기는 지금, 나라를 어지럽게 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참고로 그 당사자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 했으며, 친일혈서를 쓴 자이다. 그리고 쿠데타로 헌법을 문란케 하고 18년 독재를 하였다. 참으로 아이러니(irony) 하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 주가 될 것 이다. 언제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상식 vs. 비상식은 이분법적 프레임이 아니다. “바로가기(value->shortcu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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