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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08. 2023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절대조건

 

우리 가족의 비극은 자수성가한 아빠와 어설프게 많은 재산, 기대에 따라주지 못한 자식들..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시작됐습니다.

부모님은 정말 없는 살림으로 시작했지만 두 분 모두 공무원이었고, 특히나 엄마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요즘 부동산 부자들처럼 레버리지도 일으키면서 조금씩 조금씩 집을 넓혀갔습니다.

엄마는 남의집 쓰레기봉투를 열어 우리집 쓰레기를 꽉꽉 눌러 담아 버렸고, 보일러 한번 마음껏 틀어보지 못하면서 온몸으로 가난을 부딪쳐 결국은 원하는 만큼의 부를 이루고 노후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고난이 닥쳤을 때 든든한 빽이 되어줄 부모가 있다는 것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궁핍하게 살아본 적도 없는 삶

부모님은 제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연락을 끊겠다고 결심했던 수만가지 이유 중 하나가 돈에 대한 아빠의 집착과 그것을 빌미로 자식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비상식적인 통제와 억압 때문이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키는 것은 배품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빠는 항상 감사하라고 복종하라고 매일 같이 윽박을 질렀습니다.


어느 날은 돈이 많다고 으스대다가 또 어느 날은 그게 자식들에게 쓰는 게 아까웠다가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이거 다 너네 거야.', 기분이 나쁠 때는 '자식새끼들은 다 도둑놈의 새끼'라고 욕을 해댔죠. 한 번도 그 돈을 탐한 적도 없고 달라고 한적도 없는 어린 아이일때부터 오빠와 저는 아빠에게 항상 죄인이 되었어요. 아빠가 그렇게 자식들을 단정지어 버렸거든요.


'내 돈만 노리는 것들.'


아빠는 자신의 돈 때문에 자식들이 본인에게 꼼짝못하는 거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식들에게 화가났고, 서운했고, 억울해했습니다.  

그 억지 때문에 저도 불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믿고 살아온 아빠도 참 불행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의 비극은 자식을 믿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돈 때문에 자식들이 자기 말을 듣는 거라는 의심, 돈 때문에 자식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는 망상, 돈 때문에 자식들이 결국 부모의 등골을 빼먹고야 말 거라는 착각 속에서 아빠는 내내 본인을 갇아두고 살았습니다. 늘 의심과 경멸의 눈초리로 자식들을 감시하면서 말이죠.


가족과 인연을 끊어야겠다 결심했을 때 저는 부모님의 ‘재산’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을 은연 중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준다고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 준다고 한 적도 없기에, 저도 사람인지라 부모의 재산이 곧 나에게도 일부는 상속될 거라는 생각을 안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재벌은 아니지만 내가 평생 모을 수 있는 돈을 훨씬 뛰어넘는 재산을 포기하는 게 가능할까?

인생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데 내 삶에서 시련이 닥쳤을 때,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참았는데 이제와서 다 걷어차고 나가기는 아깝지 않나?


답을 내리는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안락함, 편안함, 풍족한 미래까지 모두 버려야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고작 마음대로 늦잠을 자는 것, 마음 편히 내 시간을 보내는 것, 아빠의 간섭없이 내 의지대로 세상을 사는 것. 그것이 전부지만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그 책임도 내가 지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저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얼마 전 엄마는 10년에 오천만원씩 자식에게 세금없이 증여할 수 있다며 아빠와 화해하고 그것도 받으면 좋지 않겠냐는 말을 전했습니다. 순간 살짝 욕심이 났지만 곧 자식의 마음을 돌리는데 또 돈을 들이미는 엄마가 불편했습니다.  

증여 받을 오천만원보다 저는 지금의 자유가 더 좋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삶이 오천만원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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