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Dec 15. 2022

내가 가족 이야기를 쓰는 이유

가족 이야기를 쓴 지 5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이제야 용기를 낼 수 있었네요. 

가족에게 받았던 상처, 그 과정에서 느꼈던 슬픔, 서러움, 분노 등 모든 감정을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건 마치 저에겐 숙제 같기도 했고, 이 산을 넘어야만 내가 쓰고 싶은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처음엔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더군요. 쓰다가 감정이 요동쳐서 울기를 여러 번, 결국 몇 줄 쓰지 못하고 노트북을 닫거나 과잉된 감정을 쏟아놓아서 도저히 읽을 수 없거나 둘 중 하나였습나다. 그렇게 가슴에 이야기를 꾹꾹 담아둔 채 감정이 익어가기를 기다렸어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까 봐 무섭기도 했고, 혹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큰 상처가 되겠구나 생각하니 죄책감도 들었고요. 그럼에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단단해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한 회 한 회 글을 쓰면서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마흔이 가까워지도록 가족은 내게 늘 상처였고, 아픔이었는데 이제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 

많이 울었고, 원망했고, 스스로를 미워하다 못해 증오했지만 

그건 그냥 나에게 벌어졌던 일이다. 

미성숙한 부모를 만났고

그 또한 내 잘못이 아니다. 



저의 2, 30대를 돌아보면 온통 좌절과 절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닥치는 대로 심리학 책을 읽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 왜 나는 부모를 증오할까. 해답을 찾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디에서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멍 난 자존감 찌꺼기라도 박박 긁어서 가질 수만 있다면 갖고 싶었던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어도 삶의 방향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나만 비정상인 것 같은 기분으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안고 살았는데 누구도 보지 못하게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가족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을 때마다 그 기억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끔씩 달리는 사람들의 비난댓글도 괜찮았어요. 오히려 공감과 위로해주시는 글들을 보며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제가 겪어온 일들을 더 자세히 쓰기 시작했어요. 그 답답했던 시간들을 누군가는 지금 겪고 있을 테니까요. 부모를 증오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증오하게 되거든요. 그럼 그때부터는 사는 게 참 지옥이거든요. 

제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도 공감받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가족과 인연을 끊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것도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이건 또 이것만의 슬픔이 있으니까요. 다만 관점을 조금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요.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에게만 매몰되어 있으면 삶이 온통 불행 속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주 살짝만 중심을 나에게로 돌리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저는 그랬습니다. 

깨닫고 나니 내가 소중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기분.

그래서 저는 이제 '나를 지키는 것'이 삶의 모든 기준이 되었습니다. 부모에게 이래도 될까, 가족을 모른 척해도 될까, 나만 편해도 될까.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면 왜 안 되겠어요. 누가 비난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또 비난하면 뭐 어때요. 내 삶에서 내가 중심인 게 나쁜가요? 알고 보면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가족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oyohada1




매거진의 이전글 친정에 가지 않고도 잘 지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