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Oct 03. 2022

내 부모에게 나는 항상 '오답'이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어떤 답을 내놓든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내 부모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부모에게 나는 항상 '오답'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A가 정답이었는데 다음 날엔 B가 정답인 그런 수수께끼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빵을 사가면 어떤 날은 '네가 자꾸 빵을 사오니까 내가 뱃살이 찐다'며 욕했다가 빵을 안 사가면 '부모한테 뭘 사다주는 꼴을 못 본다'고 비난을 하는 식이죠. 그래서 이번엔 일정 기간을 두고 빵을 사갔더니 내내 잘먹던 빵을 '내가 언제 이런 빵 먹는 걸 봤냐'며 욕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뭘 해도, 뭘 안해도 욕을 먹는 거죠.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항상 '틀리는' 것이 정해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거의 모든 일에 적용되었어요.

늦잠을 자면 게을러 터졌다고 방문을 걷어차며 소리를 지르길래 일찍 일어났더니 일찍 일어났으면 청소라도 하라며 욕을 하고, 청소를 하면 제대로 안 한다고 비난을 퍼붓는 거죠. 벗어날 수 없는 '욕의 굴레'가 이런 게 아닐까 싶네요.   



서른 다섯살에 독립을 한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6평짜리 작은 원룸에 침대도 없이 누웠을 때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편안함과 행복함이 말로 표현이 안되더군요. 독립을 하고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을 저에겐 '자유'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것이 슬프지만 기뻤습니다.

아빠에게 독립을 하고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아빠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마음이 힘들어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을 때보다도 더 놀란 것 같았습니다. 그는 본인이 자식들에게 더없이 좋은 부모, 기댈수있는 든든한 배경이라고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식의 입으로 당신을 떠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 때에도 당연히 아빠는 '틀렸다'고 했습니다. '고생을 안해봐서' 혹은 '배가 불러서' 하는 말이라고요.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고생을 해봐야 부모가 고마운 줄 안다고, 어디 혼자 살아보라고 비난하고 소리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물론 그렇게 쉽게 자식을 놔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 2, 3년이 더 흐른 뒤에야 저는 집을 나올 수 있었고, 그 시간동안 제가 독립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조롱섞인 비난을 하곤 했죠. 아빠의 비난하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치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정말 치욕스러운 것은 그 상황에서 비굴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부모에게 비굴해져야 할 때마다 비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내 앞에서 상스럽게 엄마와 외갓집을 싸잡아 욕할 때, 누구 잘못이냐고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을 던질 때, 내 일기장을 들춰보고 사적인 비밀을 온 집안에 떠들며 나를 조롱할 때, 발작하듯 화를 내는 아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야 할 때마다 참담하다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참담하다. 끔직하고 절망스럽다. 저에게 가족은 '절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30년이 넘도록 오답인생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에겐 '부모의 평가'였습니다. 독립을 한 후에도 여전히 부모가 어떤 평가를 내리는 지가 저에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었어요. 남자를 만날 때도, 직장을 구할 때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아직도 부족한가? 나는 또 틀렸나?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평가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그들의 실망한 표정을 보며 좌절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지금 생각해보니 내 죄책감의 시작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나 자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평가에 발목 잡히면 자기만의 인생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의미를 찾기 전에 부모가 먼저 틀렸다고 결론을 내려버리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에게 나는 여전히 오답이겠지요. 그들의 기준에서는 가족과 연락을 끊어버린 제 행동이 이해조차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쓴다면 저는 그에게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그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티끌만큼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완벽해지려는 강박을 버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 인생을 살고 거기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오직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내 선택이 비록 오답일지라도 정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바랍니다.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이니까'라는 무책임한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