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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an 21. 2023

명절이지만 친정도 시댁도 가지 않고 늦잠을 잡니다

제사가 있는 날은 내 불안이 극도로 높아지는 날이었다. 이런 집안 행사가 있는 날엔 어김없이 아빠의 심기가 불편했다. 뭐든 자기가 찾을 때 딱 눈앞에 있어야 하고, 자기 성에 차야하는데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지방을 쓸 때 붓펜이 안 나온다고, 제사 음식이 왜 이 모양이냐고, 술은 또 왜 정종이 아니냐고, 있는 트집 없는 트집을 꼬치꼬치 물고 늘어진다. 미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상은 끔찍하게 챙기면서 살아있는 가족은 종년처럼 부려먹었다.

엄마는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부엌에서 대꾸도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고 나는 아빠가 소리를 지르지 않기만을 바라며 제기에 음식을 최대한 예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가 비굴하게 웃는 게 제일 싫었다. 그것도 하필 날 낳아준 부모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건 치욕에 가까웠다.


특히나 설이 싫었던 건 세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배를 받으면서 조차 아빠는 나와 오빠를 세상 못마땅한 얼굴로 흘겨봤다. 자기 기분에 따라 절을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가 또 어떤 날은 너네한테 절 안 받는다고 소리를 질렀다가 변덕을 부렸다. 세뱃돈을 건네면 뭐 하러 주냐고 안 받는다고 고집을 부리고 미처 현금을 못 뽑은 날엔 그런 것도 준비를 안 하고 뭔 지랄을 하고 다니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니까 명절은 그냥 아무 이유 없는 아침부터 욕을 얻어먹는 날이었다.

나와 오빠는 그 거실이 너무 숨 막혀서 제사가 끝나면 좁은 방구석으로 피신해 동질감에 자조하며 낄낄 거렸다. 그것도 내버려 둘 리 없는 아빠는 방 문을 열어젖히고 뭐 하냐며 관심 구걸을 하다가 미적거리는 우리가 또 꼴 보기가 싫어지면 또 소리를 질렀다.

도저히 편할 수 없는 집구석이었다. 우리는 눈치를 보다가 각자 일 핑계를 대며 집밖으로 도망쳤다. 성인이 되어 회사 일을 핑계로 주말이고 명절이고 핑계를 대고 나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집에 연락을 끊고 처음으로 맞이했던 명절, 아침부터 오빠에게 메시지가 왔다.


- 차례는 잘 지냈어? 네 아빠는 새벽부터 또 난리였다.


우리는 아빠를 '네 아빠'로 부른다. 할머니가 내게 엄마 욕을 할 때 늘 '네 엄마'라고 했던 것처럼. 도저히 그냥 아빠라고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처럼. 

오빠 메시지가 온 시각 나는 남편과 평화롭게 꿀잠을 자고 있었다. 명절에 이렇게 늦잠을 자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온 집안을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며 목욕을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한복을 꺼내 입고 유난을 떠니까 나도 일찍부터 일어나 아빠 비위를 맞춰야 했다. 엄마 일을 돕고, 제기를 닦고, 상을 펴고, 음식을 나르고... 여자들이 일을 하는 동안 아빠는 거울을 보며 정성스럽게 빗질을 하고, TV를 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이제 그 꼴을 안 봐도 되는 나에게 남은 건 그저 평화였다. 나는 내가 가족과 비로소 연결고리가 끊어졌음을 실감하며 평화를 만끽했다. 


시댁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예전엔 지냈는데 시어머니가 편찮으시면서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몇 가지 음식들은 어머님 혼자 준비하신다. 얼핏 며느리가 새로 들어왔으니 제사를 지냈으면 하는 마음도 내비치셨지만 남편은 단칼에 거절했다. 

명절엔 보통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고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어슬렁 일어나 시댁엔 12시쯤 도착해 시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집에 오곤 했다. 길어야 세 시간 정도를 머무는 시댁에서 나는 불편한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 어머님은 남편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나에게 그저 고마워하실 뿐이고,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냐며 걱정해 주신다. 그러다 곧 바리바리 김치와 반찬들을 싸주시고 어서 가서 쉬라며 먼저 말씀하신다.  


얼마 전 찾아뵌 어머님은 올 설에도 오지 말고 푹 쉬라고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지난해부터 어머님은 명절에 오지 말고 놀러 가라며 배려해 주셨다. 처음엔 그래도 어떻게 명절을 그냥 보내냐고 남편에게 가자고 했는데, 어머님께 전화해 간다고 해도 한사코 오지 말고 너네끼리 어디 놀러라도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작년부터 명절에 진정한 자유가 주어졌다. 

늦잠을 자고, 있는 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그 마저도 귀찮으면 배달을 시켜 먹는다. 남편과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카페에 가서 책을 보고,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느릿느릿 휴가를 보낸다.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평화가 내 삶에도 찾아왔다. 


이제 아빠로 인해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평화를 얻은 것처럼 내 가족인 그들에게도 평화가 깃들길 속으로 조용히 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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