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거절의 연속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거절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다. 이직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원티드>, <리멤버>, <잡코리아>, <사람인>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내 포지션에 적합한 회사의 구인공고가 나올 때마다 지원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까지 서류에서 광탈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면접까지는 무난하게 갈 줄 알았건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나에게서 잘못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경력이 너무 깊이가 없었던 걸까, 5년 이하 근무경력 같은 잦은 이직이 문제일까, 아니면 15년 이상인 내 경력 그 자체가 문제인 걸까?
혹시 연봉이 부담스러울까 싶어서 희망연봉을 표시하지 않고 협의 가능으로 올려두어도 이력서조차 제대로 봐주는 곳이 없었다. 경력기술서는 몇 번이고 업데이트를 해서 더는 다듬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서류탈락은 쌓여갔다. 뭐가 잘못됐을까? 아니, 그냥 내가 잘못된 걸까? 내 효용가치가 다 끝나버린 것 같아 한동안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이제 겨우 마흔을 넘겼을 뿐인데 갈 수 있는 데가 아무 데도 없었다.
이런 상황과 마주하면 대부분 나처럼 스스로를 탓한다. 자책하며 마음의 동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공감을 받기에도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40대가 설 곳이 없어지다가 퇴직을 하고 치킨집 사장이 되는 건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이가 중년이 넘어가면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도, 이직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건 너무 쉽다. 결심이 어렵지 일단 마음을 먹고 나면 퇴직금이든 대출이든 받아서 일단 뭐든 차릴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혹자는 능력이 있으면 40대든 50대든 설령 60대라도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자는 아주 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직이 아니고, 임원으로 올라가는 것도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머지 대부분은 40의 문턱을 지나며 통과의례처럼 이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10번 이상의 서류탈락으로 나 역시 생각이 많아졌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당장 지금 다니는 회사를 나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시간의 문제였다. 길어봐야 5~10년, 어쩌면 더 짧을 지도 모를 그 시간 동안 난 은퇴 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했다. 막막하게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은퇴라는 말이 40이 넘어가면서 바짝 추격해 오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점점 부정적인 생각은 커진다. 그럴 때는 차라리 생각을 멈추는 게 낫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면서 기회가 오길 기다리라는 뜻은 아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것이 기회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놓친다고 한다. 지금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최대한 이력서에 잘 녹이는 것이다. 당장 이력서를 업데이트해서 다양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고, 경력기술서를 다시 차근차근 써보자. 믿을 만한 사람에게 경력기술서를 검토해 달라고 먼저 도움을 요청하고, 연락처를 알고 있는 헤드헌터에 직접 연락도 돌려보자.
그럼에도 서류 탈락이 계속된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더 다양한 경력을 쌓아 업무의 스팩트럼을 넓히는 것도 좋다. 몇 년째 똑같은 일만 해오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분야에서 내세울만한 원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매년 똑같은 일만 해서는 이력서가 달라질 리 없다. 이력서에 넣을 수 있는 매력적인 업무를 찾아서 본인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어필해야 한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내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보자.
탈락이 반복되면서 내동댕이 쳐진 자존감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지금 발 딛고 선 이곳에서 다시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 타이밍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프로젝트 할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싫던 회사였지만 정을 붙이려고 노력하니 점점 좋은 점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래, 기회가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다녀보자.‘ 마음을 먹었다.
신기하게도 이직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자 그제야 조용하던 헤드헌터들의 연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절을 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상처를 발판 삼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