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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04. 2022

죄책감에 빠져 있던 나를 구원해준 말

가족을 보지 않고 지낸지 3년이 지났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잘 지내다가도 가끔씩 들려오는 가족들의 소식에 한 번씩 무너져내리곤 합니다. 특히 가족 중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또다시 죄책감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 아빠가 암에 걸렸어.



덜컹. 마음 속 어디 한군데가 내려앉았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이어서 엄마는 그러니 아빠를 보러 오는 게 자식된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절절하게 문자에 남겼습니다.

집과 연락을 끊은지 1년쯤 되던 때였습니다.



문자를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왜, 하필, 지금'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인 것 같았는데, 이제서야 어느정도 죄책감을 내려놓고 살만해졌는데 왜 하필 지금!

상황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빠를 내 연락처에서 차단하는 것이 어떤 두려움이었는지, 가족과 인연을 끊겠다는 결심이 자식인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는 저만이 알겠지요.



어쩌면 엄마는 그저 이 상황이 아빠와 내가 자연스럽게 화해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지금이 내가 가족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답답했어요. 제가 이 상황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요.


 

아마도 나는 내발로 그 집에 다시 들어가겠지. 나를 본 아빠의 발작같은 분노에 용서를 빌고, 거짓된 얼굴로 위로를 건네고,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다가 아빠의 분노와 비난, 저주를 받으며 또다시 죽고 싶겠지.

하지만 나만 참으면..  아빠도 이번 일을 통해 어느정도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스물스물 올라온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 일주일만 생각해볼게.



일주일의 시간을 벌었지만 내가 다른 결정을 내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조금이라도 만나는 날을 늦추고 싶었습니다.

답을 해야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마음이 옥죄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를 볼 생각만으로 심장에 경련이 날 것처럼 두근거렸습니다. 저는 아직 아빠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일주일동안 잠도 못자고 전전긍긍하는 저를 보던 남편이 어렵게 말을 건넸습니다.



- 마음이 너무 힘들면 가지마, 여보. 부모님껜 죄송하지만 힘들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여보 마음 편한 게 먼저야.



남편의 말에 내 안의 죄책감이 툭 끊어져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 정말 그래도 괜찮아?

- 괜찮아. 여보 마음이 좀 더 편해지면 그때 가도 돼.

- 그러다가 다시는 엄마도 못보면 어떻게?

- 왜 못봐. 보면 되지. 미리 걱정하지말고 마음을 편하게 갖자.



저는 어쩌면 누군가 이 말을 해주길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저는 왜 한 번도 이 생각을 못 했을까요. 내가 지금 갖는 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인지 모르지만 나에게만큼은 그럴 수 있는 일임을 왜 스스로에게 한 번도 말해주지 못했을까요.

남편의 이 한마디는 내 안의 어린 나를 토닥여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이대로 영영 나를 놓아버릴까봐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피를 나눈 가족은 없지만 '나'는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건 나뿐입니다. 누구도 나 대신 나를 책임지지 않아요.

그러니 부디 저처럼 스스로를 고통 속에 가둬두고 자신을 몰아부치지 마세요.



모든 선택의 순간에 나를 중심에 두고 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항상 최선의 선택일 것입니다.



이제 저는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불안이 공포가 되어 나를 지배할 때

분노가 파도처럼 덮칠 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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