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Feb 05. 2023

나에게 무례한 건 언제나 나였어

퀴즈 하나 준비했습니다. 태어나서 내가 가장 많이 화를 낸 사람은?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이 질문에 ‘엄마’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꼬집어 엄마가 아니어도 가족인 경우가 흔하다고요. 그만큼 가족은 편한 상대라는 반증이고, 나의 가장 별로인 모습을 보여도 다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전 사춘기 때를 제외하곤 엄마에게 짜증을 내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가 상처받을까봐 전전긍긍했으면 했지 내가 상처를 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내 존재자체가 늘 미안할 따름이었죠.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당신이 자랑할만한 딸이 못 되어서, 감히 화를 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지인들이 부모님께 화를 냈다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부모에게 마음대로 짜증을 내고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부모는 나를 싫어할 리는 없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일테니까요. 저같이 부모가 나에게 실망할까봐 이리저리 눈치보며 자란 아이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입니다.


그럼 나는 누구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는 저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냈습니다.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될까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늘 제 탓만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부모님 마음에도 한 번 든 적 없던 내가 내 마음에 들 리는 없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한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살집있던 몸도, 두툼하고 넓적해서 못생긴 손발도,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도,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날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했어요. 얘는 날 왜 좋아할까가 늘 의문이었죠. 친구든, 애인이든 진짜 나를 알게되면 모두 떠날거라고 생각했고 내 모습은 감춰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족에게 항상 저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내가 쓸모있는 존재여야 그나마 가족들은 나를 봐주었으니까요. 오빠는 똥만 싸도 장한 3대 독자지만 저는 착해야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천덕꾸러기였거든요.

유치원을 다니더 대여섯살의 저는 그때부터 오빠에게 양보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가 칭찬해줬거든요. 내가 고집을 피우면 기지배가 욕심이 많다는 둥 지 오빠를 이겨먹으려고 든다는 둥 나무라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때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욕망이 없는 사람인 척 하고 살았습니다. 

새로 한 따뜻한 밥 대신 어제 먹다 남은 찬밥을 먹었고, 고기반찬 대신 김치를 더 좋아했고, 새 신발 대신 오빠가 신던 운동화를 신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성인이 된 오빠는 부모님 도움으로 40평짜리 아파트에 살지만 저는 6평짜리 신림동 원룸촌에서 살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나는 원래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늘 착한 딸이었습니다. 엄마 마음 알아주는 착한 딸, 아빠한테 반항 안하는 착한 딸, 할머니 말벗이 되어주는 착한 손녀, 욕심도 없고 착한 딸, 그것이 제가 그 집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그들이 저를 아주 손쉽게 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늘 안고 살았죠.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도전하고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고 살아야지, 내 주제에. 

내가 어떻게 저렇게 큰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 여기에 만족해야지. 

내가 연봉 5,000을 어떻게 찍겠어. 다 남의 얘기지. 


나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고, 이 이상을 원하는 건 욕심이고 헛된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시도할 기회마저 차단해버렸습니다. 욕망을 표출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여겨왔던 과거가 성인이 된 내 발목까지 잡아버린 것이죠.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가족이 나에게 가장 무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고, 나의 희생을 당연히 강요하고, 내 생각을 비난하고 제한했던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독이었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나에게 가장 무례했던 건 언제나 나였습니다. 

나에게 가장 많이 화를 낸 사람도, 나를 가장 막 대한 것도, 내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라며 어떤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도 전부 나였습니다. 가족 안에서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한 내가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지 나 스스로를 제대로 보듬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안심이 됐습니다. 내 부모 때문에라는 원망과 무력감, 패배감 대신 내가 나를 믿어주고 소중히 대할수록 내 삶이 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데 과거에 갇혀서 살 수 없잖아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가 한 번도 소중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내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리마인드 해줘야 합니다. 내 자존감의 기본값으로 자리잡힐 때까지요. 

내가 소중하다는 것이 기본값이 되면 삶을 절대로 함부로 흘러가게 두지 않습니다. 내가 불행해지는 방향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순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길테니까요.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나'라는 것을 믿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이지만 친정도 시댁도 가지 않고 늦잠을 잡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