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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17. 2024

모든 선택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계집애가 싸가지 없이

기재배가 재수 없게

애 배 갖고 올 년

네가 그러니까 욕을 처먹는 거야

그냥 나가 죽어!

……


아빠라는 사람이 나에게 30년간 해온 비난과 악담은 지금 생각해도 처절하도록 아프다. 놀랍게도 저런 말들을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듣고 자랐는데, ‘애 배 갖고 올 년’이라는 말을 들은 건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아직도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상황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주말 아침 혼자 식탁에 앉아있던 나를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저런 년이 나중에 애 배 갖고 올 년이야’라고 지껄여댔다.

엄마도 할머니도 그 말을 들었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거나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방관자였고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했다. 아빠는 누가 있든 없든 본인이 화가 나면 본인의 부모, 아내, 자식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본인을 높이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친척들 앞에서 아내 욕을, 아내 앞에서 처갓집 욕을, 자식 앞에서 부모 욕을 아주 저급하고 천박하게 지껄여댔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면서 본인이 더 우위에 있음을 확인했다. 아빠가 하는 말에는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우리 집에서 폭군처럼 군림했다.  


불행히도 할머니는 오냐오냐 아빠말이면 껌벅 죽는 아들바보였고 엄마는 진작 ‘내 팔자’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아들을, 당신의 남편을 욕해봐야 자기 얼굴에 침 뱉기였고, 자신의 불행을 떠벌려서 동정을 받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가 아빠가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인정해 버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에둘러 ‘성격이 불 같아서 그래’라고 표현하곤 했다.


“성격이 불 같아서 그렇지 뒤돌아서면 금방 풀어져.”

“말을 좀 못되게 해서 그렇지 속은 착해.”


문제는 그 불 같은 성격의 대상이 무방비 상태의 어리 아이라면 그건 폭력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와 오빠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늘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성격이 불 같은 아빠의 기분에 따라, 아빠의 기분에 맞춰 눈치를 봐서 말을 하고, 웃고, 울었다. 그렇게 해야 엄마는 잘했다고 칭찬했고, 할머니는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다. 나도 엄마와 똑같이 아빠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을 문제 삼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집을 나갈 용기도 없었고,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 살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끊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아빠 비위를 맞추며 남들 보기에 대충 화목한 척 사는 것이 ‘내 팔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냥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남들도 다 상처 하나쯤 품고 산다지 않던가.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가면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아빠의 기침 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랐고, 아빠의 발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치게 싫었다. 아빠의 모든 행동, 숨소리, 냄새까지 모든 것이 증오스러웠다. 정말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아빠가 아니라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먹을 휘두르는 직접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부모의 반복적인 언어폭력이 어린아이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자존감이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 그로 인해 삶이 어떻게 피폐해지는지 지난 30년을 통해 처절히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누군가 가족이라 하더라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줬다면 나는 비굴하게 웃는 법 대신 좀 더 일찍 그곳에서 가족이라는 허울뿐인 이름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 인생을 살지 못했다.

20대에는 심한 방황을 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잠겨 죽을 것 같았다. 30대에는 자기 연민에 빠져 우울과 좌절감 속에서 부유했다. 이 힘든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온전히 부모 탓으로 돌렸고, 그들을 원망했다. 그것만이 만족스럽지 못한 내 삶의 변명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결국 변해야 하는 건 그 무엇도 아닌 오직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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