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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03. 2024

누구나 한번은 부모라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불안을 견디는 시간

일곱 살 무렵 골목 끝에서 끝까지 눈을 감고 걸어간 적이 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간에 눈을 뜨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규칙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하면서 종종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게 '불안'인 줄도 몰랐던 나이였다.

언제부턴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됐다. 숨 쉬는 것부터 눈을 뜨고 감는 것까지 순간순간 규칙이 생겼고 그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극도의 불안을 느꼈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이 아는 그 규칙을 따르느라 평범한 생활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만하고 싶었지만 따라오는 불안함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었다.


불안함과 죄책감 사이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강박과 불안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게 지금과 같은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심리치료를 해준다는 곳을 찾았다.

첫 시간에 내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저는 부모님한테 늘 죄송해요"였다.

내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은 심리치료사는 나에게 독립을 권했다. 가족과의 관계가 힘들다면 잠시 멀어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했다.  


독립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아는 가까운 친구들도 내게 독립을 추천했다. 독립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였고, 그만한 돈을 벌고 있으니 독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나는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독립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12시 통금이 있었던 우리 집은 10시만 넘어도 아빠는 언제 집에 오냐며 몇 번이고 전화를 해댔다. 회식이라고 해도 본인 기준에서 대단하지도 않은 그까짓 회사 다니면서 무슨 회식이냐고 빨리 집에 오라고 소리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자식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아빠 때문에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본 내가 독립이라는 말만 꺼내도 집은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계집애가 발랑 까져 가지고… 여태까지 먹여주고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년… 나에게만 하면 다행이고 엄마에게까지 날 선 비난과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나에게 욕을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나로 인해 온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더 참기 힘든 일이다. 그때는 그저 하루하루가 조용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날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독립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아빠의 분노가 두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부모의 지원 없이 혼자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부모의 말투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너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 거봐, 너 그거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

- 그럴 줄 알았어. 네가 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 진짜 한심하다. 너는 너를 그렇게 모르냐?


내 부모는 이런 말을 달고 살았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꼴을 못 봤다. 실패하면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부모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어떡하든 주지 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 같았다. 그것은 인생에서 실패를 줄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겠으나 덕분에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 어차피 안될 텐데 시도해서 뭐 해

- 거봐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엄마말대로 가마뇌나 있을걸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내 생각, 내 의사보다 부모의 허락과 인정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장래희망도, 직장을 구할 때도, 결혼할 사람을 데려갈 때도, 오직 부모의 마음에 들지가 가장 신경 쓰였다. 그들이 못마땅 해하면 죄책감을 느꼈고, 그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 안도했다.


그렇게 부모의 인정을 좇아 까치발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걷다 보니 불안과 강박이라는 병이 생겼다. 이 병이 낫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부모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

뒤늦게 부모라는 두꺼운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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