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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15. 2022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아빠는 남의 시선을 몹시 신경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어떻게 보는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지요.



"아빠가 다정하셔서 좋으시겠어요."



하루는 아빠 사무실에 갔더니 직원이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말에 쓰게 웃을 뿐 답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빠의 그런 이중적인 행동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빠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늘 연기를 했습니다.



쿨하고 깨어있는 어른인 척

자상한 부모인 척

딸바보 아빠인 척

다정한 남편인 척



아빠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할머니는 오랜 불교 신자로 거리에 있는 쓰레기를 항상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습니다. 그걸 '봉사'라고 생각했고, 그 일들이 다 자식들에게 좋은 일로 내려간다고 의심치 않는 사람이었죠.

할머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향해 세상에 저런 인자하고 고운 분이 있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남들의 한 번 툭 던지고 잊어버리는 칭찬에 스스로 만족해하곤 했죠.



그런 할머니가 엄마에게는 그렇게 모질고 차가운 시어머니일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을 남편, 자식 건사하는 것도 모자라 30년 넘도록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산 엄마를 할머니는 평생을 못마땅해하며 입만 열면 다른 사람들에게 엄마 욕을 하고 다녔습니다.

할머니 말이 사실이라면 엄마는 천하의 몹쓸 나쁜 며느리였지만 엄마는 없는 집에 시집와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키려고 억척스럽게 살았던 죄 밖엔 없었지요.





가장 가까운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가족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 치고 끝까지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은 자기 본성을 못 숨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밀감이 생기면 금방 들통이 나 버리니까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 주변에는 가까운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받습니다. 혼자 외롭게 늙어갈 뿐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니까요. 내 감정을 온전히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털어놓고 울고 웃고 내 추한 모습까지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잠깐이라도 생각해보면 가족이어도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아빠는 화가 나면 참지 않고 가족에게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당연한가요?

할머니는 며느리인 엄마에게 조금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역시 당연한가요?

엄마에게는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쏟아냅니다. 이 또한 당연한가요?



회사에서는 화가 나도 꾹 참고, 남에게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면서 가족에겐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건 너무 큰 모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관계가 가족이 되기 쉽니만 사실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관계가 가족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사람이지만 가족은 평생 함께 해야 할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가족에게 가장 잘 보여야 하는 것이죠.



제가 가족과 인연을 끊었던 이유도 이것입니다.

아빠는 가족 모두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고, 가족을 자신의 발아래 두어야 가장으로서 권위가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우리 가족에 깔려있는 그 부당한 당연함이 너무 싫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관계는 없습니다. 그게 가족이라도요.

만일 어떤 관계에서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백이면 백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를 챙겨주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닙니다. 감사한 일이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닙니다. 고마운 일이죠.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만은 모든 걸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가족이니까 이해해줄 거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습니다.



가족은 내가 편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할수록 결국 본인만 외면받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가족 간에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매너가 결국 좋은 가족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전히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가족에게는 외면받으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추앙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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