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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Sep 19. 2022

어느날 남편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세상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이었다. 어버이날이라고 인당 10만원짜리 뷔페식당을 가도 "이까짓거"였고, 대학생때 알바비를 모아 30만원이 넘는 골프웨어를 큰맘먹고 사다줘도 "옷 고르는 센스가없다"며 투덜거렸다. 아빠 환갑과 내 첫 직장 퇴사가 마침 겹쳐 300만원이 넘는 퇴직금을 전부 주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들었다. 자기 기분 낸다고 100만원 툭 던져주며 "내가 이런사람"이라며 으스대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주고도 욕을 먹고, 안주면 더 욕을 먹었던 나는 늘 아빠 앞에서 긴장상태였다.



그런 아빠를 찬양하는 것은 우리집의 불문율같은 것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빠의 모든 것을 칭찬했다. 그래야 그나마 우리집은 평화로웠다. "아빠 말이 다 맞아.", "아빠는 지금도 50대 같아.", "아빠가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야." "역시 아빠가 최고야." 이런 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만 아빠는 비로소 만족스럽게 웃으며 잠시나마 인자한 부모 흉내를 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진심으로 본인이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것을 1%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너무 비굴하고 가증스러워서 스스로를 저주했다.

우리집에서 아빠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군림했다.


나는 늘 교주님의 기분을 살폈다. 그날의 내 기분은 아빠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아빠 기분이 좋으면 나도 좋고 아빠가 아침부터 인사를 받지않고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착 가라앉곤했다. 하루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다가도 집에 들어가 아빠 기분이 풀려있으면 언제그랬냐는 듯 꽉 막혔던 감정도 쑥 내려갔다. 내 감정은 온전히 아빠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자기밖에 모를까

기분 안 좋은걸 저렇게 티를 내야할까

왜 모두가 자기 기분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빠의 행동 중 단 한 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빠의 이기적인 성격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내가 그런 아빠를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혼자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화가 많아졌다. 툭하면 화가 났고 짜증이 솟구쳤다. 가슴 속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올라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을때면 당황스러웠다. 하루에도 기분이 극과극을 오갔다. 사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다가 이유없이 기분이 착 가라앉기도 했고,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짜증과 분노가 올라왔다. 어느 날은 내 감정이 너무 힘들어서 길에 우뚝 서서 서럽게 울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내 인생에서 부모를 걷어내면 모든 것이 완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내가 위태롭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남편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다. 짜증이 많아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바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스스로 반성도 했다. 그러나 내 노력과는 별개로 때때로 올라오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럴때마다 죄책감에 기분이 더 우울해지곤 했다.

하루는 짜증을 있는대로 내고 후회가 밀려와 남편에게 사과를 하자 남편이 나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너가 언제 또 화를 낼지 몰라서 불안해."



남편은 내가 짜증을 낼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면 눈치를 보기시작했다. 기분좋게 들어간 식당이 불친절하거나 지하철에 사람이 가득차서 옴짝달싹 못할 때, 윗집이 쿵쾅거리거나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때 .. 나는 무심코 화를 냈다. 남편의 기분이 어떤지 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왜 그렇게까지 화가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불쾌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야 그나마 화가 풀리는 것 같았다. 마치 내 아빠처럼.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괜찮다고 달래주거나, 같이 욕해주거나, 일부러 더 장난을 치거나 하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은 내 기분을 끌어올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도 그랬다. 아빠가 화를 낼 것 같으면 일부러 상황을 풀어보기위해 거짓웃음을 지어야했다. 별 일 아니라고 이렇게 웃고 있지 않냐고 아빠의 긴장감을 낮추기 위해 나는 본능적으로 웃었다. 물론 아빠는 웃는 얼굴에도 침을 뱉었다.



매일매일 남편에게 온갖 감정을 쏟아내던 나는 남편의 기분은 어떤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네 감정보다 지금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니까 지금은 내 감정을 먼저 봐줘!'라고 은영중에 남편에게 '감정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내가 언제 화를 낼 지 몰라서 불안하다는 남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안해. 당신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 정말 몰랐어. 앞으로는 화를 참아보려고 노력할게."



나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나의 미성숙함을 인정하고 변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랜시간 아빠의 기분을 살피며 살아온 나는 내 기분을 제대로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내 감정을 모른척하고 살아온 시간만큼 더 완벽하게 나를 중심으로 살고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내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줘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불안을 주었다는 것이 내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감정을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을때 진짜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우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성숙한 어른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나를 잘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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