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
가족과 단절한 후 강박증은 대부분 좋아졌지만 여전히 불안함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 찾아오곤 합니다.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출근 길 달리는 버스에서
오토바이가 위태롭게 지나가는 것을 볼 때
불현듯 심장이 빨리 뛰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불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는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곤 합니다.
달리는 차가 전복될 것 같은 불안함,
갑자기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것 같은 생각에 닿으면 초조하고 불안해져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그 '일어나지 않을 일'의 대상이 항상 가족이라는 것이죠.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 공포가 아니라 내 가족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봐 걱정이 돼서 미칠 것 같은 겁니다.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오빠가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어떡하지?
엄마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어떡하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걱정이 이어지면서 불안은 초조함으로, 또다시 공포로 바뀌곤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출근 버스에서 이런 불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증상이 처음으로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는데요.
오래 전에 가족과 함께 살 때였습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는 여름 날이었는데 그날 따라 오빠가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늦는 터라 그리 걱정될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더니 온 몸이 긴장되고 극도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식은 땀이 나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이불 속에서 1시간 정도를 웅크리고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요.
때론 이런 불안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거나 가족이 죽거나 누구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편할 것 같았어요. 매일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가족에 대한 불안함이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스스로 통제가 안 되니까요.
정신과에선 저와 같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을 '범불안장애'라고 합니다.
크게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불안함을 느끼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이 장시간(6개월 이상)에 걸쳐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장애입니다.
아마 이 불안한 감정은 제가 열 살도 되지 않았던 시기부터 느꼈던 것 같아요. 항상 집이 불안해서 늘 걱정을 달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오늘은 오빠가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아빠가 엄마에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상관 없으니까 제발 오빠와 엄마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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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불안으로, 불안은 강박으로, 다시 강박이 공포로 변해갔던 게 아닐까요.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면서 여전히 가족 걱정에 전전긍긍, 불안을 느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죠. 아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와의 연락을 끊었던 것도 이런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면 계속 걱정이 끊이지 않았고,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치솟았으니까요. 안 보고 안 들어야 그나마 마음이 잠잠해졌습니다.
불안이 찾아오면 보통 그 생각을 몰아내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기도 하고 심호흡을 하기도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불안의 시작에 이유가 없듯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도 저는 모릅니다. 다만 오랜 시간 불안을 겪으며 여러 방법들을 적용해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불안을 낮출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 터득했습니다.
바로 '감사하기'입니다.
너무 뻔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너무 뻔해서 하기 쉽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불안을 달고 살아온 제가 쓰고 있는 방법이니 믿고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일단 불안이 시작되면 저는 감사한 것들을 되내입니다.
다음으로 불안한 생각을 감사함으로 바꾸어 말합니다.
가족에게 큰 사고가 날까봐 불안한 생각이 들면 "오늘도 모두가 무사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엄마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면 "오늘도 모두 많이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혹 가족 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불안할 때는 "오늘도 모두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를 하면 인생이 바뀐다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고요.
다만 늘 불안의 파도가 넘실대는 저에게 감사는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정도는 됩니다. 어찌보면 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어차피 살아야 된다면 기왕이면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기 전에는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사는 것이 꼭 벌 받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도 공포가 지속되고 있겠죠.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불안한 감정,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고통.
결국 누구도 아닌 나 혼자 오롯이 극복해내야 하는 것이라면 조금씩 내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스무 살이 넘어서부턴 부모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키우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원망은 내려놓고 내가 잘 살 방법을 찾아 가야 합니다.
저도 이제서야 저를 키우는 중입니다.
하다보니 저를 잘 키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