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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생각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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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작년 6월, 누나와 매형에게 두 명의 아이가 생겼다. 알콩이, 달콩이라는 태명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자녀를 갖기 원했던, 결혼 4년 차 부모님의 오랜 기다림 속에 태어났다. 조카들이 세상의 빛을 처음 보던그 날, 나는 퇴근을 하자마자 부리나케 병원에 들렀다. 어머니께서 문자로 알려주신 면회시간을 지키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서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먼저 누나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갔는데, 출산에 의한 통증으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모습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기까지의 지난 과정들이 보이는 것만 같아 숭고한 감정이 일었다. 쉬고 있던 누나를 제외하고 매형, 부모님과 함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면회를 갔다. 몇 번의 엘리베이터와 긴 복도를 걸어야 했던 길은, 병원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무색할 만큼 따스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그 시간. 당시 아이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던 매형의 표정은 여전히 선명하다. 기쁜 듯하면서도 담담해 보이던 그 표정에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책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현듯,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얼굴에서 매형의 표정이 떠올랐다.


올해로 환갑이 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8박 1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나신다. 평소에 잘해드리지 못한 불효자의 변명을 대신하여 여행 경비를 누나와 함께 보탰다. 생애 처음 가 보는 유럽 여행에, 아는 만큼 제대로 볼 수 있다며 여행지에 포함된 나라를 열심히 공부하던 아버지. 요즘엔 눈여겨 외운 것조차 금세 잊어버린다며 투덜거리셨지만, 어제 다녀온 곳의 지명조차 잊어버리는 어머니의 몫까지 더해 열중하셨다.


그렇게, 준비하던 여행을 위해 어제 아침 공항으로 떠나셨고, 차갑게 식어버린 집 안에서 나는 아버지의 젊었을 적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서른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태어났다. 누나가 나보다 네 살이 더 많으니, 첫 자녀는 스물여덟에 가진 셈이 된다.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읜 아버지에겐 3명의 동생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돈을 벌고 있기는 했지만, 가난했던 집안에서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세 명의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엔 늘 부족했다고 한다. 군대를 전역한 아버지의 역할을 자연스레 정해져 버렸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할아버지와 함께 동생들을 돌보는 것으로.


보다 젊었을 적,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공부를 하다가 평소보다 늦게 하교하면 '버럭' 화를 내셨다고 한다. 장남이 집안일을 해야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냐면서. 아버지는 학생 때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를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쪽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스페셜을 즐겨 보았었고, 사극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취향을 생각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꿈을 키워나갈 여유가 없었던 아버지는 일찍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세명의 동생을 누군가의 부모로 만들어 준 것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어엿한 성인으로 키우셨다.


두 번째 퇴사를 고민할 적이었다. 회사에서 겪었던 일을 참고 참다가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에게 털어놓으면, "직장은 원래 그래.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해"와 같은 대답을 줄곧 들려주셨다. 내가 직면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넘겨짚는 듯한 아버지의 말에 서운한 적도 많지만, 이제 와서 아버지의 지나온 삶을 떠올려보니 그저 죄송하기만 하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받았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며 나에게 흔한 잔소리 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직접 해결해주실 수 없는 직장에서의 문제를 집 안에서 투덜거리며, 어리광 부리는 나의 모습에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더 해줄 수 없다는 마음에 괴로워 하진 않으셨을까.


언제였던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도 직장을 다니며 못 하겠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으셨다고. 그런 아버지가 20년 이상 한 직장에서 근속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어느덧 서른을 앞둔 나는, 그 비결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모니터 뒤에 걸린 액자에서 웃고 계신 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에서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매형의 웃는 얼굴이 비친다.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모두 같은 가 보다.




12월, 겨울이 찾아왔다. 매서운 바람에 맞서 지내다 보면, 문득 봄이 그리워진다. 지구 상의 날씨가 언제나 봄과 같으면 좋겠지만,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마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여름을 가을로 바꿀 수 없고, 가을을 겨울로 바꿀 수 없으며, 겨울을 봄으로 바꿀 수 없다.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의 이름은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수줍은 얼굴로 한 봄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떠한 곤경에 처해있을 지라도 스스로를 믿고 조금씩 나아간다면, 다시 좋아지리란 사실을.


막연한 미래를 상상하며 기대하지 말자.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대신, 삶에서 맞게 되는 온갖 우여곡절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시간이 지나면 겨울의 추위도 희미해지듯 나아질 것이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잠시 두 눈을 감고 태어났을 적 우리를 바라보았던 아버지의 미소를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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