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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15. 2022

엄마와 딸, 엄마에게 죄책감이 드는 당신에게

많은 딸들이 스스로 상처 받는지도 모른 채

엄마의 상처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엄마의 삶을 보상해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정작 자신의 삶보다 엄마를 챙기기에 더 급급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삶이 있고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떨어져서 천천히 엄마와 나를 분리해보세요.

생각보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을 겁니다. 






엄마는 늘 지쳐있었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오냐오냐 자란 아빠는 이기적이고,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늘 화를 내고 

입에 담지못할 폭언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일찌감치 아빠와 싸우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어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에 참는 것말곤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요.

이 집에서 엄마는 철저하게 혼자였습니다. 

할머니와 아빠는 엄마에게 늘 화가 나 있었어요.

항상 못마땅한 눈으로 엄마를 몰아부쳤고

엄마는 많은 것들을 참고 포기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야 가정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어릴 때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엄마는 항상 무표정이었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항상 예민하고 피곤했을 거에요.

어린 우리 남매를 안아줄 여유조차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 엄마는 자면서도 고단한지 눈썹을 찡그린 채 잠을 자곤 했어요.

매우 지쳐보이는 엄마 얼굴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짠한 마음이 들었고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든건 아닐까 걱정이 됐죠.

그때가 제 나이 열살 즈음이었으니까

엄마 나이 마흔, 딱 지금의 제 나이네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엄마를 제 삶에서 떼고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엄마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고

엄마가 부디 엄마의 삶에서 행복을 찾기를 바랐어요.

그래야 엄마가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루는 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만 내일 죽어도 하나도 안 아쉬워. 사는 게 재미가 있어야 아쉽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엄마는 불행하구나.' 

그리고 동시에 상처가 되었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말이죠.




그렇다보니 늘 엄마의 기분을 걱정하며 살았어요.

엄마의 감정에 동화되고, 엄마가 슬프면 저도 슬프고,

엄마가 우울하면 저도 우울했습니다. 

엄마가 불행할까봐 늘 전전긍긍했던 것 같아요. 



문제는 그렇게 살다보니 제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한거에요.

늘 엄마 기분을 걱정하면서 살다보니 그 무게가 힘들었던거죠.



아빠가 엄마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때면

제 가슴이 움푹 파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상처받지 않기를 주문처럼 기도를 중얼거렸어요. 



불안감은 계속 쌓여갔습니다. 

제발 오늘은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강박증은 더욱 심해졌고요.

내가 어떤 강박에 가까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거든요.

결국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행동에 강박적인 규칙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거죠.






엄마가 불행하면 딸은 그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 한다고 합니다.

또 동시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아빠의 언어폭력과 정서적 학대에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집을 놓지 못했던 이유도 엄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어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엄마만 이 지옥에 남겨두고 나갈 수가 없었거든요.



이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자꾸만 엄마에게 죄책감이 들고,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미치겠다고 상담사님께 쏟아내듯 말했어요.

펑펑 울면서 말이에요. 

그때 상담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아마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진 않으실 거에요." 



엄마는 엄마가 선택한 삶에 책임감을 갖고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빠와의 관계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안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거라고 말이죠.

저는 저만의 생각으로 엄마가 불행하다고 믿어 왔기 때문에

상담사님의 말이 무척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그제야 엄마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재미있게 사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 나름대로 인생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을요. 

아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성격이 가끔 지랄맞긴 해도 속은 여리고 착해. 그래도 나 챙겨주는 건 결국 아빠밖에 없어."



그러니까 엄마는 마지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저는 지레짐작으로 

엄마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그 감정을 나에게 투영해 스스로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엄마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단하게 자기 인생을 걸어나가고 있었던 거죠. 



엄마를 위해,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불행에 몰아넣지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희노애락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도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세요.



그리고 우리는 누구에게도 희생하지 않는 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알아서 행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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