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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Dec 18. 2022

친정에 가지 않고도 잘 지냅니다.

결혼 전, 서른다섯 살에 독립을 했습니다. 독립한 후에도 아빠는 주말마다 집에 와서 자고 가길 바랐어요. 집에 와서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할머니도 보고, 편안히 쉬다 가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은 늘 아빠나 오빠 위주였고, 저는 대부분 찬밥이나 남은 반찬을 먹었어요. 엄마만 혼자 그런 음식을 먹는 게 마음에 걸려서 차마 따뜻하게 갓 지은 밥을 달라고 못하겠더라고요. 집에 가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아빠 눈치 보며 청소도 해야 하고, 아빠가 마사지 좀 해달라고 발라당 엎드리면 성심성의껏 마사지도 해줘야 하고, 밤늦게까지 잠도 못 자고 아빠 말 상대를 해야 하는데 이건 딱 시집살이나 다름없이 느껴졌어요. 주말을 다 보내고 일요일 낮에 조금 일찍 돌아가려고 하면 왜 이렇게 일찍 가냐고 눈치를 주고, 그 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금세 불쾌한 티를 내며 이럴 거면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죠. 저에게 집은 쉬다가는 곳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노동에 가까웠습니다.


늘 어떻게 하면 이번 주에는 집에 안 갈 수 있을까, 핑곗거리를 만드려고 애를 썼는데 거짓말조차도 아빠 기분이 상할까 봐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꾸역꾸역 소 끌려가듯 토요일 아침이면 집에 갔습니다. 늦잠도 못 잡니다. 아빠가 기다리니까요. 늦으면 늦었다고, 어른들 기다리게 한다고, 뭐가 그렇게 맨날 피곤하냐고, 게을러터졌다고 끊임없이 비난할 테니까요. 남들은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저는 금요일이 오는 게 너무 싫었어요. 주말에도 일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회사를 가는 것보다 집에 가는 게 더 싫었으니까요.

집에 가는 게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점심시간에 맞춰 가면 결국 아빠는 화가 나 있고, 그럼 나는 아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고, 아빠는 기어이 나를 비난하며 내 잘못을 만천하에 공개할 듯 떠들어대고, 그럼 저는 또 죄송하다고 말하는... 이런 일들이 거의 모든 상황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습니다.


결혼 6개월 뒤부터 친정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더 이상 친정의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아빠가 암에 걸리고, 엄마가 지하철 계단에서 굴러 뼈가 골절되고,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오늘내일한다는 소식을 들어도 저는 엄마에게만 간단히 카톡을 남길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한 번 빌미를 주면 다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으로 저보다 곤란해했던 사람은 남편이었습니다. 이제 막 장인 장모가 생겼는데, 아내가 친정과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을 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안 그래도 어색한 장인 장모를 혼자서 찾아 뵐 수도 없고, 연락을 하자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난감했을 겁니다. 불편해하는 남편에게 저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연락하지 않아도 돼. 그로 인해 내 부모가 서운해하고 당신을 못된 놈이라고 여겨도 내가 여보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한 거니 괜찮아. 여보가 연락을 하면 오히려 내가 더 불편할 거야. 나는 내 가족과 관련한 어떤 소식도 듣고 싶지 않아. 아주 작은 소식에도 꼬리의 꼬리를 물고 불안해져서 결국 나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거야."


이 말은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내 불안의 시작점은 언제나 가족이었으니까요. 모든 일을 할 때 아빠의 반응을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엄마에 대한 걱정과 오빠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 때문에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족과 연결된 모든 관계를 차단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이 내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면 아마 저는 절대로 가족을 끊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친정이 없으면 남편이 나를 우습게 본다. 시댁에서 무시한다 등의 말을 하곤 했습니다. 남편도 돌아서면 남이고, 절대로 네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죠. 결국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라고 강조하면서요.

처음엔 정말 그럴까 봐 겁이 났습니다. 내가 친정 식구들과 인연을 끊고 혼자가 되면 남편이 날 막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그런데 슬픔에 빠져 있는 나를 보듬어 주는 사람은 엄마도 아빠도 아니고 남편뿐이었습니다.

TV에서 가족 이야기만 나와도 줄줄 눈물을 흘리고, 우울증에 무기력해져 누워만 있는 저를 묵묵히 기다려준 사람도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이제 가족이 없다고 슬픔에 잠겨 말할 때 남편은 저를 꼭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여보 가족은 나잖아."


나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편에 서주는 남편에게 저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내 가족에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던 따뜻함을 느끼며 내가 가족이 없어진 게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혼한 친구들이 친정엄마, 친정식구들 이야기를 할 때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도 가끔은 친정에 가서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엄마 손맛 가득 담긴 반찬을 바리바리 손에 들려주는 엄마를 귀찮아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받아오는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친정 부모님 건강할 때 더 많이 여행을 가려고 한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움과 씁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시부모님과 가족 모임을 할 때, 명절이나 생신을 챙길 때, 내 부모의 얼굴이 스치며 착잡해지는 마음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쪽 가슴은 공허하지만 대신 다른 한 편을 가득 채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쪽의 충만함으로 다른 한쪽의 텅 빈 공백도 메워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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