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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10. 2024

나는 왜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낄까

엄마는 늘 지쳐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가족이 먹을 밥을 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서둘러 출근준비를 했다. 만원 버스에 매달려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트집을 잡고, 욕을 하고, 아빠와의 사이를 이간질을 시켰다. 홀어머니 밑에서 오냐오냐 자란 아빠는 이기적이고, 공감능력 떨어지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늘 화를 내고 폭언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홀로 자신을 키워낸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너무 강했던 사람이라 곰처럼 일만 하는 아내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엄마는 일찌감치 아빠와 싸우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에 참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정을 지키려면 그것만이 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내내 철저하게 혼자였다.

엄마의 웃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무표정이거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예민하고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잘 때도 인상을 찡그리고 자는 엄마에게 어린 자식을 안아줄 여유는 당연히 없었다.  


불행하게도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였다. 나에게 엄마는 늘 안쓰러운 존재였다. 애틋했고, 불쌍하고, 안아주고 싶었고, 엄마 품에 안기고도 싶었다. 엄마가 불행할까 봐 겁이 났고, 이대로 엄마가 날 버리고 떠나는 건 아닌지 항상 불안했다.  

아빠가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때면 내 가슴도 움푹 파이는 것 같았다. 화가 나면 옆에 자식들이 있든 말든 쌍욕도 서슴없이 하는 아빠의 모습 뒤로 엄마는 뒤돌아 선 채 돌부처처럼 가족들이 먹을 밥을 했다. 도대체 그 밥이 뭔지, 그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엄마는 무던히도 밥을 해댔다. 그 속이 얼마나 문드러졌을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그런 엄마였기에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그녀를 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항상 나보다 엄마가 먼저였고, 부디 엄마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엄마의 기분을 걱정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감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오늘만은 엄마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는 어떤 행동들도 자꾸만 늘어났고 결국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행동에 강박적인 규칙이 생기고 말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 어느 날엔가 나만의 강박적인 규칙으로 인해 큰 사고가 날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서야 내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담소를 찾았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상담 선생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말했다.


“왜 엄마한테 죄책감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그때까지 난 한 번도 그 단어를 입에 올린 적 없었다. 죄책감.

늘 아빠 때문에 우리 가족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죄책감이 벌건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부모에게 갖는 죄책감, 부채감은 늘 내 목을 조였다.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식들 편하게 공부하라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그 이유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와 오빠는 부모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자식들의 성적이 못마땅했던 아빠는 늘 우리를 쓰레기 취급했고, 엄마는 우리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곧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부모에게 기쁨은커녕 실망만 안기는 쓸모없는 자식이라고.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다. 성적이라는 한 가지로 나를 평가절하하는 부모에게 끊임없이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내 부모는 단 한 번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네가 부족해서’였고, ‘네가 공부를 못해서’, ‘네가 그런 회사밖에 못 들어가서’로 귀결됐다. 내 죄책감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굵은 뿌리를 깊게 깊게 내리고 있었다.   


그날 상담사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엄마는 본인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기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본인이 선택한 삶을 사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부모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엄마에게 갇혀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  

상담사의 별 다를 것 없는 말에 이상하게 울음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그가 이야기한 ‘엄마가 선택한 삶’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생각이었다.

엄마는 엄마가 선택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럼 나는? 스스로 엄마에게 종속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선택하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찾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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