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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09. 2023

엄마, 난 가족을 극복하는데 30대를 다 보냈어

엄마와 주말에 잠깐 만났습니다.

1년 여만에 보는 엄마는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신호등 건너편의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자 엄마도 환하게 웃으며 선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느리게 바뀌는 신호를 기다리는 1분 여의 시간도 아까워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엄마와는 만나자마자 1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듯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떨었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떤지, 할머니 요양원 이야기, 오빠 연봉 이야기..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깔깔 웃음이 쏟아졌어요. 예전에 아빠가 잠들면 엄마와 새벽까지 소곤소곤 수다를 떨었을 때처럼.

엄마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고, 그 점에 안도하면서도 미안하고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엄마는 이제 슬슬 다시 아빠와 연락을 하고 지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으셨습니다.


엄마 눈에 이제 내가 좀 편안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제 내가 좀 누그러져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런 말을 듣는 것조차 싫어서 엄마와도 연락을 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치가 떨리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아예 가족과는 단절한 채 지냈죠. 그 후 엄마와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을 때도 더는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주 조금씩 저에게 다시 이야길 꺼내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많이 달라졌어.

아빠도 후회하고 있는 눈치야.


아빠가 후회하고 안 하고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지금 불행하든 아니든 그마저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로 인해 여전히 나와 엄마가 그를 중심에 두고 불편한 이야길 해야 한다는 사실이죠.


두 분은 외롭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오빠는 가족에게 무신경하고, 하나 있는 딸은 가족과 연락을 끊고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고, 부모님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죠. 다른 집들은 손주도 있고, 온 가족이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는 걸 그들도 보겠죠. 부럽기도 하고 자식들이 괘씸하기도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매번 느끼지만 차마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외면하면서 지낼 것입니다.

특히나 아빠는 말하는 걸 좋아하고, 주목받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제는 엄마 말고는 그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엄마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고 가족이 화목한 것만을 바란다고 저에게 간곡히 말했습니다.

엄마는 왜 이제 와서 화목한 가정이 꿈인 걸까요.


10대에 나는 제발 우리 가족이 화목하기만을 바랐고

20대의 나는 제발 엄마가 행복하길 바랐고

30대의 나는 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30년을 내내 가족만 바라봤던 나는 이제 겨우 스스로를 돌보는 중인데 엄마는 지난 3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가 봅니다.


그런데 저도 참 서글프더군요.

어느 누가 노부모의 외로운 삶이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차마 그러겠노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굳건했던 마음이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빤 절대 변하지 않았을 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어쩌면 나도 이걸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깨닫는 순간 슬퍼졌어요.


엄마는 제게 너무 소중한 존재라

엄마의 말 한마디에 온갖 시나리오를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가여웠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제일 가여운데 엄마는 또 나한테 양보하라고, 네가 져주라고, 엄마 소원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엄마는 아빠가 그저 불쌍한가 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저는 내내 거기에 혼자 있었는데.

그 슬픔을 극복하는데 내 삼십 대를 다 보내버렸는데.


가족과 연락을 끊고 어렴풋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결론은 내가 더 이상 엄마 아빠 이야기에 서글퍼서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였어요. 아빠를 마주해도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을 때까지.

오늘 이 글을 쓰는 내내 쉴 새 없이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엔 눈이 퉁퉁 붓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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