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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고 싶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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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뉘엿뉘엿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하늘에 걸친 노을처럼

한 가을 흐르는 낙엽처럼


나부끼는 바람에 몸 맡기고

뒤따르는 그림자에 숨 불어

손가락 스친 생명에 감탄하고

발목 당기는 세월에 탄식하며


고요는 평온이 아니라고

목 놓아 부르며,

달려가라는 무심한 소리에

얕은 변명을 하고 싶다.




시간은 무섭게 도망간다. 망설임 없는 움직임으로 인해, 서둘러 쫓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자욱하다. 내 나이 스물아홉. 시키는 대로, 내키는 대로 살아왔는데 왜 이리 가쁘기만 한 지 모르겠다.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되는 걸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는 더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뛰어간다.


명확한 목적지는 없다. 다만,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짐작한다. 이렇게 살아왔다.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멈칫하면, 다시는 보다 앞선 대열에 합류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시간을 쫓아 달리는 일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몸이나 마음 중 하나가 결여된 상태에서 달리는 일은 스스로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과 같다. 생각해보았다. 몸은 건강하나 마음이 없다면 달리는 순간에도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된다. 확신은 점차 의심으로 변하여 내딛는 발을 뗄 따마다 주저하고 망설이게 된다. 점차 공허해진 마음은 가뭄이 일듯 여러 갈래로 나뉘어 병을 일으킨다. 반대로 마음은 충만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다면 달리는 순간에도 계속 바닥을 주시하게 된다. 불안한 호흡과 후들거리는 다리 앞에 충만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잊히며 건강을 갉아먹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인종, 문화, 나라, 성향을 예로 들며 비슷하다거나 닮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크고 작은 이유들로 사람들을 같은 부류로 묶기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알아가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모두 각 자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존중의 차이를 결정지어선 안 된다. 앞서간다거나 뒷서간다거나 해서 특별하거나 이상한 게 아니라, 개인의 특성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나는 달리고 있지 않았지만, 달릴 것을 권유받았고, 달리기 위한 생각을 내내 품으며, 꾸준히 달리기 위해 노력했다. 문득, 뒤 돌아 내가 달려온 길을 보았다. 삐뚤 하게 남겨진 발자국은 원래 나의 보폭과는 무관했다. 허탈했다. 과연, 나의 시간은 내 삶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다. 빠르게 가는 것도 좋지만, 정확하게 가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서 걷고 뛰며, 주어진 삶을 깊이 있게 사랑하고 싶다.


달려가라는 무심한 소리에게 얕은 변명을 해 본다.

'나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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